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증가세… 일터 끌어들이기 안간힘

도쿄도(都) 중앙노동사무소는 오는 10월30일부터 3일간 별난 취업지원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세미나가 열리는 장소는 도쿄에서도 10대 청소년과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가장 많이 몰려들기로 소문난 시부야. 35세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취업정보를 제공하고 어떻게 하면 좀더 빠르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안내해주기 위한 것이 세미나의 목적이다. 겉으로만 본다면 이 세미나는 한국에서도 자주 열리는 취업 관련 행사와 다를 것이 없다.하지만 한국인들의 시각과 한국적 고용사정에 비춰볼 때 이날 행사는 분명 이색적인 편에 속한다. 무엇보다 세미나에 참가할 사람들의 컬러가 독특해서다.노동사무소가 참가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일본에서 ‘프리터’(Freeter)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프리터는 자유롭다는 뜻의 ‘Free’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의 ‘Arbeiter’를 합쳐 만든 일본식 말이다. 한 마디로 아르바이트를 하되 직종이나 직장, 소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맘대로 자유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노동사무소는 세미나에 취업정보지의 편집장 등 전문가들을 다수 초빙해 일자리 찾기에 유용한 정보를 들려주는 한편 이력서 쓰기 등 취업에 필수적인 기초지식을 가르쳐 줄 예정이다. 사무소가 대규모 세미나를 준비하고, 젊은 프리터들을 불러모아 취업안내, 진로상담 등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프리터 증가와 이로 인한 젊은 정규 근로자들의 감소가 초래할 노동시장의 균형파괴, 그리고 숙련된 노동자의 부족에 따른 국가경쟁력 추락을 우려하기 때문이다.프리터 증가로 대변되는 일본 젊은이들의 산업현장 이탈 현상은 올 봄 각급 학교문을 나선 새내기들의 진로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문부과학성이 지난 3월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하고도 진학이나 취업을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백조, 백수’가 된 사람은 11만9,000명으로 전체 졸업자의 21.7%를 차지했다. 단기대학(한국의 전문대학에 해당) 졸업자 중에서는 19.5%인 2만5,000명이, 고교졸업자 중에서는 10.5%인 13만8,000명이 무직의 길을 택했다. 이에 따라 청운의 꿈을 안고 들어갔지만 빈둥빈둥 노는 사람으로 변해 학교문을 나온 새내기 무직자는 올 봄만 해도 무려 28만여명에 달한다.문부과학성은 대졸출신의 백조, 백수는 올해가 지난 2000년의 12만1,000명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많은 것이며, 고졸출신은 현행 방식의 조사가 시작된 지난 76년 이후 최대치라고 밝혔다. 통계에는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거나 집안일을 돕는 사람과 외국의 대학 등에 진학한 졸업자는 백조, 백수에서 제외시켰으며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만 포함시켰다.후생노동성과 문부과학성은 이들 무직 졸업자의 절대다수가 프리터로 최소한의 밥벌이에 나서거나 아니면 부모에게 기대는 패러사이트(기생충)족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일본정부와 노동전문가들은 사실상 무직자나 마찬가지인 젊은 프리터들이 크게 늘어난 원인을 두 갈래에서 찾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불황으로 기업들이 정규 근로자 채용을 갈수록 줄이면서 ‘젊은피’들의 설자리를 크게 좁혀 놓았다는 것이 첫째 이유다. 한 취업정보지에 따르면 올 봄 대학졸업자들을 대상으로 기업들이 채용한 신입사원은 56만명으로 지난해보다 1만3,000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버젓한 직장에서 정규 근로자로 일하고 싶어도 취업문이 해마다 좁아지니 자신이 없는 사람은 아예 일찌감치 프리터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대학졸업자들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고교졸업자들은 뽑는 기업이 극소수에 불과해지면서 신규 졸업자들의 절반 이상이 시간제 사원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다.“일본 미래 국가경쟁력 떨어질 수도” 우려프리터 증가의 또 다른 원인은 약하고 나태하게 변해버린 젊은이들의 생활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노동연구기구의 고스기 레이코 주임연구원은 도쿄에 거주하는 10~20대의 프리터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직접 설문조사한 결과를 최근 공개, 눈길을 끌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프리터의 유형은 △삶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은 모라토리엄형 △고용환경 악화로 취업에 실패한 불가항력형 △오로지 배우 등 연예인이 되기 위해 모든 일을 포기하고 시간제 일로 밥을 먹고 사는 왕자, 공주병형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고스기 연구원은 일본 프리터들의 비율이 이 중 5대4대1로 나타났다며, 최근 수년간은 불가항력형의 증가가 두드러졌다고 밝히고 있다.싱싱하고 젊은 근로자 계층에서의 프리터 증가는 일본정부와 사회에도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노동문제전문가 오쿠모 유키오씨는 “이대로 10여년만 흐르면 15세 이상 근로자 중 고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의 미래 국가경쟁력이 근심스럽다”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산업현장에서 일과 싸우며 실력을 기른 인재들이 태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나라와 경쟁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다.일본정부는 정부대로 속앓이를 단단히 하면서 대책마련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지금까지의 고용대책 초점을 중ㆍ고년층의 일자리 보장에 맞춰 왔으나 내년부터 젊은층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로 했다. 중고생의 학습시간을 이용한 학업실태 프로그램을 도입, 이들이 학교를 떠나 산업현장과 사무실을 방문하면서 실제로 일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직장인 등 사회활동에 종사하는 성인들과의 접촉 기회를 늘림으로써 이들에게 직업관을 명확히 심어주는데도 노력을 쏟을 방침이다.일본 산업계에서는 청소년, 젊은 근로자들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금방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며 이를 ‘시치 고 상’(7, 5, 3의 숫자를 일본어로 부른 것)이라고 부르는 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중졸자의 7할, 고졸자의 5할, 대졸자의 3할이 취직 후 3년 이내에 직장을 그만둘 만큼 떠돌이 현상이 심각하다고 해서 붙여진 신조어다.후생노동성은 이 같은 점을 주목, 젊은이들의 직장 귀속감을 높여 주기 위한 방안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직업훈련에 앞서 사회상식 등을 집중 지도하는 ‘프리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을 안정된 일터로 끌어들이고 기술과 지식을 오랫동안 연마하도록 하려는 일본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먹혀들지는 미지수다.후생노동성은 30세 미만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기업들이 3개월간 시험 고용하는 ‘트라이얼 고용’ 제도를 지난해 말부터 도입하고, 이를 통해 지난 6월 말까지 3,400여명의 젊은이들을 일터와 연결시켜 주었다. 그러나 전체의 3할에 가까운 약 1,000명이 3개월도 배겨내지 못한 채 중도에 포기,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만연된 떠돌이 현상의 뿌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고스기 주임연구원은 2001년 2월 18세부터 29세까지의 프리터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근거로, 프리터들 자신도 오래도록 떠돌이 근로자로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지적하며 정부와 사회, 노동단체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스기 연구원에 따르면 프리터들 중 앞으로 3년 후에도 프리터 생활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사람은 고작 4%에 불과했다는 것. 프리터 자신도 떠돌이 근로일을 청산해야겠다고 인식하면서도 몸은 무절제한 생활을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정부와 기업, 노동단체는 정상적인 근로여건 마련에 한시바삐 힘을 합쳐야 된다는 것이 그의 뼈 있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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