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도 ‘그만’ 조리 ‘간편’ 인기상품 부상

야채는 농작물이다. 농작물인 이상 백화점, 슈퍼마켓 등에서 팔리는 야채는 농장에서 출하된 것이라야 옳다. 수확하자마자 농장에서 바로 출하된 야채는 신선함과 건강이 넘쳐나 소비자들도 ‘싱싱하다’는 생각으로 장바구니에 서슴없이 담아 넣는다.하지만 일본에서는 이 같은 선입견을 뒤엎는 현상이 최근 유행하고 있다. 농장이 아니라 공장에서 나온 야채가 소리 소문 없이 인기상품으로 떠오른 별난 현상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세척과 절단 과정을 거친 후 포장된 상태로 팔리는 ‘커트(Cut) 야채’.양상추, 당근, 홍당무 등 여러 야채를 함께 섞은 상태로 판매, 드레싱만 얹으면 그자리에서 샐러드를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한 이들 커트 야채는 최근 2년간 시장규모가 두 배나 팽창한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99년 약 100억엔에 머물렀던 외형이 2001년에는 200억엔대로 올라섰다는 것이 시장전문가들의 추산이다. 백화점, 슈퍼마켓 등 커트 채소를 판매하는 유통업체 식품매장에서는 커트 채소를 찾는 젊은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에 따라 신규 참여를 노리는 메이커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상품으로서 커트 야채의 특징은 별 것이 아니다. 야채를 세척한 후 잘게 썰거나 잘라 비닐봉투에 담은 것이 전부다. ‘시간 절약’과 ‘간편’이 장점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알고 보면 그게 아니다. 커트 야채의 시장팽창을 받쳐준 최고의 에너지는 선도(싱싱함)와 청결, 그리고 경제성에서 나오고 있다.물로 씻어낸 후 수분이 남아 있는 야채는 오래 가지 못한다. 잘해야 몇 시간이 고작이다. 커트 야채 메이커들은 이 점에 주목했다. 세척 후 불필요한 수분을 기계로 날려버리는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커트 야채 메이커 ‘샐러드 클럽’의 가나이 준 상무는 “세척 후 약 3분 동안 기계에 넣어 물기를 제거시키고 있다”며 “아삭아삭한 맛이 살아 있어 소비자들로부터 커다란 호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수분을 없애는 과정에서 보존일도 늘어나고 외관도 좋아져 여성 고객들이 특히 반기고 있다는 귀띔이다. 포장ㆍ가공과정에서의 정성과 노하우도 수요확대를 이끄는 또 하나의 비결이다. 이 회사 작업장의 실내온도는 한여름에도 섭씨 10도를 넘지 않는다.온도가 높을수록 야채의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세척된 야채를 포장할 때는 질소를 충전시켜 출하 후 최대 4일까지 선도가 유지되도록 하고 있다. 일반 슈퍼마켓의 작업장 등에서 잘라 파는 소포장 야채와는 제조ㆍ가공과정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신경과 주의를 쏟고 있는 셈이다.비싸게 생각될지 몰라도 실리 면에서 득이 된다는 경제성과 다양한 상품구색도 커트 야채의 인기에 한몫 하고 있다. 5~6가지의 야채를 함께 섞은 샐러드용의 경우 채소를 하나하나 낱개로 살 때보다 비용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매장 관계자들의 말이다. 또 일반 야채를 구입한 소비자들의 상당수가 끝까지 다 먹지 못하고 버린 경험이 있음을 감안할 때 커트 야채야말로 불필요한 낭비를 막아주는 알짜상품이라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커트 야채는 “야채는 사다가 집에서 손수 씻은 후 먹는 상품”이라는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바꿔 놓는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샐러드용 재료를 커트 야채 옆에 같이 진열해 놓는 매장들의 경우 이들 상품의 매출도 동반상승하는 부대효과를 즐기고 있다.전문가들은 하지만 커트 야채의 본격적인 대중화 열쇠가 30~40대 주부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들은 “일반 가정의 경우 채소를 많이 소비하긴 하지만 빠듯한 살림에 쫓기다 보면 커트 야채의 간편함과 경제성을 정확히 따지기 어렵다”며 “30~40대 주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시장규모가 달라질 전망”이라고 말하고 있다.양승득·한국경제 도쿄특파원 yangs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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