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소송처럼 확대될까 ‘전전긍긍’

미국인의 허리가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 한 해에 30만명 이상이 비만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고, 70년대 후반 5%에 불과하던 과체중 청소년 비율은 이제 15% 선으로 상승할 정도다.이 같은 비만증가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최근 들어 비만논쟁이 전국적인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식품업계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비만의 책임이 식품업체들에 있다고 주장한다. 식품업계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공박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폭풍이 몰아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책임론을 피해가기 위한 각종 대책 마련에 바쁘다.‘식품업계 책임론’이 수면에 떠오른 것은 지난해 12월. 미국 보건부가 미국인의 비만이 유행병 수준에 도달했다고 경고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한 ‘국가적인 행동’을 요구하면서부터다.의회에서는 이미 연간 30만명이 비만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는 상황에서 비만은 조만간 ‘담배’보다 더욱 빠르게 죽음으로 가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며 비만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했는데 이 중 상당수가 식품업계와 관련된 사항들이다.어린이들을 겨냥한 설탕함유량이 높은 식품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고지방·고탄산 식품 등의 상표에 지방이나 탄산의 함유량과 이로 인한 부작용을 눈에 띄게 상세하게 기재토록 하는 내용들이다.특히 지난달 발표된 세계보건기구(WHO)의 잠정보고서는 식품업계를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설탕함유 식품의 과세는 물론 마케팅도 더욱 까다롭게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이 보고서가 힘을 얻으면 식품업계는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다.‘맥도널드 소송 화해비용 1천만달러 들어긴장한 식품업계도 공동대응에 들어갔다. 회원사들의 연매출을 합하면 4,600억달러에 달하는 강력한 조직인 미국식품제조협회(GMA)는 7월 상원 청문회에 “미국인들의 체중증가의 원인을 개별 식품으로 돌리지 말라”고 강력히 요구했다.일반 학교와 마을에 ‘건전한 식생활과 운동습관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위한 법률안을 만들고 있는 상원의 움직임에 적극 대응하려는 뜻에서다. 상원이 추진하는 이 법률은 기본적으로 식품업체들이 문제가 있다는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식품업체들은 이미 각종 소송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세계 최대 식품체인인 맥도널드와 채식주의자 사이의 소송. 인도계 힌두교도들은 맥도널드가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감자튀김(프렌치프라이드)을 동물성 기름으로 튀겼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맥도널드는 최근 소송 화해비용 중 일부로 1,000만달러를 힌두교 그룹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피자헛도 비슷한 송사에 걸려 있다. 채식주의자들은 피자헛이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피자’에 고기를 넣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회사측은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은 채 이 제품을 채식주의자용으로만 판매한다고 마케팅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빅 대디’라는 유명 아이스크림메이커인 디코나 아이스크림도 플로리다주에서 제품의 지방과 칼로리 함유량을 과소 표기한 것 때문에 집단소송에 걸려 있다. 회사측 변호사들은 표기가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의도되지 않은 그야말로 ‘실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처럼 지금까지의 소송은 주로 ‘살찌는 음식을 팔았다’는 점이 아니라 ‘잘못된 사실을 기재했거나 허위선전을 했다’는 내용들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앞으로 담배 자체가 몸에 나쁜 제품이라는 견해처럼 비만제품을 만들었다는 자체에 대한 소송이 제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실제 노스이스턴대학 로스쿨의 리처드 데이나드 교수가 이끄는 담배 소송 프로젝트팀은 식품업체들에 대한 비만 관련 소송에 사용될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하고 있다. 데이나드 교수는 “식품과 담배가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을 사실이지만 상당한 공통점도 있다”며 “앞으로 식품소송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말하고 있다.물론 식품업체들은 이 같은 잠재적인 소송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려 한다. 그러나 많은 업체들이 세계 최대 담배업체로 오레오쿠키 등 많은 스낵류를 생산한 크래프트 식품의 모회사인 필립모리스를 주시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필립모리스는 담배 관련 소송의 화해비용으로 연간 40억달러를 쓰고 있어 소송에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회사다.필립모리스의 소송을 전담하는 법률고문인 윌리엄 올레메이어는 “식품은 담배와는 달리 소송을 위한 법률적·사실적 장애물이 너무 많아 식품회사들에 대한 소송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라고 밝힌다.예를 들어‘특정 식품을 먹었다는 사실과 비만과의 관계’는 ‘흡연과 폐암과의 관계’보다 훨씬 증명하기 어려운데다 비만은 식품 이외에 개인적인 운동부족 등이 더욱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실제 1,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GMA의 설문 조사 결과 ‘누가 비만에 책임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응답자의 57%가 ‘자기 자신’이라고 답했고 ‘식품회사’(5%)나 ‘식당’(2%)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식품업계가 과소비에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식품정치학’이란 책을 쓴 마리온 네슬이라는 영양학자도 식품이 담배처럼 중독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바로 이 중독여부가 각종 담배소송에서 원고들이 이길 수 있었던 아주 핵심요인이다.하지만 식품업계들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여러 가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기본적인 전략은 ‘소설 마케팅’. 식품회사들이 식품과 건강유지와 관련된 공익광고를 하고 학교나 사회단체의 체력 증진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기금을 마련하는 등 사회 전반적인 건강에 초점을 맞춘 공익적 마케팅을 확산한다는 전략이다.개별 기업들도 이 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크래프트는 최근 몇 년간 자사의 웹 사이트에 건강과 관련한 정보를 상당히 확대하고 있다. “사람들이 우리의 제품을 건강을 만드는 방법으로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코카콜라의 경우 학생들이 운동량을 늘릴 수 있도록 애틀랜타, 휴스턴, 필라델피아 지역의 중학생들에게 하루에 몇 걸음 걸었는지 알 수 있는 경보기를 나눠 주었고, 펩시도 유명 피트니스전문가인 케네스 쿠퍼 박사와 함께 ‘펩시-쿠퍼 에어로빅센터’를 만들어 건강식품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이런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다. 켈리 브라운넬 예일대 교수는 “운동도 중요하지만 운동은 건강을 지키는 데 필요한 절반에 불과하다”며 여전히 식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비만예방을 위한 식품업계에 대한 공격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얘기이기도 하다. dong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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