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품질’ 책임지고 있는 거대한 실험실

특별취재팀= 이창희 기자(취재)·김진상 자동차전문가·황선민 기자(사진)프랑스에는 한국과 달리 유난히 소형 승용차가 눈에 많이 띈다. 프랑스 소비자들이 실용성과 경제성에 높은 비중을 둬 자동차를 구매하기 때문이다. 르노자동차의 클리오는 소형차시장의 강자다.지난해 프랑스에서만 18만9,472대가 팔렸고, 전세계적으로 67만3,443대가 판매돼 르노의 효자차종으로 자리를 굳혔다. 프랑스에서 팔리는 클리오는 파리 인근의 플렝공장에서 조립 생산된다. 지난해 이곳에서 21만5,971대의 클리오가 만들어졌다. 플렝공장에선 클리오와 같은 급의 트윙고도 생산한다.플렝공장의 하루는 오전 5시45분부터 시작된다. 이는 근로자 6,699명 중 1교대조의 출근시간으로 오후 1시10분까지 7시간(점심시간 제외)을 작업하고 나면 2교대조가 오후 1시10분부터 오후 8시25분까지 조립라인에 투입된다.그러나 스탬핑 라인은 3교대로 작업을 한다. 장피에르 비조 플렝공장 홍보담당은 “정부가 종업원들의 법정근로시간을 주 35시간으로 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공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한 것이 도요타의 다하라공장과 사뭇 다르다. 여러 인종들이 많이 보이는 것도 다르다. 하지만 간혹 담배를 피우며 작업하는 근로자들은 아직 우리 눈에 낯설어 보인다.페인트칠에 들어가기 전의 자동차 몸체를 ‘화이트보디’(White Body)라고 한다. 이 공정은 100%에 가까울 정도의 자동 로봇 용접을 통해 이뤄진다. 이들 로봇은 모두 르노가 자체적으로 생산한 것이다.김진상 자동차전문가는 “다른 공장에서는 몇 단계를 거쳐 화이트보디가 탄생하는 데 반해 이곳에서는 네 군데에서 뻗어나온 로봇들에 의해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게 다르다”며 귀띔한다. 이렇게 조립된 화이트보디는 매시간 한 개씩 검사실로 갖고 가 1,800곳의 용접포인트를 검사하고 문제가 없으면 다시 라인에 투입된다.과연 이곳에서는 화이트보디 용접포인트에 대한 통계적 관리를 할까? 비조 홍보담당자는 “이곳에서는 이미 공정능력이 확보됐기 때문에 통계적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러나 다른 차종은 통계적 관리를 통해 공정능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공정능력이란 예컨대 용접포인트의 경우 오차범위가 ‘±3시그마’에 진입한 것을 말한다. 즉 용접포인트가 일정하고 정확하다는 얘기다.시트 백큐임으로 장착 ‘눈길’도장라인을 거친 화이트보디는 이미 하나로 집합된 파워트레인, 엔진 및 머플러 등 하체와 동시에 조립된다는 게 재미있어 보인다. 마치 자동차 하체를 조립하고 여기에 뚜껑을 씌워 완성시키는 자동차 조립장난감과도 흡사해 보이기 때문이다.김전문가도 “그동안 여러 자동차 공장들을 둘러봤지만 이 런 시스템은 처음 본다”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화이트보디가 라인을 흘러가며 엔진, 파워트레인, 머플러 등이 단계적으로 장착되는 게 일반적인 자동차공장의 조립시스템이다. 자동차 하체에 화이트보디가 씌워지면 밑에서 동시에 솟아나온 수십개의 드라이버들이 볼트와 너트로 단단히 조인다.이런 과정을 거치면 시트조립으로 이동된다. 시트 재고보유분은 2시간. 일반 부품 재고분이 1.5일 분인 점을 감안하면 아주 소량의 재고로 갖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재고관리에 관한 한 탁월한 일본 닛산자동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시트조립도 특이하다. 보통 작업자가 직접 시트를 들거나 로봇팔로 잡아 장착하는 데 플렝공장에선 진공기(백큐엄)로 의자를 들어 옮긴다. 이렇게 하면 시트에 흠집을 남기지 않아 작업 중 불량품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진공기가 시트를 장착하는 과정에 시트 및 자동차 차체에 흠집을 낼 소지가 있는 곳에 테이프를 감은 데서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비조 홍보담당은 “진공기로 시트를 장착하는 것은 이곳이 처음”이라며 “여기서 개발한 후 모든 공장으로 확대시켰다”고 말한다.이외에도 작업상 여러 개선점들을 이곳에서 집중 연구 내지 개발해 실험한 후에 성공적이라고 판단하면 다른 공장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점을 볼 때 플렝공장은 거대한 실험실이나 다름없는 셈이다.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공장 내 훈련장을 따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작업자들이 다른 공정으로 이동할 경우 그곳의 실제 작업환경과 같게 만든 이곳 훈련장에서 3시간 30분 정도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변화된 작업환경에 잘 적응시키기 위한 조치다. 이는 작업자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르노의 인사정책과 무관하지 않다.플렝공장에서의 완성차 검사는 어떻게 이뤄질까 궁금했다. 하지만 대외비라는 이유로 공개를 꺼려 아쉽지만 의장라인까지만 둘러보는 것으로 공장견학을 마쳤다.돋보기 / 김진상 자동차전문가가 본 플렝공장일본 ‘벤치마킹’흔적 역력플렝공장은 조립라인에 부품이 거의 없는 것을 볼 때 JIT(Just In Time)시스템이 잘 적용된 공장이라는 느낌이다. 일부 쌓여 있는 부품들은 잘 정리돼 있어 근로자들이 규칙과 규정을 지키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마 인수한 일본 닛산자동차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작업자들의 분위기는 즐겁고 자유스러워 보였지만 공장의 청결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전제적인 품질관리는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았지만 화이트보디를 매시간 하나씩 체크하는 것에서 품질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업에 대한 개선노력도 돋보였다. 아마도 플렝공장이 르노자동차그룹 공장의 모델공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주35시간 근로제도에 대비한 흔적도 역력했다. 작업자들의 유연성을 강조하며 생산라인의 자동화가 많이 이뤄진 것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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