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지수펀드(ETF) 투자 올가이드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이호상씨(34)에게 최근 500여만원의 현금이 생겼다. 직장을 옮기면서 약간의 퇴직금이 들어온데다 3년 동안 꼬박꼬박 부어 온 적금을 찾았기 때문이다. 종합주가지수가 700대 근처를 오가던 지난 8월 초, 이씨는 ‘이 돈으로 주식투자를 해볼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리 많지는 않아도 이씨에게는 소중한 돈인데 주식이라는 위험한 자산에 투자해도 될까 우려는 됐지만 종합주가지수가 워낙 급하게 곤두박질을 쳤기 때문에 앞으로 어느 정도 시장이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평소 주식을 비롯한 자본시장에 적잖은 관심을 가져 왔던 이씨지만 막상 투자할 종목을 고르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음 편하게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가를 움직이는 대형우량주를 사고 싶었지만 그가 가진 금액으로는 고작해야 삼성전자 10주에 SK텔레콤 6주 정도밖에 살 수 없으니 답답할밖에. (거래소 주식 최소거래단위는 10주다.)이씨와 같은 소액 개인투자자가 관심을 가져도 좋을 만한 상품이 곧 선보인다. 상장지수펀드(ETF)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신기한 형태의 새 펀드는 오는 9월 중순께 거래가 가능해질 예정이다.10만원으로 100종목 분산투자 효과상장지수펀드(Exchange Traded Fund)는 한마디로 인덱스펀드의 안정성과 일반 주식의 유동성을 한몸에 갖춘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KOSPI 200이나 KOSPI 50 등 특정 주가지수와 연동해 움직이면서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거래되는 펀드다.일반 수익증권과는 크게 두 가지가 다르다. 펀드 설정에 개인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과 주식시장을 통해 펀드를 사고팔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수익증권들은 개인 또는 기관투자가가 현금을 운용사에 맡기면 운용사에서 이 돈을 모아 시장에서 주식을 사고팔며 운용하게 된다. 하지만 ETF는 운용사가 펀드를 모집하면 증권사들이 현물주식을 납입해 펀드를 만든다. 이 증권사들은 AP증권사라고 불리는데 펀드의 설정과 해지는 이 AP들이 담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개인투자자들은 투자신탁회사에 가서 펀드에 가입하는 게 아니라 주식시장에 상장된 ETF를 사고파는 방법을 통해서만 투자에 참여할 수 있다.ETF는 기본적으로 그 성격이 인덱스(지수)펀드와 매우 비슷하다. 인덱스펀드란 그 수익률이 KOSPI200과 같은 특정 주가지수와 똑같이 움직이도록 설계된 펀드를 말한다. 지수가 움직이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종목들을 시가총액 비중대로 사서 펀드자산에 넣어둔다면 (이론적으로는) 지수와 똑같은 수익률을 낼 수 있게 된다는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 시장이 좋아서 상승장이면 인덱스펀드 수익률 역시 좋을 것이고, 전체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라면 인덱스펀드 수익률 역시 장과 함께 하강곡선을 그리게 된다. 인덱스펀드의 매력이라면 특정 종목에 투자하는 것보다 위험이 분산된다는 것, 운용에 대한 투명성이 일반적인 펀드보다 높다는 점 등이 있다. 이런 장점에 힘입어서인지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투신사들의 각종 펀드상품 중 인덱스펀드에 돈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모두 10조원 규모의 주식형 펀드 중에서 인덱스펀드의 비중은 1조5,000억원으로 10% 이상 차지하고 있다. ETF는 이 같은 인덱스펀드 성격에다 거래소에 상장돼 주식과 똑같이 사고팔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반적인 펀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동성까지 확보하는 장점을 갖췄다.9월 중순께 4개의 ETF가 처음으로 설정, 상장될 예정이다. 삼성투신운용과 한국투신운용이 ‘KODEX’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삼성은 코덱스200(KOSPI 200 지수를 대상으로 하는 펀드)을, 한투는 코덱스50(KOSPI 50 지수 펀드)을 설정한다. 삼성컨소시엄에는 AP증권사로 굿모닝신한, 도이치, 살로몬스미스바니, 삼성, 한투증권 등이 참여하고 있다. LG투신운용과 제일투신운용은 ‘COSEF’라는 브랜드를 써서 각각 ‘코세프200’과 ‘코세프50’을 설정, 운용할 계획이다. LG컨소시엄에는 대신, 대우, 동원, 동양종합금융증권, 제일투자증권, 하나, 한화, 현대, LG투자증권 등이 AP로 참여했다.대형증권사 상품 내놓아4개의 ETF가 상장돼 거래가 시작되면 초기에는 주로 AP라고 불리는 주식납입 증권사들이 중심이 돼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투신운용 서정두 차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2개의 ETF가 있고 순자산 규모로 보면 1,032억달러가 설정돼 있을 정도로 성장한 미국 ETF시장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60% 이상이 기관투자가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나라의 ETF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쪽도 주로 외국계 증권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주식시장에서 일반 주식과 똑같이 거래되므로 기관뿐만 아니라 개인투자자 누구나 사고팔 수 있다. 그동안 개별종목보다 시장에 투자하고 싶었던 소액 투자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물과 옵션을 이용하는 방법, 지수영향력이 큰 대형주를 사는 방법,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는 것 등이 있었다. 하지만 선물옵션은 상대적으로 투자방법이 어렵고 복잡한데다 레버리지 효과가 있어 위험도도 훨씬 높다. 또한 대형주나 인덱스펀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금액이 있어야만 시장에 참여할 수 있어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 대우증권 마제스티 클럽 한정 PB는 “이런 제약이 없다는 점에서 ETF는 소액 투자자나 초보 투자자들도 쉽게 종목이 아닌 시장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펀드”라고 말했다.삼성투신운용 서정두 차장은 “초보 투자자뿐만 아니라 투자에 이골이 난 개인들도 아이디어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종 상품을 조합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쓸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ETF 시장거래가가 펀드 순자산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고 지수선물이 고평가돼 있다면 매수차익거래를 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사고파는 가격을 고정할 수 있다는 것도 일반 펀드와 비교할 때 장점이다. 주식형 펀드에 가입했다가 환매를 하려면 다음날 펀드 종가로 결정되니 실제 환매가가 얼마인지 미리 예상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하루에도 요동이 심한 변동성이 큰 시장이므로 펀드값을 실시간으로 알 수 없는 것이 큰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그래서 ETF를 주도하고 있는 삼성투신운용과 LG투신운용은 이 상품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브랜드를 개발하고 이미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지난 6월부터 설명회를 개최해 왔고, 7월부터는 전국 각지의 증권사 PB들을 대상으로 교육에 나서기도 했다. 최근에는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놓았다.ETF는 새로 선보이는 상품이기 때문에 거래가 활성화될지, 얼마나 관심을 모을지 그 미래는 아직 점치기 어렵다. 예전에도 거래소에 상장됐으나 실제로는 거래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던 뮤추얼펀드의 사례처럼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을 경우에는 이 같은 ETF의 장점들이 모두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대표는 “우리나라 선물시장이 오늘날 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누가 예측했겠느냐”면서 “ETF처럼 계속 혁신적인 상품들이 나와야 간접 투자시장도 발달하고 주식시장이 도박판이 아닌 안정 투자시장으로 체질이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이 상품에 의미를 부여했다.돋보기 투자신탁상품 변천사매니저 이름 딴 펀드 대유행…‘누가 빨리 상환하나’ 경쟁하기도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투자신탁이 나온 것은 언제일까? 많은 이들의 예상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1968년 한국투자공사가 그 취급업무에 ‘투자신탁업무’를 포함시키면서부터다. 실제로는 1970년 5월 ‘증권투자신탁’이라는 주식형 수익증권을 발매, 최초의 수익증권이 나왔다. 하지만 처음에는 수익증권에 대한 반응이 썰렁했다. 1974년 한국투신과 1977년 대한투신이라는 양대 사업자가 생겨나면서 그 양상이 달라질 기미를 보인다.70년대 투자신탁상품에도 눈에 띄는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주식형 펀드로는 1976년 ‘근로자의 재산형성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재형주식투자신탁’이라는 상품과 장기ㆍ중기ㆍ단기 공사채형 펀드도 나왔다. 법인들을 대상으로 세법상 소득세 부과가 면제됐고, 이들이 가입할 수 있는 수익증권을 ‘면세기관 전용펀드’라고 불렀다. 공사채형 펀드라고 해봐야 공금리보다 금리가 월등히 높았던 보증회사채를 주로 펀드자산에 편입해 운용했기 때문에 이렇다할 운용노하우도 필요하지 않았다.우리나라에서 펀드시장이 사실상 열린 것은 90년대다. 특히 미래에셋이 선보였던 뮤추얼펀드, ‘바이 코리아’ 등은 초기 엄청난 수익률을 보이면서 시중 자금을 싹쓸이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다.90년대에도 특이한 상품 몇 가지가 눈에 띈다. 90년 9월에 나온 ‘보장형펀드’는 묘한 상품이었다. 주식자산을 편입해 운용한 뒤 그 성과를 돌려주는 주식형펀드이면서도, 시중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율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투신사들의 경영정상화를 지원할 목적으로 허용됐던 것. ‘대체 투자신탁이 무엇인가를 알쏭달쏭하게 할 정도로’ 한심한 발상에서 나온 상품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또한 일정 수익률에 도달하면 바로 상환하는 스폿펀드가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이때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는 ‘설정 후 며칠 이내에 상환하냐’를 놓고 경쟁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식형과 공사채형간 전환이 가능한 전환형 펀드도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공사채형의 경우에는 MMF가 허용된 것이 가장 큰 사건이다. 96년 9월부터 허용된 MMF는 CP, CD 등 단기 금융자산에 주로 투자ㆍ운용하는 형태로 지금까지 투신사의 주력상품이다.2000년대에 들어서는 IMF와 대우사태를 통해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은 투신사들이 아직도 마땅한 히트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윤현중 · 대한투자신탁증권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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