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반도체 ‘돈가뭄’에 시름

실리콘밸리가 극심한 ‘돈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젖줄인 벤처캐피털이 몸을 사려 투자에 인색하기 때문이다.이 같은 현상은 미국 벤처캐피털 투자실적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미국 벤처캐피털협회(NVCA)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벤처이코노믹스가 공동으로 집계한 머니트리(MoneyTree)조사에서 지난 2분기 벤처 투자규모는 57억달러로 전분기보다 11%나 줄어들었다.2000년 2분기부터 9분기 연속 감소세가 이어져 98년 3분기 이후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벤처자금을 유치한 기업은 819개로 전분기의 826개에 비해 약간 줄었다.이처럼 벤처투자가 위축된 것은 불확실한 경제상황이 이어지고 IPO시장이 위축돼 투자금을 회수할 길이 마땅치 않아 벤처캐피털이 투자에 소극적이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내용을 뜯어보면 돈가뭄의 심각성이 더욱 잘 드러난다. 투자유치기업을 성장단계별로 나눠보면 확장기에 있는 기업이 488개로 전체 투자금액의 66%를 차지했다. 반면 벤처캐피털의 주된 투자 대상이 초기단계 기업은 233개, 금액은 19%에 그쳤다. 기업의 창업 초기단계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게 벤처캐피털의 일반적인 투자패턴.초기단계 기업에 대한 투자비중은 투자 붐이 일기 전인 96~98년에는 약 절반을 차지했으며 벤처투자 붐이 절정에 이른 지난 2000~2001년에도 40% 선을 유지했었다. 초기단계에 대한 투자비중이 줄어든 것은 벤처캐피털들이 새로운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기보다 이미 투자한 기업들에 계속 자금을 쏟아부어 불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산소마스크’ 노릇에 치중했다는 얘기다.업종별로는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와 반도체 분야가 각각 47%와 31%가 줄어들어 두드러지게 위축됐다. 10억달러가 투자된 소프트웨어 부문은 여전히 1위를 유지했으나 16%나 줄었고, 통신 분야에 대한 투자액 역시 16%가 감소했다.그러나 2분기 벤처 투자실적에서 희망적인 면도 없지 않다.우선 바이오 및 의료기기 등 생명과학 분야가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줬다. 바이오테크의 경우 9억5,800만달러를 유치해 2위를 차지했다. 1분기의 8억3,600만달러에 비해 15%가 늘었다. 의료기기에 대한 투자는 43%가 늘어난 5억5,6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들 두 분야에 투자된 벤처캐피털 자금은 전체 투자규모의 27%나 된다. 이는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비중이다.또 하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벤처캐피털들의 투자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US벤처파트너스처럼 투자기업이 벌써 10개를 넘는 벤처캐피털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투자 대상 기업이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 그 증거이다.기업인들에게 자금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벤처이코노믹스 제시 레이스 부사장은 신규투자가 비교적 활발한 분야는 소프트웨어와 바이오테크라고 소개했다.벤처캐피털협회 마크 히센 회장은 “요즘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투자에 성공하려면 자금을 보유해 기존 투자회사를 지원하는 한편 5~7년 후에 성공할 새로운 기업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오늘날 같은 불황에 투자를 받는 기업들이 가장 성공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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