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강점 활용하고, 장기적 관점서 접근해야...정부 차원 지원도 필요
샤넬 화장품매장 내부우리가 흔히 명품이라고 부르는 최고급 브랜드들은 대부분 몇몇 선진국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다. 패션은 이탈리아, 자동차는 독일이라는 식이다. 이들 국가는 해당 산업에서 오랜 전통과 문화를 갖고 있다.이탈리아의 패션, 프랑스의 패션과 화장품은 이들 국가가 지닌 예술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같은 강력한 사회적 배경이 있기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수많은 군소 브랜드들도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독일의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개발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기계공업에서의 독보적 지위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다 레이싱의 챔피언인 슈마허가 독일인이라는 것과 같은 단편적인 정황들도 독일 자동차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그렇다면 우리나라같이 산업적으로 활용할 만한 특별한 문화적 자산이 없는 상황 속에서 최고급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예를 들어 하이파이 오디오 산업을 생각해보자. 지난 세기의 하이엔드 오디오 산업의 강자는 영국과 미국이었다. 탄노이, 카운터포인트, 매킨토시, 쿼드 등은 모두 영국이나 미국계 기업이다.그런데 지난 10여 년 사이 영국과 미국이 석권하고 있는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 캐나다 기업이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에너지, 패러다임과 같은 스피커에 이어 클라세와 같은 앰프 브랜드도 시장에 한발씩 들여놓았다.고급 포도주라고 하면 흔히 프랑스나 독일을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에는 칠레나 호주와같은 국가들도 고급 포도주 시장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이처럼 후발 국가들이 새롭게 고급 브랜드로 인정을 받는 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 기업들도 장기적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선 최고급 브랜드를 만들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최고급 브랜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명확한 차별성사람들은 모두 개성이 있지만, 특히 유명인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명확한 자신만의 특징이 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최고급 브랜드가 되기 위해선 범용 브랜드에는 없는 확실한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전통적 느낌의 품격, 모던하면서 차분한 고상함, 모방할 수 없는 성능 등 최고급 브랜드들이 가진 차별성은 매우 다양하다.다른 브랜드가 갖추지 못한 특성 중에서 자사의 브랜드가 가장 강력하게 구현할 수 있는 특성을 차별화 포인트로 삼고, 이를 고객에게 명확히 인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커뮤니케이션의 일관성고객의 선택을 받는 최고급 브랜드들은 독특한 이미지를 수십년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최고급 브랜드들은 매출 면에서는 대중적 브랜드에 비해 훨씬 뒤떨어진다.광고비 등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투입되는 비용도 대중적 브랜드에 비해 낮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고 브랜드의 정체성이 확립돼 있는 것은 브랜드 전략에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브랜드에 일관성이 유지되면 오랜 기간에 걸쳐 집행한 광고도 그 효과가 계속 누적된다. 반면 브랜드 이미지가 일관성을 잃으면 이전의 광고효과가 사라지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미치게 된다.예를 들어 BMW는 지난 25년간 ‘The Ultimate Driving Machine’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사용해 왔다. 이 같은 일관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은 고객에게 명확하면서도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접근성의 제한최고급 브랜드는 희소해야 한다. ‘남들은 못 쓰는 것을 나만 사용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한때 최고급 브랜드로 인식됐던 브랜드가 면세점이나 인터넷 쇼핑몰 등을 통해 많은 사람이 구매하게 되면서 그 가치를 잃게 되는 사례가 허다하다.이는 바로 매출증가를 위해 브랜드의 희소성을 깨뜨린 결과다. 소위 ‘명품족’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브랜드다. 물리적·심리적 접근성을 제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쿠어스(Coors) 맥주는 접근성에 관한 유명한 실패 사례다. 쿠어스는 원래 미국의 콜로라도 지방에서만 판매했고, 이 맥주를 먹기 위해 콜로라도까지 놀러간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이 맥주가 전국적으로 팔리기 시작하면서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고급 이미지를 잃고 말았다. 고급 이미지를 잃자 매출도 줄어들었다.원산지의 강점 활용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고급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 이면에는 원산지의 사회적·문화적 배경이 있다.후발국 차원에서도 자국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를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칠레 포도주의 경우 유럽에 만연한 포도전염병이 칠레에는 없다는 사실을 주요한 경쟁요소로 활용했다.우리나라의 경우 예술적이면서 섬세하며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성이 높은 국민성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장기적 관점최고급 브랜드는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최고급 브랜드는 기업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고급 브랜드는 기업의 노력에 대한 고객의 반응, 그리고 고객간의 구전 커뮤니케이션이 반복되면서 만들어진다.이러한 상호작용을 위해선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원산지 차원의 후광 효과를 받기 어려운 우리 기업이 최고급 브랜드를 만든다고 했을 때에는 오래 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확장 제품 관점최고급품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다. 대부분 이미지와 서비스가 결합된 확장제품이다. 단순히 좋은 제품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고객에게 총체적으로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사업이 전개돼야 한다.회사의 모든 부문에 제품 중심적 문화가 아닌 가치 중심적 문화가 자리잡을 때 최고급 브랜드는 꽃을 피울 수 있다.정부 차원의 지원원산지 이미지가 취약한 국가의 경우 최고급 브랜드는 일개 기업의 노력으로 달성되기는 어렵다. 산업 혹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앞서 언급한 캐나다의 하이파이 오디오 성공사례의 이면에는 캐나다 국립음향연구소와 같은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