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인터넷 기업에 근무하는 임은영씨(29)는 얼마 전 용인시 신갈지구에서 분양하는 32평형 아파트의 주인이 됐다. 미혼인 임씨가 이 아파트에 묻은 돈은 1,500만원.총분양가 1억7,000만원 가운데 계약금 1,000만원과 분양권 프리미엄 500만원을 주고 분양권을 양도받았다. 이 아파트는 계약금만 내면 나머지 중도금은 전액 무이자로 대출해주기 때문에 입주시점인 2004년 10월까지 추가로 들어갈 돈은 없다.하지만 임씨는 이 아파트 분양권을 올 가을에 되팔 생각이다. 예상투자기간은 4개월. 부동산경기가 상승세를 타는 만큼 그때까지 프리미엄이 꽤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적어도 웃돈시세가 1,000만~1,500만원 정도는 될 것”이란 게 그녀의 예상이다.임씨는 지난해 겨울에도 용인시 구갈3지구의 한 아파트에 투자, 한 달 만에 350만원을 남긴 경험이 있다. 친언니와 함께 각각 1,000만원씩 투자해 분양권을 산 후 총 700만원의 웃돈을 받고 팔아 수익을 절반씩 나눠 가진 것이다.“한 번에 수억원 투자해 수천만원의 시세차익을 남기는 ‘큰손’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틈틈이 부동산 관련 제도나 흐름을 눈여겨보고 실전투자를 해서 적으나마 수익을 바라보는 게 상당히 재미있어요. 조금만 신경 쓰면 한달 봉급 정도를 부수입으로 올릴 수 있거든요.”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사는 주부 이성은씨(37)도 지난 봄 부동산투자자 대열에 합류했다. 친하게 지내는 고교동창 3명과 함께 경기도 가평군의 토지를 매입한 것. 각각 1,200만원씩 부담해 총 4,800만원을 들여 산 곳은 전원주택이 들어서면 좋을 만한 350여 평 규모의 준농림지다.부동산컨설팅업체에 근무하는 이씨의 친구가 추천한 이 땅은 조만간 도로개설이 예상돼 가치상승이 기대되는 곳. 이씨나 친구들 모두 토지투자는 처음이지만 연 5% 남짓인 은행 정기예금 금리보다 낫겠다는 생각에 의기투합했다.“주5일 근무제가 차츰 시행되면서 전원주택시장이 뜬다고 들었어요. 직접 가보니 풍광이 참 좋더라고요. 지방도로가 개설되면 가격이 오를 게 확실하다 싶었어요. 제비뽑기를 해서 대표를 정하고 그 친구의 명의로 매입을 했습니다.”이씨와 친구들은 1년짜리 정기예금에 돈을 넣어두는 셈치고 내년 봄에 이 땅을 팔아 수익을 나눌 계획이다.케이블TV에서 구성작가로 일하는 최미숙씨(34) 역시 2개월 전 동료들과 공동투자를 감행했다. 지난해 부동산 정보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줄곧 관심을 가져오다 자신의 방송에 출연했던 부동산 컨설턴트의 권유로 실전에 나섰다.최씨는 회사 내에서 희망자를 모집, 3명이 2,000만원씩 모아 서울 성동구 재개발 예정지에 있는 낡은 집을 샀다. 매매가가 9,000만원인 이 집에는 보증금 3,000만원에 세입자가 살고 있기 때문에 실투자금액은 6,000만원. 이르면 내년에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 줄잡아 4,000만원 선의 투자수익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 어려워서 그렇지, 부동산투자는 의외로 쉬운 것”이라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수도권 분양시장 ‘주무대’부동산시장에 젊은 여성 투자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모여들고 있다. 초저금리가 계속되자 은행에 고이 모셔 두었던 여유자금을 인출해 부동산에 투자, 수익을 현실화하려는 이들이다.이들의 공통점은 비교적 적은 돈을 굴린다는 것. ‘부동산 투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금이 확보돼야 가능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1,000만~2,000만원 정도의 소액으로 쏠쏠한 수입을 올린다. 이른바 ‘적게 투자해 적게 먹겠다’는 신조를 가진 ‘작은손’들이다.이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수도권 분양시장. 요즘 경기도 용인, 남양주, 광주 등지의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온 20대 후반에서 30대의 젊은 여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7월 말 분양을 마친 남양주시 호평지구 H아파트 모델하우스 관계자는 “1~2년 전만 해도 모델하우스 방문객 가운데 20~30대 젊은 여성들의 비중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모델하우스를 누비며 적극적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대화를 나누다 보면 부동산 지식도 상당하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 명의나 가족 명의의 청약통장으로 직접 분양을 받아 이내 프리미엄을 붙여 되팔거나 당첨자의 분양권을 사서 단기간 보유하다가 시세차익을 남기고 되파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이처럼 작은손들이 수도권 분양권에 관심을 기울이는 가장 큰 이유는 소액ㆍ단기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아파트 분양받기가 복권당첨에 비유될 만큼 어려운데다 분양권 프리미엄도 수천만원을 호가하기 일쑤이지만 수도권은 그렇지 않다는 게 포인트.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수요도 꾸준한 20~30평형대 중소형 아파트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특히 계약금만 내면 중도금을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아파트는 더없이 좋은 공략 대상이다. 1,000만원 안팎의 계약금을 내면 중도금 납부 걱정 없이 적당한 매도시점만 잡으면 되기 때문. 당첨자 발표와 계약을 마친 분양권은 사고파는 데 법적인 하자가 없어 마음도 편하다.용인지역 분양권 중개를 하고 있는 부동산라이프 문순님 사장은 “비교적 매물이 풍부하고, 프리미엄도 제법 형성되기 때문에 젊은 소액투자자들의 관심이 높다”고 말하고 “다만 허가 없이 운영하는 ‘떴다방’과 거래하거나 해당 아파트에 대한 지식 없이 ‘묻지마’ 투자를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밝혔다.자금력 대신 정보와 열정으로 무장그룹으로 움직이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작은손들의 특징 중 하나다. 혼자서 투자를 감행하기보다 2~3명씩 짝을 이뤄 자금을 모으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재개발 투자 전문 REI부동산컨설팅 정용진 실장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끼리, 친구끼리 공동투자를 할 만한 상품이 없는지 묻는 이가 상당히 많다”고 밝혔다.기대만큼 투자수익을 달성했을 경우에는 서로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시너지효과도 덤으로 따라오게 된다.작은손들은 정보수집 능력이나 감각 또한 남다르다. 인터넷을 활용해 수시로 분양일정을 파악하고 부동산전문가들의 조언도 귀담아 듣는다.임씨와 최씨는 4~5개 부동산 정보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해 수시로 정보를 탐색하고있다. 특히 업체가 제공하는 정보를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유ㆍ무료상담실을 적극 활용하고 커뮤니티 활동도 즐긴다. 임씨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부동산 포럼이나 한화리츠의 재테크 클럽에서는 부동산업계 종사자들이 내놓는 고급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부동산투자자 = 복부인’이라는 관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큰손들이 특정지역의 매물을 매집해 시장을 교란시키는 경우는 최근 서울 강남의 집값 폭등 현상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에 비하면 작은손들의 투자 혹은 투기 행태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이들은 큰손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틈새시장을 찾아내 적은 자금이나마 정성껏 굴린다.간혹 ‘묻지마’ 투자로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은손들은 열심히 발품을 팔아 직접 투자가치를 확인한 후 투자에 임한다. ‘떴다방’ 뺨치는 부지런함을 보이는 이들을 두고 ‘나방’(나홀로 떴다방)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작은손들의 세확장에 관심이 모아진다.돋보기/ 부동산투자 변천사60년대 말죽거리 토지 7년만에 100배 ‘껑충’최근 벌어진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값 폭등현상의 뿌리는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동산 칼럼니스트 최명철씨는 자신의 저서 에서 67년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 발표를 ‘땅 투기 바람의 원조’라고 밝혔다. 수십년간 부동산 관련 자료를 수집해 온 그는 “67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구체화되자 예정지 주변으로 시중자금이 몰려 땅 투기가 절정을 이뤘다”고 밝혔다.특히 도시와 가까운 인터체인지 주변 지역의 땅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졸부’를 양산시켰다. 당시 언론에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토지투기가 이뤄졌다”고 보도할 정도였다.정부가 ‘부동산투기 억제세’라는 과세항목을 만들면서 기세가 꺾였지만 69년 제3한강교(현재 한남대교)가 개통돼 강남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땅값은 다시 춤추기 시작했다.특히 현재의 서울 양재동인 말죽거리 일대는 ‘복부인’들이 대거 몰리면서 ‘황금의 땅’이 됐다. 자고 일어나면 땅값이 오르는 통에 등기부를 열람하거나 현장을 답사하지도 않고 지적도만으로 매매거래를 했다. 오늘날의 ‘묻지마 투자’였던 셈이다.연 23%에 이르던 은행이자를 포기하고 토지투자를 선택할 정도였으니 그 오름세를 짐작할 만하다. 62년 평당 300원선이었던 땅값은 69년 말에 평당 3만원 이상이 돼 7년 동안 100배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81년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주공아파트가 분양되면서부터는 주부들 사이에 ‘청약계’가 성행하기 시작됐다. 200만원짜리 청약통장에 프리미엄이 2,000만원까지 붙었다. 그러나 당첨만 되면 프리미엄이 3,000만~4,000만원이나 형성돼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고.최명철씨는 “90년대 들면서부터는 복부인의 개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포트폴리오 구성 차원에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중산층이 늘면서 투자계층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 강남지역 가격상승세와 같은 이상현상은 복부인이 아닌 ‘작전세력의 개입’으로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