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교체 화두는 ‘고품격·글로벌이미지’

소비욕구 강한 상류층 공략 포석 … 고급화·신뢰성 강조 위해 황금·푸른색 선호

롯데백화점은 유통업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자다. 특히 백화점 부분만 놓고 보면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입지가 탄탄하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가 있지만 아직은 롯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고민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대중적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는 점이다. 워낙 찾는 고객이 많다 보니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백화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백화점 특유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다소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롯데백화점이 지난 3월 CI작업을 벌여 롯데의 영문대문자(LOTTE)를 형상화한 새로운 로고를 채택한 것도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지금의 이미지로는 향후 경쟁에서 손해 볼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신격호 회장이 전면에 나서서 진두지휘하며 고품격을 강조하는 쪽으로 로고를 바꿨던 것. 글자색 역시 고급스러움의 상징인 금색으로 결정했다.최근 CI에 손을 대는 기업들의 화두는 고품격이다. 소비자들에게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쪽으로 회사이름이나 로고, 브랜드 등을 바꾸는 경향이 뚜렷하다. 패션이나 화장품 관련 기업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일반 기업들도 상류층을 공략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이런 흐름에 편승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신한은행이 최근 발표한 CI에서도 이런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둥그런 모양의 상징마크에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풍기는 황금색을 넣었다. 멀리서 봐도 상당히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삼성전자 가전파트 역시 ‘HAUZEN’(하우젠)이라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었다. 명품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조치다. 회사측은 앞으로 모든 가전제품에 붙던 ‘SAMSUNG’을 빼고 대신 ‘HAUZEN’을 넣을 예정이다.건설사들 앞다퉈 고품격 브랜드 선보여고급화 경쟁은 건설업계에서 가장 치열하다. 저마다 고급이미지를 강조하는 새 브랜드를 내놓고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90년대 후반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래미안’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현대산업개발이 ‘아이파크’, 대림산업이 ‘e-편한세상’ 등을 잇달아 내놓았고, 최근 들어서는 아파트 이외에 다른 형태의 건물에도 브랜드를 도입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건물에 ECLAT(LG건설), SK HUB(SK건설), FIRSTY(삼성중공업) 등 고품격을 강조하는 브랜드를 도입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는 것.고재호 인피니트 부사장은 “상위 20%가 전체 소비의 80%를 차지한다는 보고서가 나오는 등 사회 전체적으로 상류층의 소비력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라며 “기업들 역시 이들을 잡기 위해 많은 힘을 쏟고 있으며 CI 역시 이를 감안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국제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CI 교체의 이유다. 글로벌경제체제가 정착되고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전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회사이름이나 로고를 채택하는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수출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경우 아주 적극적으로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한국통신이나 포항제철이 대대적인 CI 작업을 통해 KT와 POSCO(포스코)로 재탄생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기존의 이미지로는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데 한계가 있는 지적이 잇따르자 기존에 써온 영어식 회사이름을 공식명칭으로 확정하고 새로운 로고를 내놓았다. 당초 KT는 기존의 이미지가 정보통신 기업으로서 부적절하고, 포스코는 포항제철의 경우 지역색이 너무 강하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해 작업에 착수했다는 후문이다.최근 CI 작업에 가장 적극성을 보이는 은행들의 테마는 신뢰성과 편안함으로 요약된다. 특히 기존의 부실을 털어내고 다른 은행을 M&A하는 과정에서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CI 교체과정에서 이를 최대한 반영했다.기업은행과 우리금융그룹이 로고의 바탕색을 블루톤으로 잡은 것도 이 색이 신뢰감을 주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또 오는 10월 새 로고를 선보일 국민은행은 상징색을 초록색에서 회색으로 바꿀 예정인데 이는 고객들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 CI 전문가들의 설명이다.이 밖에 일부 기업들은 구태를 벗고 신선함을 주기 위해 CI를 바꾸기도 한다. 예전에 좋지 않은 일에 연루돼 경영상 큰 타격을 입었거나 경영부실 등으로 대주주가 바뀐 경우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의미에서 기업이름과 로고 등을 전면 손질하는 사례가 적잖은 것.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현준 게이트’로 이미지가 크게 손상됐던 한국디지탈라인이 지난 3월 애드모바일로 탈바꿈한 것이 좋은 예다.하지만 최근의 CI 교체 트렌드와 관련,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의 상징마크가 영문자 일변도의 ‘워드마크’ 일색으로 바뀌고 있어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정석원 엑스포디자인연구소 대표는 “세계화 때문이라고 하지만 기업의 얼굴은 곧 우리의 문화적 산물”이라며 “기업들이 CI 개발을 하면서 서구의 흉내만 내는 것은 우리가 얼굴을 성형수술하면서 서양인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돋보기 회사 이름짓기 최신 트렌드영문 회사명 선호 현상 더욱 두드러졌다.회사이름을 영문으로 바꾸는 업체가 나날이 늘고 있다. 최근 사명을 변경하는 곳 가운데 절반이 한글 대신 외국어, 특히 영어를 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회사이름을 영문으로 바꾸고 로고 역시 국제적인 이미지가 풍기도록 바꾼 회사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라는 것이 CI 전문업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상장기업만 해도 최근 제일정밀공업이 퍼스텍으로 바꾼 것을 포함해 삼미특수강이 비앤지스틸, 고려종합운수가 케이티씨, 천광산업이 CKF로 변신했다. 지난 8월까지 상호를 바꾼 상장기업 31개사 가운데 한글식 이름을 영문으로 바꾼 곳만 15개사에 이를 정도다.영어이름이 유행이지만 벤처열풍 이후 유행했던 ‘텔’ 또는 ‘텍’자가 들어가는 회사이름은 한풀 꺾였다. 벤처기업 바람이 급격히 수그러든데다 이미 이들 글자가 끝에 들어가는 회사이름이 상당수 등록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회사이름을 쉽고 짧게 만드는 것도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삼영열기가 삼영, 한국아스텐엔지니어링이 로토토, 태인테크가 파루, 그루정보통신이 그루ITS로 바꾼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해당 업체들은 쓰고 부르기 쉬워 변경 이후 거래처와 주주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설명한다.영문으로는 바꾸지 않았지만 기존 회사이름에서 지나치게 ‘옛날’ 냄새가 나는 단어를 빼는 회사들도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산업’과 ‘공업’자를 떼어 내는 케이스다. 아세아시멘트공업의 경우 아세아시멘트로 사명을 변경했고, 일진전기공업 역시 일진전기로 탈바꿈했다. 또 유유산업은 유유로, 대우조선공업은 대우조선해양으로 각각 회사간판을 바꿨다. 이 밖에 중앙염색가공은 ‘염색가공’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대신 첨단 이미지가 풍기는 중앙디지텍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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