외국기업 대거 참여, 이미지 업그레이드

대우중공업의 자금으로 건립된 다위시왕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중국 서부 닝샤(寧夏)성 성도인 인촨(銀川)에서 자동차로 2시간여 달려 도착한 농촌마을 엔츠. 사막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중국 오지다. 이달 초 이곳에서 한 초등학교 준공식이 열렸다. 20여 개 교실을 가진 작은 학교였다. 코흘리개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밴드 대원들이 연주한 축하 팡파르가 사막에 울려 퍼졌다.이 학교 이름은 다위시왕(大宇希望)초등학교. 한국기업 ‘대우’와 관련이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중국 굴삭기시장 최대 업체인 대우중공업이 이 학교 건립을 위해 25만위안(1위안=약 145원)을 출연한 것은 지난 5월. 이 회사는 당시 산둥성 엔타이공장에서 생산한 제5천호 굴삭기 판매대금 약 75만위안을 모두 초등학교 설립사업에 쾌척했다. 중국 정부는 이 돈으로 3개 초등학교를 설립했고, 엔츠의 다위시왕은 그 중 하나였다.“우리는 중국에서 굴삭기를 생산해 중국시장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중국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희망공정(希望工程·희망 프로젝트)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돈이 없어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사업입니다. 중국에서 번돈의 일부를 중국에 환원하자는 차원에서 희망공정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중국정부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기업’이라는 회사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었습니다.” 대우중공업 엔타이법인을 책임지고 있는 채규전 전무의 말이다.중국이 희망공정을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 돈이 없어 취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대주고, 학교가 없는 지역에 학교를 지어주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도시 주민 또는 기업의 찬조를 받아 자금을 마련하게 된다. 서부지역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산당이 기획한 국가 프로젝트였다.많은 외국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희망공정을 위해 지난해 말 현재 모두 3,000만위안을 투자했다. 모토롤러와 P&G가 각각 2,100만위안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모토롤러는 특히 매년 300만위안을 희망공정에 내놓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희망공정 주무기관인 중국청소년발전기금회의 왕잉 주임은 “희망공정이 시작된 후 모두 21억위안 가량이 오지 초등학생들에게 전달됐다”며 “이 중 상당부분은 외국 투자기업이 출연한 것”이라고 말했다.각 기업은 희망공정에 참여하는 이유를 ‘이익의 사회환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명목적인 목적의 이면에는 ‘제품 및 기업이미지 홍보’라는 계산이 없지 않다. 희망공정 참여를 통해 중국 국가정책에 부응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이를 중국언론에 보도해 자연스럽게 제품 이미지를 높이자는 전략이다. 실제 많은 외국기업들은 희망공정을 주요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결국 중국진출 외국기업들의 현지화 전략과도 상통한다.중국 산업정책의 산실인 국가경제무역위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명성 박사(조선족 동포)는 “한국기업은 중국 정부정책을 좀더 예민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중국 정부정책에 호응하고, 정책방향에 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충고다.“현대자동차의 중국진출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분야 투자허가는 서류작업에만 약 3개월이 걸립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1개월 만에 현대 투자건을 승인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투자가 중국 자동차산업 구조조정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중국정부의 산업정책을 간파, 다른 외국회사들은 엄두도 못낼 일을 해냈습니다.”(이명성 박사)중국 사진필름 및 현상 시장을 장악한 코닥은 정부정책을 잘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가 주목한 것은 중국정부의 시아강(실업)인력 구제 대책. 코닥은 3년여 전부터 시아강 인력이 코닥현상소를 차릴 경우 기술 및 자금지원 혜택을 제공했다. 시아강 인력에게 현상기술을 지도해주고, 코닥 보증으로 개점비용의 90%를 저리 융자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국영은행인 공상은행과 제휴를 맺었다.코닥은 ‘시아강 전략’으로 약 5,000개 현상소를 열었고, 10만여 명의 시아강 인력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중국정부가 실업자 구제에 앞장선 코닥에 더 많은 우대조치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 코닥은 이 전략으로 시장점유율을 25%에서 51%로 늘렸다. 중국과 코닥 모두 ‘윈-윈’ 게임을 한 것이다.요즘 붐을 이루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의 중국 내 연구개발(R&D)센터 건립도 같은 맥락이다. IBM, 마이크로소프트(MS) 모토롤러, 루슨트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업체들은 중국 전역에 R&D센터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는 물론 서부지역인 시안, 청두에도 선진 R&D센터가 설립되고 있다. 이들이 기술수준이 떨어지는 서부지역에 R&D센터를 건립하는 것은 ‘우리가 중국 서부개발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자는 성격이 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중국은 아직도 관료주의 성향이 강하다. ‘중국 비즈니스는 정부정책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woodyhan@ hankyung.com돋보기 ‘희망공정’(希望工程)이란중국의 ‘미니 공산당’으로 불리는 공청단(共靑團) 산하 중국청소년발전기금회가 지난 89년부터 시작한 오지 초등교육 지원 프로젝트. 개인 및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이를 농촌 빈곤지역의 초등학생 학비나 학교 건립 등에 투자한다.지난해 말 현재 희망공정에 따라 초등교육에 투자된 자금은 20억9,000만위안. 8,890개의 초등학교가 이 프로젝트로 새로 건립됐다. 약 247만명의 오지 초등학생들이 학비지원 혜택을 받았다.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및 외국기업 역시 희망공정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개인의 경우 초등학생 한 명을 6년간 공부시킬 수 있는 1,200위안을 기부하게 된다. 분납도 가능하다. 기업은 주로 학교 건립을 위해 25만위안을 출연하고 있다. 청소년발전기금회는 희망공정에 참여한 기업이나 개인에게 수혜학생의 성적표를 정기적으로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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