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가치, 경제여건따라 ‘차별화’된다

앞으로 국제외환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래도 요즘 국내기업을 중심으로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 예측기관별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으나 올 하반기 이후 미 달러화 가치는 세계 각국의 경제여건에 따라 움직임을 달리하는 ‘차별화’(Decoupling) 현상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현재 원/달러 환율에 가장 큰 영향(원/엔 동조화 계수는 0.97)을 미치고 있는 엔/달러 환율은 지금까지는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무엇보다 앞으로 예상되는 미·일간의 경제여건을 감안하면 엔/달러 환율이 추가로 하락될 요인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미국 증시와 경기가 다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올 4/4분기 이후에는 엔/달러 환율이 상승될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은 특히 국내기업들이 예의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정책적인 면에서도 현 시점에서 엔/달러 환율의 추가 하락은 일본은 엔고에 따른 수출둔화 효과(Defla Effect) 때문에, 미국은 증시자금 이탈에 따른 역자산 효과(Anti-Wealth Effect) 때문에 수용하기가 어렵다. 최근 미국과 일본이 미 달러화 가치의 추가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협조개입에 나선 것도 이런 면이 감안된 것으로 풀이된다.올 하반기 이후 국제외환시장에서 가장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은 유로화 가치가 어디까지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현재 0.98~0.99달러 선까지 회복되고 있는 달러/유로 환율은 빠르면 올 3/4분기 이내, 늦어도 올해 안에는 등가수준인 ‘1유로=1달러’선을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예측기관들의 지배적이 시각이다.이처럼 유로화가 빠르게 정착됨에 따라 현재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중에서 역외국으로 남아 있는 영국, 스웨덴, 덴마크도 조만간 유로랜드에 가입할 것이 확실시된다. 대체로 내년 상반기 안에는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 또 유로화 정착은 세계경제와 국제통화질서를 3대 광역경제권과 3극 통화체제로 빠르게 재편시키고 있다.이 경우 국제외환시장에서 유로화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 유로화 가치는 더욱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금융기관들은 내년에는 1유로=1.2달러선 이상으로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유로화와 함께 올 하반기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는 통화가 중국 위안화 가치다. 중국의 환율제도는 지난 94년 이후부터 줄곧 ‘1달러=8.28위안’을 중심환율로 하는 통화위원회(Currency Board, 일종의 고정환율제) 제도를 유지해 왔다. 대체로 지금까지는 커다란 부작용이 없이 잘 유지돼 왔다고 평가되고 있다.문제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실질적인 원년을 맞아 고정환율제 유지에 따른 부작용이 심하게 노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WTO 가입에 따라 하루하루 변하는 외환수급을 환율로 잡아주지 못함에 따라 인플레, 통화량 증가 등 내부적으로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다.특히 올 들어 일본이 마지막 경기회복수단으로 엔저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환율제도를 고정시킴에 따라 피해가 컸었다. 결국은 금리인하를 통해 엔저정책에 따른 부담을 흡수해 나갔으나 이마저도 중국의 경제여건에 비해 금리수준이 지나치게 낮아 돈을 쓸 곳에 제대로 못 쓰게 되는 도덕적 해이 등 부작용이 많이 노출됐다.따라서 정확한 시기는 점칠 수 없으나 올 하반기 이후에 중국이 통화위원회 제도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앞으로 중국의 통화위원회 제도가 포기될 경우 위안화 가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일부에서는 막대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과 대규모 실업문제가 현 중국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수출을 늘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안화 가치는 절하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물론 이런 시각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현재 중국의 외환사정은 풍부한 편이다. 중국 본토의 외환보유고는 2,300억달러로 일본 다음으로 높다. 매년 경상거래 측면이든 자본거래 측면이든 외화가 공급과잉 상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위안화 가치는 절상될 수밖에 없다.만약 중국정부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당면한 부실채권과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안화 가치가 절상될 수밖에 없는 시장여건을 무시하고 위안화 가치를 절하할 경우 헤지펀드와 같은 국제투기자본으로부터 집중적인 환투기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해지펀드 전문자문업체인 헤네시그룹에 따르면 현재 해지펀드의 투자원금 규모가 약 6,000억달러를 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레버리지 투자(증거금 대비 총투자금액 비율)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중국이 2,300달러의 외환보유고로는 해지펀드의 공격을 감당해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한편 올 하반기 이후 원/달러 환율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을 점검해야 한다. 하나는 엔/달러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엔/달러 환율하락이 원/달러 환율을 끌어내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해 왔으나 앞으로는 이럴 가능성이 비교적 낮아 보인다. 갈수록 엔/달러 환율이 어느 정도 안정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다른 하나는 외화수급 사정이다. 국내 전망기관에 따르면 올 하반기 경상거래 측면에서 최대 30억달러의 흑자가 발생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자본거래 측면에서는 대통령선거 이후 경제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감안한다면 최소한 신규로 외국인 자금이 들어올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물론 우리 경제의 거시경제 차별성을 감안하면 이미 국내에 들어온 자금은 밖으로 이탈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결국 올 하반기에 국내기업들이 보유달러화를 내놓지 않는다면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는 경상흑자 30억달러 정도뿐이다. 환율안정 차원에서 외환당국이 달러매입 개입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제 원/달러 환율의 하락국면은 서서히 마무리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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