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에 대한 심상치 않은 풍문이 떠돌고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발 금융위기 시나리오까지 등장하고, 극단적인 비관론도 간간이 들려온다. 지난주 엔/달러 환율은 119엔대로 내려섰고, 달러/유로 환율은 0.99까지 치솟았다. 미국 주가하락이 달러 약세를 부르고, 달러 약세가 다시 주가를 하락시키고, 이로 인해 다시 달러가 급락하는 악순환 시나리오도 제기된다.‘더블 딥’(이중 경기침체) 논쟁의 주인공인 미국 모건스탠리증권사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가 대표적인 비관론자다. 그는 더블 딥에 이어 달러화 경착륙(Hard Landing)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는 최근 “올 하반기 미국 내수 부진으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40%”라면서 “올해와 내년에 달러화가 각각 7% 가량 더 평가절하될 것이며, 달러화의 추가 급락 가능성도 기존 5%에서 15%로 높였다”고 지적했다.수출이 근간을 이루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데다 이미 세계 자본시장의 흐름에 편입돼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환율변동이 중대한 경제적 사안이 아닐 수 없다.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고, 수출은 곧바로 국내총생산(GDP)으로 연결된다. 또한 실물경제뿐만 아니라 환율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 전체가 큰 영향을 받는다.는 민간 경제연구소, 국내외 금융사 이코노미스트 등 전문가들에게 환율전망과 그 영향에 대해 물어봤다.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달러 약세가 추세이기는 하나 그 속도는 점차 느려질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 같은 환율전망을 바탕으로 수출 및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LG투자증권의 서철수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달러화 환율이 완만한 약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달러 약세를 그간 과도하게 벌어졌던 미국 경제의 실물과 금융 부문 사이에 괴리를 좁히고 있는 조정과정이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앞으로 미국의 국제수지는 경상수지 적자와 자본수지 흑자가 동시에 줄어드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달러 약세는 중장기적으로 경상수지 적자 부담을 줄이고,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 호전에 기여함으로써 곧 진정될 것이라는 견해다. 그는 미 주가하락이 달러 폭락을 불러온다는 악순환시나리오에 대해서 “채권시장 강세가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유럽 자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가 줄어들고 있고, 그로 인해 달러가 유로에 비해 약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의하면 90년 이후 외국인(미국 입장에서)이 미국 주식을 순매수한 규모는 채권 순매수 규모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며 그에 따라 미 달러화의 가치는 미 주가보다는 채권가격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것. 최근에도 채권시장은 강세를 보이고 있어 이 같은 채권 순매수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 주가하락이 달러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채권시장의 강세가 이를 상쇄해 달러 약세를 둔화시키는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LG투자증권은 12월 말 기준으로 원/달러 1,150원, 엔/달러 115엔을 예상했다.씨티은행의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좀더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씨티은행의 공식적인 견해는 ‘달러는 이미 충분히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는 것. 앞으로는 더 약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씨티은행은 최근 달러 약세의 원인을 지난 7년간의 과도한 달러 강세에 대한 조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1,200원이 강한 지지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말 환율전망은 원/달러 1,240원, 엔/달러 125엔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내놓았다. 현대증권의 이상재 이코노미스트의 연말 환율전망치는 원/달러 1,160원, 엔/달러 115엔이다. 그는 미국과 일본 외환 당국의 의지를 주요 변수로 보고 있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 감소를 위해서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지만 급격한 달러 약세는 미국 경제의 침체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므로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2002년 1분기 수출회복에 힘입어 완만한 경기회복을 이루려는 일본정부 역시 수출위축을 초래할 수 있는 큰 폭의 엔/달러 환율 하락을 방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연말 환율전망 평균 1,186원하나경제연구소의 신동수 수석은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당분간 달러 약세의 추세 자체를 반전시키기 어려우나 적어도 급격한 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말 원/달러 환율은 1,180원, 엔/달러는 119엔으로 예상했다.삼성증권의 허진욱 이코노미스트 역시 달러화 약세는 불가피하지만 그 속도는 점점 느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한 나라의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성장률이 하락하면 이를 반영해 해당 국가의 통화 역시 절하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미국은 90년 이후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됐지만 자본수지 흑자로 이를 지탱해 달러화가 오히려 절상됐다. 최근 미국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미국으로의 자본유입이 감소돼 달러가치가 떨어졌지만, 미국 경기의 회복가능성이 여전히 높으므로 이런 추세는 진정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증권은 연말 환율전망으로 원/달러 1,200원. 엔/달러 122엔을 내놓고 있다.수출, 크게 위축되지 않을 듯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수출 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을 잃기 때문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산업연구원 신현수 연구원은 “원화강세가 수출에 미치는 효과는 과거보다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우리 수출은 원/달러 환율보다 아시아 경쟁 수출국 통화의 상대적 가치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것. 지난 3월 이후에 나타난 원화 강세는 엔화 등 아시아 경쟁국 통화가치 상승과 함께 일어났다. 때문에 수출이 크게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대증권의 이상재 이코노미스트 역시 “우리 수출은 환율보다 미 경기회복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면서 “미 경기가 회복 과정에 접어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 수출은 계속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삼성증권의 허진욱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우리나라 수출상품이 가격경쟁력보다 품질경쟁력으로 승부하고 있는 추세이므로 달러 약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하지만 산업연구원 신현수 연구원은 “중국의 경우 위안화에 대한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제품에 대한 가격경쟁력 약화는 우려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중국 수출비중이 높거나 세계 시장에서 중국제품과 경합하는 제품(주로 섬유 등 경공업 제품)의 경우 원화 강세의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