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스의 손 ‘부동산 디벨로퍼’

부동산 개발회사 신영의 정춘보 사장(47)은 ‘1세대 부동산 디벨로퍼’로 불린다. 혹자는 ‘한국의 도널드 트럼프’, ‘미다스의 부활’로 그를 표현하기도 한다. 모두 탁월한 능력을 치켜세우는 찬사다.그도 그럴 것이 정사장이 손을 대면 십중팔구 ‘대박’이 터졌다. IMF 위기 이후 변화된 부동산시장에서 그만큼 승승장구한 인물도 드물다. 부동산 입문 18년 만에 ‘신영 정춘보’라는 이름은 부동산 개발의 첨병으로, 주거용 분양시장의 톱스타로 떠올랐다.“사실 지금은 일할 때지, 내세울 때가 아닙니다. 그간의 성과는 지나간 것이고, 언제나 새로운 일이 현재진행형으로 추진되니까요.”인터뷰 전날 석재를 고르기 위해 제주도 출장을 다녀왔다는 정사장은 되도록 미디어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당장 해야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땅에서 해야 할 일 너무 많다”정사장의 이력은 ‘입지전적 인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동아대 토목학과를 중퇴하고 25세 때 부산시청 항측계 말단공무원으로 취직할 때만 해도 지금의 모습은 스스로도 상상 밖이었다. 그러나 헬기를 타고 다니며 시내 개발현황을 파악하는 임무를 맡고 나서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땅은 무한한 잠재력을 뽐내며 그에게 손짓했다.2년여의 공무원생활을 접고 상경한 84년, 신영기업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부동산판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0여년간 소규모 컨설팅업과 임대업을 하며 감각과 노하우를 키웠다.무명이었던 정사장이 수면 위로 부상한 건 97년부터였다. 분당신도시 외곽의 골칫덩이 땅을 유럽형 오피스텔 ‘시그마Ⅱ’로 개발해 대성공을 거두면서 명실상부한 부동산 디벨로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시그마Ⅱ 부지는 공중으로 고압선이 지나가고 경부고속도로가 옆으로 위치한 악조건 때문에 팔리지 않던 맹지였다. 그러나 정사장 눈에는 잘 다듬으면 금싸라기가 될 땅으로 보였다.고압선은 저층설계로 피했고 ‘신세대 감각의 서구형 호텔식 오피스텔’이라는 신개념을 앞세웠다. 국내외 전문업체에 설계, 시공, 관리, 조경을 맡기고 분양가는 주변 아파트값보다 낮게 책정했다. 결과는 초기 90%의 분양률로 돌아왔다.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성과였다.99년에는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 로얄팰리스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10년 만에 분당에 새 아파트가 나온다’는 마케팅포인트가 적중했고, 정사장은 연타석 홈런을 날린 올스타가 되었다.“디벨로퍼 지망생, 실전 경험 많이 쌓아야”이후 분당 로얄팰리스 하우스빌, 서울 양재동 신영체르니, 용인 죽전 프로방스 등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정사장과 신영은 ‘한국 대표 디벨로퍼’로 자리를 잡았다.이제 건설업체들은 그와 손잡기 위해 줄을 선다. 지난날 정사장을 문전박대하던 은행들도 그를 최고의 파트너로 대한다.“부동산디벨로퍼가 제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IMF 위기 이후 재벌의 구조가 바뀌면서부터 입니다. 이전까지는 번듯한 기업 아니면 은행돈 빌리기도 어려웠죠. 그러나 언젠가는 파이낸싱이 자유롭게 성사될 날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대기업도 부럽지 않아요.”작은 컨설팅업체에 불과했던 신영 역시 지난해 순이익과 매출액이 가장 많이 증가한 기업 10위권에 속할 정도로 훌쩍 자라났다. 60여명의 직원이 1인당 24억100만원의 매출을 올렸으니 실로 엄청난 실적이다. 순이익만도 110억원이 넘어 전년 대비 710%가 증가했다. 게다가 올해는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많은 3,20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주거용 시설 공급 물량도 지난해의 2배가 넘는 2,705세대 규모로 잡고 있다.이렇게 외형과 내실을 단단히 구축했음에도 정사장은 매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아침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해 오후 10~11시까지 일에 매달린다. 직원들은 정사장을 두고 “꼼꼼하기로 따를 자가 없다”고 말한다. 크고 작은 회의를 직접 챙기고, 사소한 사안도 확인을 거듭해 ‘끝’을 보고야 만다는 것이다.“부동산 디벨로퍼는 땅 확보부터 입주 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일관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벨로퍼로 성공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렵지요. 당장은 이익이 난 사업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이너스로 돌아서곤 하니까요. 매 과정 세심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전문가라도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게 개발사업입니다.”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은 직업이 부동산 디벨로퍼라는 설명이다.정사장은 부동산 디벨로퍼를 꿈꾸는 이들에게 “먼저 경험을 많이 쌓으라”고 조언했다. 학문적 지식을 쌓은 사람도 실전 경험 없이 단기간에 부동산 디벨로퍼로 성장하진 못한다는 것이다. 또 “책임과 신의야말로 디벨로퍼의 첫째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남의 돈을 관리하는 일인 만큼, 믿음을 주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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