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주 신뢰상실 중소형주 “잘 나간다”

월가의 주가가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2000년 4월 피크를 친 뒤 몇 차례 반전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맥없이 무너졌다. 지금도 ‘하락’과 관련한 각종 기록들을 모두 바꿔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다.그러나 진단은 월가라는 거대한 숲만 본 것이지 그 속에 들어가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월가전략가들은 주식시장 안에서 이뤄지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주목하고 있다.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중소형주(다윗)가 대형주(골리앗)을 꺾고 승승장구하고 있고 이 같은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지수는 하락하고 있지만 중소형주에 투자한 사람들의 경우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숫자를 들여다보면 이 같은 추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월가가 피크에 달하기 1년 전인 지난 99년 4월부터 최근(7월3일 기준)까지 미국 대형주의 동향을 잘 보여준다는 S&P 500지수는 29%나 떨어졌다.그러나 같은 기간 S&P의 ‘소형주 600지수’는 무려 35%가 올라 이 같은 대조를 잘 보여준다. S&P 소형주600지수는 시장가치가 4,900만달러에서 25억달러에 달하는 600개 기업(평균시장가치는 6억2,500만달러)으로 구성돼 있으며 4분기 연속 흑자를 내지 못하면 지수산출에서 탈락된다.소형주 중심의 주가움직임을 잘 보여주는 러셀2000도 같은 추세를 그리고 있다. 러셀2000은 S&P소형주600과는 달리 적자투성이의 기술주, 통신주 등이 대거 포함돼 있지만 S&P500이 29%나 떨어질 때 6%가 상승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어떤 잣대를 사용하든지 시장이 어려웠던 지난 3년간 중소형주가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했다는 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앞으로는 어떨까? 월가분석가들은 이 같은 추세가 더욱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푸르덴셜증권의 소형주 전문전략가인 스티븐 디상티스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인물이다.그는 중소기업들의 수익이 2분기에도 대기업들을 능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난 1분기에도 푸르덴셜증권이 기준으로 삼는 875개의 대기업들의 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8% 하락한 반면, 1,307개의 중소기업들은 1% 미만으로 하락하는 데 그쳤다.기업수익분석 전문기관인 톰슨파이내셜 퍼스트콜의 분석에 따를 경우 푸르덴셜증권이 산정하는 중소형그룹의 2분기 이익은 7.5% 증가하는 반면, 대형주그룹은 6.4%증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이 두 그룹에서 유틸리티와 금융주를 제외하고 제조업과 일반 서비스부문만 평가할 경우 중소기업그룹과 대기업그룹의 이익증가율은 6.2%와 2.4%로 차이가 더 벌어진다.“앞으로 2~3년간 중소형주 강세 이어질 것”메릴린치의 중소기업분석 전략팀의 사티야 프라드휴만 수석전략가는 “앞으로 2~3년간은 중소형주의 실적호조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메릴린치팀은 1926년 이후 주식시장에서 나타난 중소형주의 움직임을 분석한 결과 그동안 5차례의 큰 사이클이 있었으며 평균상승지속기간은 62개월(5.2년)에 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중소기업의 실적이 좋았던 5차례의 사이클 중 가장 짧았을 때는 90년 11월에서 93년 12월까지 37개월이었으며 가장 길었던 때는 73년 12월에서 거의 10년간 지속되기도 했었다.지난 20년간의 증시흐름은 물론 대형주의 거대한 상승 사이클이었다. 83~90년,그리고 94~99년에 있었던 큰 흐름은 투자자들에게 대기업이 안전한 투자대상으로 인식하기에 충분했고 또 대형주들은 그에 걸맞은 수익률로 보상해주었다.그러나 최근 들어 대형주에 대한 이러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엔론에서 타이코인터내셔널, 월드컴 등으로 이어지는 거대 기업들의 분식회계 스캔들은 대기업들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만들었다.인수합병 등을 통해 공격적으로 회사규모를 확대해 온 대기업들이 복잡한 회계장부를 이용해 매출과 수익을 부풀린 것으로 나타나면서 ‘회계사기꾼’들로 전락한 탓이다.대신 한두 가지 사업 분야에 충실해 온 중소기업들의 경우 재무사항 또한 알기 쉽게 잘 관리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재무구조의 실상을 잘 알 수 없는 대기업보다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투자를 늘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뮤추얼펀드시장을 보면 이런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 3년간 중소형 주식에 투자하는 뮤추얼펀드에는 꾸준히 자금이 유입됐고, 대형주 펀드는 자금탈출이 지속됐다. 이 같은 흐름은 아직 역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메릴린치의 분석을 보면 지난 12개월간 880개의 중소형 펀드에 밀려 들어간 자금은 한 달 평균 32억달러에 달한다. 반면 1,700개 이상의 대형주 펀드에서는 매달 평균 18억달러씩 빠져나가고 있다.그렇다면 중소형주는 모두 좋다는 얘기일까? 그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중소형주 중에서도 성장주식과 실적주식이 차별화돼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에 중소형주가 강세를 보인 것은 성장주식이 아닌 가치주식들 때문이었다.실제 지난 99년 4월 이후 러셀2000의 가치지수는 41%가 올랐지만 성장지수는 오히려 25%가 떨어졌다. S&P중소형 600지수를 봐도 올 들어 성장주식은 9%가 떨어졌으나 가치주식은 1%가 오르는 등 그런대로 강세를 유지했다.앞으로는 어떨까? 가치주식이 계속 성장주식의 수익률을 능가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대답은 조심스럽지만 “아니요” 쪽으로 기운다. 가치주식과 성장주식의 수익률 차이가 너무 벌어져 있어 이제는 추세가 바뀔 때가 됐다는 지적이다.지난 2000년 증시가 피크를 친 이후 지난 1분기까지 러셀2000가치 지수는 37%가 상승한 반면, 성장지수는 56%가 하락했다. 그 차이는 무려 93%에 이른다.이런 차이는 2000년 초기와 아주 비슷하다. 당시 성장주식은 폭발했고 가치주는 주저 앉았다. 98년 8월부터 2000년 2월까지 러셀2000의 가치지수는 13%가 증가한 반면, 성장지수는 무려 136%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물론 시각차는 있다. 푸르센셜증권의 스티븐 디상티스는 “성장주식은 아직 상대적으로 비싸보인다”고 진단한다. 러셀2000성장주식의 평균 주가수익비율이 1.86배 수준이나 요즘에는 2.86배선에서 거래된다는 점을 예로 든다.때문에 그는 중소성장주는 기술주가 수익을 내기 시작하고 투자자들이 내년 전망을 좋게 보기 시작하는 ‘빨라야 3분기’에야 오름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한다. 이때는 성장주가 중소형주 사이클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란 관측이다.성장주의 상승전환시기를 더 빨리 보는 전문가들도 많이 있다. 이들은 러셀2000 성장지수는 그동안 러셀2000 가치지수보다 평균 2.76배 높게 거래돼 왔으나 요즘 이 차이가 1.68배로 평균보다 40%가량 낮아졌다는 점에서다.결국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앞으로 “중소성장주식이 강세를 보이며 가치주식과의 주가차이를 상당히 좁힐 것”이라는 데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