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고 싱싱한 맛’ 소규모 제조 맥주 출시

조선호텔, M.B.코리아 첫 주자… 기존 맥주업체 “영향 없다” 반응

조선호텔 '오킴스 브로이하우스'‘맥주 개성시대 개막.’국내 맥주업계가 ‘다품종 소량생산’시대를 맞았다. 주세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일정 규모의 맥주 제조시설을 갖춘 사업자는 국세청 허가를 받아 소규모 맥주제조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된 것. 당초 월드컵 특수에 대비해 지난 2월부터 시행됐으나 참여 업체들의 준비가 늦어지면서 7월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이게 됐다.이에 따라 맥주도 과거 민속주나 막걸리처럼 양조장에 따라 맛과 품질이 다른 개성시대가 열렸다. 단 제조장과 영업장을 같은 장소로 제한, 영업장소 내부에서만 판매되는 게 특징이다.소규모로 제조된 맥주와 기존 시판 맥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원료와 맛에 있다. 하이트와 OB 양대 맥주회사가 만들어 온 맥주는 부드러운 맛을 내기 위해 옥수수 전분을 30% 가량 첨가한 이른바 ‘미국식 맥주’. 반면 소규모 제조설비를 갖추고 직접 만들어내는 맥주는 100% 보리맥주인 ‘독일식’으로 분류된다. 맛과 향이 기존 맥주보다 훨씬 진하고 성분에서도 차이가 난다.소규모 맥주 제조장으로 첫 테이프를 끊은 곳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 내 ‘오킴스 브로이하우스’. 조선호텔이 직영하는 이곳은 8억원짜리 소규모 맥주 제조설비(마이크로 브루어리)를 독일에서 수입하고 독일 현지의 맥주 제조 전문가를 초빙, 7월1일부터 직접 만든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식음팀 최동칠 과장은 “지난해 9월부터 맥주 제조 사업을 준비, 총 16억원을 들여 시설 공사를 마쳤다”고 밝혔다.이곳의 특징은 맥주 제조설비를 중앙에 들여놓아 고객들이 맥주 제조과정을 구경하며 즐길 수 있다는 것. 거대한 탱크들로 이루어진 제조설비는 총 10헥타리터 규모로 연간 17만ℓ의 생산이 가능하다. 500cc 잔을 기준으로 34만 잔 분량이다. 가격은 400cc 한 잔에 4,800원이며, 700cc 이상은 목이 긴 모양의 야드(Yard) 잔으로 판매, 마시는 재미를 더했다.맥주 종류는 헬레스(Helles)와 해비와이젠(Hefeweizen) 두 종류. 헬레스는 투명한 살색 맥주로 호프향이 강하며 거품이 크림처럼 부드러운 맥주, 해비와이젠은 여러 가지 과일향이 나는 짙은 호박색 맥주를 말한다. 알콜도수는 일반 맥주(4도)보다 약간 높은 4.6도 수준. 맥주 제조기술을 전수하러 온 브로우마스터(맥주 양조사) 도미닉 타퍼씨는 “맥주는 원료배합, 시간, 온도에 따라 수만 가지 맛으로 만들 수 있다. 맛과 향이 신선하고 진한 것은 물론 유산균이 살아 있어 건강에도 좋다”고 자랑했다. 조선호텔은 지난 3월 소믈리에(와인 전문가) 과정을 밟던 이상수씨를 브로우마스터 후보로 발탁, 도미닉 타퍼씨의 수제자로 키우고 있다.조선호텔의 뒤를 이어 M.B.코리아도 7월12일 직영점 ‘옥토버 훼스트’(www.mbeer.co.kr)를 서울 강남역 인근에 오픈하고 직접 만든 맥주를 판매할 계획이다. 이 회사 백경학 사장은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출신으로 독일에서 언론재단 지원 연수를 받다가 전업 결심을 했다. 백사장은 “뮌헨에 있을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맥주를 마실 때였다”며 “독일에서 경험한 맥주의 참맛과 낭만을 고객에게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생각으로 50여 명의 주주를 모아 회사를 차렸다”고 밝혔다.이곳의 맥주 제조책임자는 뮌헨 공과대학에서 맥주양조공학을 공부한 방호권씨. 백사장에게 자신이 만든 맥주 맛을 선보이곤 했던 인연이 “한국에서 소규모 제조 맥주 시장을 열자”는 의기투합으로 이어졌다. 방씨는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9학기 과정의 양조사 석사과정을 졸업한 인물이다. 또 신라호텔에서 12년 동안 서양요리를 만들어 온 이종근씨를 주방장으로 영입해 수준 높은 유럽요리를 선보일 계획이다.옥토버 훼스트에서 선보일 맥주는 바이스 비어, 둥클레스 비어, 필스 비어 등 세 종류. 특히 바이스 비어는 향이 진하고 도수가 낮은 탁한 맥주로 한국인 입맛에 맞아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격은 500cc에 6,000원 선이다.이 밖에 광주의 코리아브루하우스, 대구의 에스이에프 등 7개 업체가 국세청에 제조면허신청을 한 상태이며 롯데호텔, 삼성에버랜드 등도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전국 9개업체 제조면허 신청한편 기존 맥주업계는 소규모 제조업체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는 눈치다. 소량생산체제인데다 유통망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이트맥주 유경종 홍보과장은 “영업장 내에서만 제조판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소규모 제조 맥주는 1% 이하의 미미한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 안희승 소비세과 서기관도 “기존 맥주시장 잠식보다는 수입맥주의 대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그러나 소규모 맥주 제조업에 뛰어든 이들은 생각이 다르다. M.B.코리아의 경우 강남 1호점이 안정궤도에 올라서면 장기적으로 전국에 30개 매장을 개설할 계획이다. 조선호텔도 소비자 반응을 지켜본 후 사업확대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 일본 도쿄에만 300여 개의 소규모 맥주 제조장이 성업 중이라는 점도 국내 시장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면허신청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고루 퍼져 있다. 이는 소규모 제조 맥주 바람이 빠른 속도로 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INTERVIEW도미닉 타퍼·이상수 조선호텔 브로우마스터“최고의 맥주, 우리가 만듭니다”“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선 여러 학문과 기술을 섭렵해야 합니다. 미생물학은 기본이고 거대한 설비를 다루기 위해 엔지니어링 기술도 배워야 하죠. 민감한 혀와 코는 타고나야 하는 겁니다.”지난 7월1일부터 직접 만든 맥주를 팔고 있는 조선호텔 브로우마스터 이상수씨(30)는 회사 내에서 ‘꿈나무’로 통한다. 지난 3월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브로우마스터 후보로 발탁돼 독일에서 온 11년 경력의 전문가 도미닉 타퍼씨(30)의 수제자가 되었기 때문. 두 사람은 동갑내기지만 맥주 제조장에선 더없이 엄격한 스승과 제자 사이다.독일에 있는 아일랜드 맥주공장 키네스브로잉컴퍼니 소속인 도미닉 타퍼씨는 맥주 제조기술을 전수한 후 8월 중순에 다시 돌아갈 예정이다. 이후엔 이상수씨가 브로우마스터가 돼 모든 맥주 제조공정을 책임지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어깨가 무겁다.“자칫 바이러스가 잘못 들어갈 경우 1t이 넘는 맥주를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동안 그만큼의 맥주를 내다버린 경험도 있고요. 청결과 원료의 배합에 극도로 신경 써야 하니까 보통 일이 아니죠.”23살 때 맥주집을 창업했을 정도로 맥주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이상수씨는 언젠가 독일에 유학, 최고의 브로우마스터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한 번 맛본 사람들은 기존의 시판 맥주를 싱거워서 못 먹겠다고 해요. 제가 만든 맥주, 맛보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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