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PR 전도사로 ‘업글족’ 맹활약

기업, 신제품 증정.대여해 사용 후기 올리도록 유도...동호회 적극 활용하기도

‘캐논 디지털 Ixus V, 후지필름 파인픽스 S602z, 니콘 쿨픽스 5000, 올림푸스 카메디아 E-20.’직장인 강찬영씨(30)가 최근 1년 사이에 구입한 디지털 카메라들이다. 강씨는 디지털 카메라뿐만 아니라 캠코더, 노트북, MP3플레이어도 신제품으로 바꿨다. 물론 기존에 가지고 있던 헌 제품들은 중고시장에 팔았다. 그는 “새 모델이 나온 후 남들보다 먼저 사서 써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했다.최근 강씨처럼 새 제품이 나오자마자 재빨리 구입하는 ‘업글족’이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 멀티미디어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져 기능과 디자인이 강화된 신제품이 끊이지 않고 출시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노트북을 비롯해 PDA, MP3플레이어,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휴대전화 등의 제품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사는 사람들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고마운 고객이 아닐 수 없다. 일종의 ‘신제품 전도사’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이들이 올린 신제품 출시정보와 사용후기는 네티즌에게 급속히 전파된다. 이로 인해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는 업글족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확산되고 있다.미국의 경제학자 에버렛 로저스의 이론도 ‘업글족 타깃 마케팅’을 뒷받침해준다. 로저스는 저서 에서 제품을 채택하는 순서에 따라 인간유형을 5가지로 나눴다.혁신 수용자(전체 잠재수요의 2.5%)→ 초기 수용자(13.5%)→ 초기 대중 수용자(34%)→ 후기 대중 수용자(34%)→ 늦깎이 수용자(16%) 순으로 제품이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는 것.그는 이 중 혁신 수용자와 초기 수용자가 변화를 수용하는 데 적극적이며 유행에 민감, 새롭고 다양한 정보를 추구하려는 욕구가 크다고 분석했다. 업글족이 혁신 수용자와 초기 수용자에 포함되는 셈이다.업글족에게 독점 모델 공급, 다양한 이벤트 펼쳐업글족이 애용하는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의 연령대는 25~35세다. 수입이 없는 학생보다는 정보기술(IT)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이 업글족의 주류다.디지털 카메라 정보사이트(www.dcinside.com)와 노트북 사이트(www.nbinside.com)를 운영하는 김유식 디지탈인사이드 대표는 “하루 평균 방문자가 25만명”이라며 “공동구매를 시작하면 인기 품목의 경우 2~3일 안에 200~300대가 팔린다”고 말했다.이들 사이트의 정보를 통해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했다는 벤처회사 직원 송재욱씨(27)는 “게시판에 제품 추천을 요청했더니 하루 사이에 무려 300여 명의 네티즌이 전문가 수준으로 답변해줬다”고 했다.이와 같은 업글족 사이트와 제휴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 LG IBM의 경우 메모리 용량을 늘린 노트북 싱크패드 X22-2662DK1을 디지탈인사이드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LG전자도 안방극장 시스템인 홈시어터 마니아들을 위한 제품을 출시했다. AV(오디오·비디오) 제품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박승구 과장은 “특히 스피커를 찾는 마니아 고객들이 많다”며 “세계적 유명 스피커회사인 JBL과 제휴를 맺고 120만원대 홈시어터용 스피커를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기업 홈페이지에서 제품동호회를 운영하며 업글족의 관심을 끄는 사례도 있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애니콜 사이트(www.anycall.com)에는 ‘매니아 클럽’이라는 커뮤니티가 있다.휴대전화 브랜드 ‘애니콜’에 애정을 지닌 회원 180만명 중에서도 수백여 명이 별도로 마니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 이들은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서 겪은 ‘신제품 사용기’ 등을 올리며 제품의 개선방향을 제시하고 있다.퀴즈의 정답을 맞히면 신기종의 휴대전화를 증정하는 이벤트도 펼쳤다. HP도 고객 커뮤니티 사이트인 ‘hp클럽’(club.hp.co.kr)을 운영한다. 6개월에 한 번씩 열리는 행사에 당첨된 50명의 회원에게 프린터, 스캐너 등의 신제품을 증정하거나 대여해 이들이 사용 후기를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소니코리아의 사이트 내에는 사이버파크(cyberpark.sony.co.kr)라는 커뮤니티가 있다. 소니 고객 및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캠코더를 사용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핸디캠 활용강좌’를 오프라인에서 정기적으로 연다.소니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머 포토 콘테스트’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여름휴가 사진을 응모한 고객에게 자사의 메조(Mezzo)오디오와 CD워크맨 등을 상품으로 주며 신제품 홍보효과도 노리고 있다.인터넷 쇼핑몰 업체도 온라인상에서 물품을 자주 구입하는 업글족을 놓칠 리 없다. 인터파크(www.interpark.com)를 비롯한 대부분의 쇼핑몰 업체들은 ‘이용후기모음’ 코너를 마련해 놓고 글을 남긴 사람에게 사이버캐시를 지급하고 있다.업글족을 대상으로 한 체험마케팅도 늘고 있다. 인터파크는 7월 초 스피커 전문 생산업체 크리스(Criss) AV 시스템과 공동으로 오프라인에서 홈시어터 시연회를 개최했다. 다양한 스피커와 앰프를 사용해 기기 선택에 따른 차이를 업글족들이 몸소 느낄 수 있도록 했다.오세조 한국유통학회 회장(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은 “신제품 초기 수용자들은 유통단계에서 오피니언 리더(여론 선도자) 역할을 한다”며 “이들로 인한 구전 홍보효과는 지대하다”고 말했다. 오회장은 “초기 수용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업마케팅이 독특한 디자인과 실용성이 결합된 제품개발만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돋보기 업글족의 소비패턴제품 구매전 철저히 정보수집업글족의 소비행태는 어떤 모습일까. 과소비를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른 사람들과 용돈을 쓰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또 제품구입 전 주도면밀하게 정보수집을 하는 것도 특징이다.MP3플레이어, CD플레이어, 이어폰 등 오디오제품 마니아인 오진철씨(32)는 “더 나은 음질을 위해 제품을 업그레이드한다”며 “사고 싶은 물품이 있을 때에는 소비계획을 세워 음주 횟수 등을 줄인다”고 덧붙였다.이와 같은 업글족의 소비패턴을 담은 광고도 있다. 카스맥주의 최근 TV광고(사진)에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가 등장한다. 멋진 오토바이 사진을 눈앞에 두고 ‘갖고 싶은 걸 위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 광고를 기획한 강홍구 웰컴 AE는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은 사고야 마는 ‘열정’을 지닌 젊은층이 광고의 타깃”이라고 설명했다.업글족 중에는 신제품이 출시되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구제품을 중고시장에 파는 사람이 많다. 팔 때를 대비해 제품에 결함이 생기지 않도록 애지중지한다. 니콘의 디지털 카메라 쿨픽스 2500 모델을 최근 구입한 이경선씨(28)는 “디카(디지털 카메라)의 LCD 액정을 보호하기 위해 화방에서 ‘마스킹 필름’이라는 테이프를 구입했다”며 “디카 외관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전용가방도 곧 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재판매를 염두에 두고 제품의 박스, 포장재, 설명서 등도 잘 보관해 둔다.신제품의 초기 수용자(얼리어답터)가 모인 인터넷 사이트 중 대표적인 것은 ‘얼리어답터’(www.earlyadopter.co.kr). 지난해 8월 문을 열어 현재 4만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사이트의 최문규 대표가 업그레이드한 대표적 제품은 노트북. 애플 파워북부터 소니 Vaio, IBM 싱크패드 시리즈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노트북은 무려 17대다.최씨는 “얼리어답터 회원들은 물품을 구입하기 직전까지 매우 신중하게 계획을 세운다”며 “주변 친지는 물론 제품의 프리뷰가 게제된 웹사이트, 신문, 잡지의 기사들, 관련 제품 동호회 등을 통해 철저하게 정보를 모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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