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소재로 한 만화 ‘인기 대폭발’

고스트 바둑왕스포츠 경기에서 감독의 역량이 승패에 미치는 영향은 뜻밖에 크지 않다. 그나마 농구 정도가 용병술이 중요한 종목으로 분류될 뿐 다른 종목에서 감독의 자리는 선수들에 비하면 초라하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한 감독이 “경기의 승패에 감독이 미치는 영향은 5%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을 정도이며,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감독보다 단장이 팀의 성적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정설이다.작전으로 시작해 작전으로 끝나는 야구가 이런 지경(?)이니 오로지 골을 향해 뛰고 또 뛰는 축구야 오죽하랴. ‘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딩요, 카를로스, 데니우손 같은 선수들이 있다면 스콜라리가 아니라 내가 감독을 맡아도 월드컵 4강쯤이야 우스울 것이다’라는 게 가소로운 그동안의 내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내 편견은 거스 히딩크라는 영웅의 힘으로 가볍게 부서졌다.두뇌 스포츠의 정점 바둑을 소재로거스 히딩크는 선수들의 역량을 정확히 꿰뚫고 적시적소에 배치하는 탁월한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지리멸렬하던 한국축구를 세계 4강이라는, 지금까지는 감히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지고한 위치에 올려 놓았다. 이탈리아전에서 홍명보를 빼고 차두리를 투입하는 초강수는 히딩크 수읽기의 절정이었다.수읽기라면 바둑이 가장 복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둑은 두말할 나위 없는 두뇌 스포츠의 정점이다. 가로 19개와 세로 19개의 줄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내는 361개의 점들은 셀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경우의 수를 만들어낸다. 오죽하면 지금껏 열린 대국 중에서 같은 판이 하나도 없을까. 바둑은 우리가 세계 최강이다. 축구는 이제야 세계 최강의 대열에 들어섰지만 바둑에서만은 우리나라 프로기사들이 일찌감치 세계 최고의 자리를 구가하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바둑이 세계 최강이었지만 지금은 우리의 상대가 못된다.최근의 일본 바둑계는 과거의 한국 축구계나 다름없다. 종주국이라는 자만심이 지나쳐 프로기사들은 매너리즘에서 헤어나지 못해 발전은커녕 퇴보만 거듭하더니 이윽고 국제대회에서 연전연패를 거듭, 적벽대전에서 패퇴하는 조조군사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연히 인기는 곤두박질쳤고, 바둑을 즐기는 인구는 점차 줄어만 갔다.최근 그런 일본 바둑계에 히딩크와 같은 존재가 나타났는데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만화의 주인공이다. 오바타 다케시의 바둑 소재 만화 (서울문화사·원제 히카루의 바둑)이 그것으로, 16권까지 발행된 단행본이 모두 1,400만부나 팔려나가는 인기에 힘입어 일본에서는 현재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유례없는 바둑 붐이 불고 있다고 한다. 한 평범한 소년이 전생의 바둑 고수를 만나 프로바둑기사로 성장하는 흥미진진한 줄거리. 세련된 터치에 탄탄한 구성이 강점이지만 초심자들을 대상으로 한 까닭에 바둑이 주는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우리나라에도 바둑만화는 있다. 강철수는 이 부문의 단연 선두주자. 아마 유단자인 작자는 일찍이 라는 바둑 만화로 장안의 지가를 올린 바 있으며 지금도 모 스포츠신문에 이라는 바둑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허영만의 역시 바둑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해주는 만화. 특히 주인공들이 ‘장생’(長生)으로 위기를 탈출하는 장면은 압권이다(‘장생’이 뭔지 궁금하신 독자는 만화를 참조하시길). 하나만 덧붙이자면 의 감수를 맡고 있는 일본기원 소속의 프로기사 우메자와 유카리 2단은 ‘바둑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기사로, ‘바둑 두는 여자는 박색’이라는 편견을 날려버릴 만한 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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