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계열 전공선택에서 ‘왕따’당해

경제학 선택 학생, 10% 수준 대학 '수두룩'...지원자 적어 폐과된 경우도

최근 2~3년 사이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에는 비상이 걸렸다. 상경계열 전공신청 때마다 학생이 들어오지 않아 학과장을 비롯한 교수들의 경우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민망할 정도다. 강의시간에 경제학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지만 상경계열 학생들의 전공신청을 받아보면 실망을 금치 못한다.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00년 경제학 전공을 신청한 학생이 전체 221명 가운데 31명에 지나지 않았다. 전체 학생 가운데 15%만이 경제학을 선택한 셈이다. 이에 비해 경영학에는 70%가 넘는 169명이 몰렸다. 지난해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전체 243명 중에서 경영학에는 164명이나 몰린 반면, 경제학 신청자는 35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44명은 무역학을 선택했다. 경제학과 입장에서는 상경계열 3개 전공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한데다 지원자수가 겨우 14%대에 머물러 위기감을 느낄 정도였다.다른 대학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경제학과가 상경계열에 속해 있는 경우 경제학 전공 지원자가 수적으로 극히 적은데다 같은 계열의 여러 과 가운데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지방 국립대인 충남대 경제학과 역시 학생들의 외면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2000년 경상계열 전공신청자 445명 가운데 59명만이 경제학을 선택했다. 10%를 겨우 넘는 수치다. 대신 경영학(179명)이나 회계학(118명), 무역학(89명)에는 적잖은 학생들이 몰려 대조를 이뤘다. 지난해 역시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441명 가운데 경제학 분야로 전공을 택한 학생은 68명으로 집계됐다. 전년과 마찬가지로 전체 경상계열 4개 학과 가운데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일부 대학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 아예 경제학과를 없애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경제학 선호도가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지방 사립 M대에서는 99년과 2000년 연속 전체 전공신청자 250여명 가운데 경제학 희망자가 8명에 그치자 아예 경제학과을 폐과시켰다. 아직 과를 없애지는 않았지만 서울의 H대는 경상학부 120여명 중 경제학 신청자가 10여명에 불과해 고민에 빠져 있다.다행히 서울대와 서강대 등 몇몇 대학은 그동안 경제학과 별도로 신입생을 뽑아왔기 때문에 전공신청자가 적어 애를 먹는 경우는 없었다. 또 연세대와 고려대 등은 경제학과가 사회계열이나 정경학부 등에 속해 있어 정원은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대학도 고민은 있다. 바로 신입생들의 성적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다. 고교생들 사이에서 경제학의 인기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먼저 한국경제의 엘리트 산실로 불려온 서울대 경제학과를 보면 이런 사실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진학사가 보유 중인 지난 84학년도 입시성적 자료를 보면 서울대 인문계에서 최고의 커트라인을 기록했던 학과는 바로 경제학과였다. 340점 만점에 309.3점으로 법학과 등을 제치고 최고 인기과로 부상했다. 이후에도 90년대 후반까지 경제학과는 법학과와 쌍벽을 이루며 확실한 기둥역할을 했다.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법학과는 이미 앞서 나갔고, 경영학과와 외교학과 등의 입시성적도 경제학과를 추월하는 상황이다. 지난 99년과 2000년 학년도 입시결과 자료에서도 이런 경향은 뚜렷이 나타난다.2000년의 경우 정시모집에서 법학과가 388.1점(합격자 평균)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경영학과(385.7점), 외교학과(385.4점), 경제학과(385.2점) 순이었다. 이 학교 경제학과 2학년 이모군(22)은 “고교생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고소득을 올릴 수 있거나 쉽고 재미있는 전공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법학·경영학에 밀려 ‘찬밥신세’최근 들어 진학사와 종로학원, 대성학원 등 입시전문 기관들 역시 입시생들을 위한 대학 배치표에서 서울대 경제학과를 경영학과, 외교학과 다음에 넣는 것이 일반화됐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최근 사법시험 인기를 타고 급부상한 고려대 법학과와 같은 레벨에 올려놓아 인터넷상에서 학생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서강대 경제학과 역시 인기하락을 피부로 느끼는 입장이다. 한때 서강대 내에서 최고 인기 학과라는 자부심이 강했으나 요즘 들어서는 법학과뿐만 아니라 신문방송학과 등에도 크게 밀리고 있다. 이 학교 경제학과 3학년인 최모군(23)은 “고교생들 사이에 경제학과의 인기는 별로 없다”며 “일부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오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법학이나 경영학 등에 앞자리를 내주고 후퇴하는 양상”이라고 전했다.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의 141개 고교 1만1,0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선호학과 랭킹에서도 경제학의 인기는 기대치를 밑돌았다. 남학생들의 경우 경영학과, 신방과, 법학과 순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경제학은 9위를 기록하며 겨우 10위권 안에 턱걸이했다. 여학생들 조사에서는 10위권에 들지도 못했다.조사를 담당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한 관계자는 “남녀학생을 불문하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을 전공하겠다는 응답이 많았다”며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 예로 남학생들은 호텔경영이나 사회체육, 여학생들은 유아교육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점을 들었다.경제학이 학생수 감소로 위기에 처하면서 국내 대학 경제학과들 사이에 서바이벌게임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 본부와 경제학 전공교수들이 나서서 전공인원을 조정하고 학생들을 설득하는 진풍경이 여기저기서 연출되고 있다. 마치 재정이 열악한 일부 지방 사립대가 대학 진학 희망자 감소로 미달사태가 빚어지자 학생들을 찾아 각 고교를 찾아가 ‘읍소’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서울의 한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 후반만 해도 경제학과가 최고 인기학과였는데 어쩌다가 이리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상당수 교수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대안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경제학과가 처한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은 또 있다. 최근 연세대에서 경영학과가 상경대에서 독립해 경영대를 설립하려 하자 경제학과가 이에 반대하고 나선 것. 이 과정에서 두 학과의 교수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고, 급기야 경제학과 교수들이 총장실을 점거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이와 관련, 경영학과 교수들은 상경대와 경제학과의 위상 약화를 우려한 경제학과 교수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과 교수들은 추진 방식에 문제가 많다며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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