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고 남은 돈 단기금융상품에 투자

요즘 주요 대기업들이 안고 있는 최대 고민 중의 하나는 ‘넘쳐 나는 현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다. 일부 기업들은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 기업들의 관리요령을 배우기 위해 자금팀을 해외출장을 보내는가 하면 보유현금 운용방안을 놓고 연일 대책회의를 열고 있을 정도다. 유례없는 ‘현금풍년’으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재계의 현주소다.먼저 차입금 상환에 비중을 높이고 있는 기업은 포스코, LG전자, SK텔레콤, (주)SK, SK글로벌 등 5개 기업이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2개 기업은 불확실한 미래상황에 대비해 현금을 계속 보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밖에 KT와 LG정유는 보유현금 대부분을 운전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9개 기업 대다수가 M&A에도 적극 나설 의사가 있음을 밝혀 하반기에 M&A시장에서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삼성전자,현대차,미래위험 대비 현금 보유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현금을 갖고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 지난 6월 말 현재 보유한 현금은 6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2조8,000억원보다 3조3,000억원이 늘어났다. 이대로 가면 연말에는 8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보유현금을 더욱 늘릴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부침이 심한 IT업종의 특성상 어려울 때에 대비하고, 좋은 투자처를 발견했을 때 신속한 투자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현금을 갖고 있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물론 연초에 계획했던 설비 및 연구개발 투자는 그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설비투자와 R&D에 각각 4조8,800억원과 2조600억원을 쓸 계획이다. 설비투자는 이미 40%를 집행했다. 이와 함께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이미 올 초 계획했던 5,000억원보다 두 배 많은 1조원을 자사주 매입에 썼다. 삼성전자가 다른 기업과 달리 차입금 상환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은 이미 지난해부터 보유현금이 부채를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부채율은 39%로 연말쯤이면 30% 이내로 떨어질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현대자동차는 6월 말 현재 3조3,5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해 놓고 있다. 현대차는 올 들어 현금이 늘면서 900여억원에 달하는 단기차입금과 외화차입금을 3,000여억원 이상 갚았다. 이와 함께 올 들어 1조원 가량을 단기금융상품에 묻어두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업종의 특성상 일정액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현대차는 미국에서 실시한 ‘10년 10만마일 사후서비스’에 따른 비용증가와 환경분담금 등으로 올해 2,000여억원의 판매보증충당금을 추가로 마련했다.SK계열사,포스코, 차입금상환 주력올 상반기 9,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SK텔레콤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차입금상환과 설비투자에 사용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보유현금이 5,000억원. 이는 지난해 말 8,000억원에 비해 약 40%가 줄어든 것. 그러나 영업활동으로 들어오는 현금이 매달 7,000억~8,000억원 정도로 여전히 현금동원력이 크다. SK텔레콤의 하반기 자금운용 전략은 ‘차입금 상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KT 지분인수 과정에서 빌린 1조원의 부채를 단계적으로 갚겠다는 것. 이를 통해 지난해 말 87%에서 올 상반기 124%로 늘어난 부채비율은 100% 안쪽으로 되돌리겠다는 계획이다. 또 설비투자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올해 설비투자 계획은 1조5,000억원. 이 중 상반기에 5,800여억원을 투자했고, 나머지 1조원은 하반기에 투입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M&A에도 적극 나선다는 전략이다. 이미 6월 말 포털 업체인 라이코스코리아를 430억원에 인수했으며,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 업체인 KDMS의 지분 40%를 취득하면서 400억원을 썼다. 일본 이동 멀티미디어 디지털 위성방송업체인 MBCO의 지분 인수에 역시 307억원(기존 투자금액 123억원)의 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7월 전북은행으로부터 분사한 카드부문의 지분 49%를 1,500억원에 인수한 대금도 지불해야 한다. SK텔레콤 IR팀 관계자는 “기존의 이동전화서비스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사업확장이 계속 필요하다”고 밝혔다.SK텔레콤 주식매각으로 막대한 현금이 들어온 SK(주)는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대부분의 현금을 사용할 계획이다.SK(주)가 현재 갖고 있는 현금은 2조2,000여억원. 상반기 누적 현금 5,000여억원에다 SK텔레콤 지분매각으로 총 1조7,500억원의 현금이 들어온다. SK 또한 차입금 상환에 보유 현금의 대부분을 쓰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차입금 규모가 6조7,000억원(부채비율 151%)으로 막대한 이자비용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SK는 지난해 이자비용으로 7,200억원이 들어갔다. 따라서 SK텔레콤 지분매각으로 들어온 1조7,500억원 중 최소한 1조2,000억원을 차입금 상환에 사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렇게 되면 연말까지 부채비율이 120% 수준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반면 SK의 시설투자계획은 미미한 수준이다. 공장 및 주유소 리노베이션에 2,500억원, 석유가스개발에 2,500억원, 연구개발에 500억원 등을 쓸 계획이다. 변수는 M&A다. SK는 향후 가스공사, 한전 자회사의 민영화에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SK글로벌은 지난해 말 1,311억원의 적자에서 이번 상반기 1,503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올 초 시작된 SK텔레콤 주식매각으로 벌어들인 현금은 모두 차입금 상환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6월 말 현재 보유현금은 5,061억원. 지난 8월1일 SK텔레콤 주식 110만주를 매각해 벌어들인 2,422억원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이 중 주식매각 대금은 전액 차입금 상환에 이용할 계획이다. 이뿐만 아니라 하반기 SK텔레콤 지분 230만주를 모두 매각할 경우 총 6,500억원(주당 28만원 가정) 정도의 현금을 추가로 확보, 차입금 상환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이다.지난해 말 차입금 규모는 2조5,000억원에 달했지만 6월 말 현재 1조9,700억원. 부채비율도 지난해 말 204%에서 지난 6월 199%로 200% 안쪽으로 진입했다. 부채비율에 큰 변동이 없는 것은 올해 초 보유 중인 SK텔레콤 주식가치가 떨어지면서 총자산이 감소해 부채비율 자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 향후에도 계속 차입금을 줄여나갈 계획이다.SK글로벌은 차입금 상환 외에도 풍부한 ‘실탄’을 바탕으로 여러 신규사업을 ‘입질’하고 있다. 지난 6월 세계물산의 경영권을 확보에 나섰는가 하면 현재는 두루넷 전용선 인수사업을 진행 중이다. 두루넷 전용선 인수건의 경우 정부인가만 남아있다. 매입대금 3,500억원도 자체 자금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상태. 이 밖에 모바일 콘텐츠 사업, 의약품 도소매업체인 지오영의 유상증자 참여 등 사업 확장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포스코의 현금보유 규모는 1조1,000억원 정도다. 포스코는 현재 현금보유액이 너무 많다는 판단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국내외 신인도나 저금리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현재의 금융시장 환경을 감안하면 자금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 차입할 수 있는 여건이므로 굳이 현금을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지속적으로 현금보유 규모를 줄여 나가겠다는 것. 올 연말까지 8,000억~9,000억원 수준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며 여유 자금은 주로 부채상환에 쓰고 있다. 그 결과 회사의 재무안정성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는데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72.8%(7조4,000억원)에서 6월 말 현재 55.6%(6조2,000억원)로 대폭 축소됐다.KT,LG정유, 운전자금으로 활용LG전자는 올 상반기 매출 9조6,000억원, 영업이익 7,663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이러한 경영성과로 인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4,000억원 가량이다. 먼저 늘어난 영업이익을 PDP-TV, 단말기 등 전략산업에 포커스를 맞춰 투자할 계획이다. 또 올 하반기에는 계절상품의 수요부진 등을 이유로 상반기에 비해 보수적인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에 따라 늘어난 현금 중 일부는 차입금 상환 및 재무구조 개선에 사용할 전망이다. 회사측은 “6월 말 현재 차입금이 3조2,000억원으로 3월 말보다 3,800억원 줄었다”며 “연말까지 차입금을 2조7,000억원으로 낮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전자는 차입금이 지난해 말 4조500억원에서 1조원 이상 줄어들게 된다.KT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6월 말 현재 6,501억원. 하지만 한 달에 지출되는 비용(운전자금)이 1조원 이상임을 감안하면 유동성 측면에서 이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통신업의 특성상 기존 망의 유지ㆍ보수나 케이블 확장 등 지속적으로 시설투자에 대부분의 현금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에 들어가는 현금은 대부분 MMDA, MMF 등 단기 금융상품을 통해 운용하고 있다. 염상권 자금관리팀 과장은 “채무상환은 그다지 급할 것이 없다”며 “올 초 발행한 교환사채로 부채가 늘어났지만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될 경우 다시 부채비율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 자금운용은 내부적인 기준을 적용해 주로 월별 입출금 수지에 포커스를 맞춰 운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월별로 들어오는 전화세 등 현금은 대부분 유·무선통신망을 유지ㆍ보수하고 케이블을 늘려나가는 등 기간시설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에 과거처럼 대대적인 신규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KT 관계자는 “회사의 특성상 단기자금을 계속 가져가야 된다”며 “현재 예금금리는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시설투자를 제외한 잉여 현금의 대부분은 돌아오는 차입금 상환에 대비한 것”이라고 밝혔다.6월 현재 7,802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LG정유는 지난해 말(1,998억원)보다 세 배 가량 늘어난 금액. 회사 관계자는 “당분간 달러화가 약세를 띨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차입금(외화)보다는 국내 원화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6월 말 기준 외화예금 284만달러(369억원 상당), 단기 금융상품 3,8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정유업계 특성상 설비투자에 대한 투자계획 자체가 1년 또는 그 이전에 정해지기 때문에 현재 보유현금은 대부분 환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외화로 보유하거나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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