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건조기, 안경테, 우산, 국수, 두부, 일회용 주사기 등의 공통점은 뭘까. ‘중소기업 고유 업종’이 정답이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란 정부가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 총 45개 업종이 지정돼 있으며 대기업이 진입할 경우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이처럼 중소기업 고유업종이 정해진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은 영역에서 싸우면 중소기업은 ‘필패’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했다. 마찬가지로 법으로 정해진 ‘대기업 고유업종’은 없지만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쉽게 뛰어들지 못했다.‘대기업과 맞서면 승산이 없다’는 패배의식 때문이다.이런 패배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대기업과 같은 영역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작은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어 관심을 끈다.마치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처럼 대기업과 당당히 맞서는 작은 기업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우선 꼽는다. 자유경쟁체제가 강화됨에 따라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직접 경쟁하게 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특히 IT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역 구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혼전 중이다. 게다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시장개방이 이뤄져 다국적 기업들과의 직접 경쟁도 피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인 것도 한몫 했다.그렇다면 덩치가 작은 기업들이 대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는 비결은 뭘까.전문가들은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남들이 흉내내기 힘든 경쟁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특화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과 인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특정 분야에 회사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TFT-LCD 모니터 제조업체인 BTC정보통신의 경우 내수시장에서는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까닭에 시중판매보다는 기업판매에 집중했다. 반면 품질과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해외시장에서는 공략지역을 서유럽으로 집중하고, 자체 판매망을 갖추는 등 대기업과 정면대결을 벌인 것이 성공요인이다. 이 회사의 신영현 사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특정지역과 시장을 집중 공략한 것이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아울러 해외시장에 과감하게 눈을 돌려야 한다. 내수시장만 바라봤다간 대기업의 브랜드파워와 가격경쟁력에 밀리기 십상이다. 애초에 세계시장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해외시장에서는 명성보다 품질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품개발단계부터 세계시장의 수요와 요구를 감안하고 해외시장을 공략해야 한다.휴맥스가 그런 경우다. 가 매년 선정하는 ‘한국의 100대 기업’에서 올해 65위로 선정된 휴맥스는 지난 89년 7명이 모여 설립한 조그만 회사였지만 설립 당시부터 해외시장을 집중 공략해 지난해 3,151억원의 매출과 88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대기업으로 성장했다.휴맥스의 주력 업종은 셋톱박스로 필립스와 같은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해서 올린 실적이라 더욱 값지다. 변대규 휴맥스 사장은 “높은 기술력, 자체 브랜드, 틈새시장 공략 등 삼박자를 갖춘 중소기업이라면 해외에 진출해도 승산이 있다”고 조언했다.또 기술력이 앞서 있어야 틈새공략도, 해외진출도 가능한 법이다. 기술력이 없다면 생존자체가 불가능하다. 해외 유명 브랜드 업체가 국내 전기면도기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한 상황에서 국내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30%의 시장점유율을 지키고 있는 조아스전자의 성공비결이 이를 방증한다.이 회사는매출 대비 15% 이상을 기술개발비에 투자하고 있으며 전문기술개발팀 15명과 전문디자이너 6명을 두고 신제품 개발에 나설 정도로 기술력에 집중했다. 중소기업인 조아스전자가 이런 기술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해외 유명 브랜드 업체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을까. 오태준 조아스전자 사장은 “우리는 기술력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에 한 번도 경쟁사 제품을 베끼지 않았다”고 말했다.이 밖에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에 맞서 성공한 중소기업들의 공통점은 설립 당시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듀오백의자로 널리 알려진 (주)해정은 처음에 거의 모든 대형매장에서 제품진열조차 거부당할 정도로 기존 대기업들의 텃세에 시달렸다.대표이사를 비롯한 전직원이 의자를 들고 직접 기업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TV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 등을 적극 활용하는 등 고생 끝에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경우다. 이 회사 정해창 사장은 “판로개척이 어려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TV홈쇼핑 등 새로운 유통망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효했다”고 말했다.지금은 전기밥솥의 대명사가 된 쿠쿠도 24년간 OEM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 기술력은 인정받았지만 ‘쿠쿠’라는 독자 브랜드로 나선 이후 두 달 동안 단 1개의 밥솥도 팔지 못할 정도로 고전했다. 쿠쿠가 1년에 5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나가지 않았다면 오늘의 ‘쿠쿠’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때문에 브랜드 인지도를 어떻게 높여갈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