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이공계 위기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고교졸업생들이 공대 대신 의대를 선호하고, 공대생이 된 후에도 전공 공부는 외면한 채 고수익과 안정된 신분이 보장되는 고시에 매달리고 있다. 공대 대학원 진학자가 크게 줄었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산업화의 주역을 키워냈던 공대가 언제부터인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눈을 인문계쪽으로 돌려보면 한국경제의 오늘을 만드는 데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 경제학도들이 공대생들과 오버랩된다. 한때 장차 이 나라를 짊어지고 갈 동량으로 평가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제는 무대 한쪽으로 밀려나는 모습이다. 그런 면에서 공대생들과 경제학도들은 닮은꼴이다.적어도 90년대 이전에 대학을 다닌 학생들에게 경제학은 선망의 학문이었다. 산업화 시대의 싱크탱크 역할 역시 경제학도들의 몫이었다. 이들의 머리에서 경제정책이 나왔고, 정책결정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산업화를 추진했다. 이들이 한국경제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이런 위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요즘 들어서는 ‘보통학과’로 전락한 느낌이다.주변에서 경제학이 점차 빛을 잃어가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각 대학 경제학과의 경우 한때 최고 인기학과의 한축을 이뤘지만 이제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법학과나 경영학과, 신문방송학과 등에 밀려 우수신입생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학 내 위상도 예전만 못하다.또 경제학과는 학부제 실시 이후 전공신청 때만 되면 상경계열 내에서 학생들이 가장 적게 모이는 학과로 전락했다. 지원자수에서 경영학뿐만 아니라 회계학이나 무역학에도 뒤처지는 상황이다. 심지어 경상계열 학부생 가운데 경제학을 선택하는 학생이 10% 미만인 경우도 적지 않다.이들 대학에서는 경제학이 최근 들어 아예 말라죽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학생들이 철저하게 외면하자 지방의 모 대학은 아예 경제학과를 폐과시켰다. 또 다른 대학에서는 전공선택인 계량경제학 수강신청자가 단 한 명도 없어 담당교수가 실직한 사례도 있다.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대학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이런저런 이유로 경제학을 전공으로 택한 학생들 가운데에도 궁극적으로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공 공부는 제쳐두고 딴전을 피우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서울대 경제학과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사법시험이나 공인회계사시험 등 각종 고시에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제학과까지 거대한 고시열풍에 오염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다 일부 경제학과 대학원생들까지 고시 등 다른 분야를 곁눈질하고 있어 국내 경제학의 부실화 우려는 한층 고조되고 있다.경제학도 가운데 전공을 외면하는 학생들은 한결같이 경제학을 공부해서는 먹고살기가 불편하다(?)고 주장한다. 사법시험이나 공인회계사시험 등에 합격하면 말 그대로 팔자가 피는데 경제학에 매달려봤자 비전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 더욱이 국내 대학원에 진학해도 해외파에 밀리기 일쑤고, 경제학 전공자들이 설자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 전공에 매달리기가 불안하다고 하소연한다.경제학은 지금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밖으로는 전공을 하겠다는 지원자가 적어 학생확보에 비상이 걸렸고, 안으로는 전공자 가운데 다른 분야에 매달리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관련자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또 일부 대학에서 경제학과의 이름에 변화를 주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한양대 경제금융대학의 한 교수는 “뭔가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경제학과의 인기를 만회하고 학생들을 끌어 모으는 것은 아주 어려운 상황이라 적잖이 걱정된다”고 말했다.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태로 경제학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경제학자 등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경제학 같은 기초학문의 발전 없이는 실용학문도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이론적인 토대 없이 국가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위기에 내몰린 경제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학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한 번 나래를 활짝 펴는 날을 기대해본다.돋보기 / 한국 경제학과 약사60년대 유학파 등장 이후 체계 잡혀국내에 경제학과가 최초로 생긴 것은 지난 1946년. 당시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가 종합대학인 연희대학교로 승격되면서 상학원에 상학과와 함께 개설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실질적인 경제학과의 기원은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희전문학교에 상과가 만들어지면서 경제학이 소개됐다. 이어 서울대학교가 1946년 8월 국내 최초의 국립종합대학교로 세상에 등장하면서 역시 경제학과를 설치했다.하지만 1960년 이전까지 국내는 경제학의 황무지에 불과했다. 그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경제학보다 인문학을 선호해 경제학의 발전은 아주 더뎠다. 교수들 역시 일본식을 그대로 따라 대부분 도제를 거쳐 탄생했다.경제학과가 변화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은 60년대다. 1960년을 전후로 무역학과, 경영학과 등이 생기면서 전공이 가지는 의미가 중요하게 떠올랐다. 또 미국유학을 마친 변형윤, 조순 교수 등이 외국 경제학 이론들을 국내에 맞는 용어로 바꾸는 등 체계적인 경제학 교육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경제학은 전성기를 맞는다. 각 대학에 경제학과 설치가 러시를 이뤘고, 경제학 전공자들 역시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이 과정에서 조순 교수 등이 쓴 은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고, 각 대학들도 나름의 색깔을 가지며 연구에 몰두했다.90년대 들어 경제학은 상경계열 안에서 학과통합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진통을 겪는다. 아울러 경영학과가 독립을 선언하고 속속 경영대를 설립하면서 마찰을 빚는다. 상경계열이란 큰 울타리 안에서 서로간의 영역다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경제학은 경영학과와의 공생이냐, 독립이냐의 기로에 서게 됐다.손용석 기자 sonci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