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 과다융자 . 가혹회수 등 '사라킹 3악' 잔존...회수방법 '부드럽게' 전환모색
“저녁을 먹을 때쯤 채무자의 집을 찾아가는 겁니다. 식탁 가운데에 큰 밥그릇이 하나 놓여 있고 도토리만한 어린자식들이 둘레에 앉아 있습니다. 돈 받으러 왔다는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습니다. 아무 말 없이 손가락을 밥그릇에 푹 찔러 넣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겁에 질려 내 얼굴만 쳐다보고 채무자는 하얗게 질려 버리지요.”이름 몇 자만 대면 일본 국민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소비자금융회사에 근무하는 A씨. 그는 10여년 전 채권회수라는 이름으로 채무자를 다그치러 다닐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 자신도 먹고 살려고 소비자금융회사에 취직했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것이 영 못할 짓이었다는 것이다.소비자금융은 대출잔액이 지난 92년 3조6,000억엔을 기록한 후 현재 10조엔대를 넘어섰을 만큼 초고속성장가도를 달려왔다. 그러나 일본 금융계와 사회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커지는 데 정비례해 부작용도 몰고 왔다.“콩팥 팔아 상환해라”윽박지르기도2001년 5월 일본 열도 북단의 아오모리현 히로마에시에서 일어난 강도살인방화사건은 대표적 참사의 하나다. 빌린 돈을 갚을 수 없게 되자 다시 대출을 일으켜 상환하고, 결국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만큼 큰 빚을 안게 된 범인은 복수심에 불타 소비자금융회사 점포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5명의 사망자를 낸 이 사건은 무분별한 대출행위와 소비자금융업체들의 집요하고도 달콤한 판촉공세가 초래한 부작용을 그대로 함축하고 있다.“콩팥을 떼어내면 한 개 300만엔은 받을 수 있으니 콩팥이라도 팔아 돈을 갚아라.”지난 99년 10월 쇼코엔론이라는 고리대금업체가 채무자를 윽박지르며 한 전화협박 내용이 그대로 공개돼 사회적 지탄 대상이 됐다. 소비자금융업체들이 채권회수 과정에서 일으킨 부작용은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금리상한선이 출자법상의 29.2%로 규제된 지난 2000년 6월부터는 소비자금융이 개입된 사건, 사고가 표면적으로나마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으로 바닥 서민들의 기본생계가 어려워진 점을 주목, 자기파산과 자살증가에 소비자금융이 배경으로 깔려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한다.소비자금융문제를 집중 연구해 온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는 “2001년 한해 동안 6,838명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한 자살자의 상당수는 경제난, 생활고에 몰려 죽음을 택한 사람”이라며 “이중 상당수가 소비자금융에서 돈을 빌려 쓴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사회적 비판이 거세지고 피해자들의 자구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소비자금융업체들의 영업방식과 채권회수 활동도 눈에 띄게 고도화되고 세련미로 무장하고 있다. 다케후지는 채무자에게 편지를 띄우는 주부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하고 있다.100여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회장의 지시에 따라 ‘최대한 공손한 문구를 사용하며 볼펜으로, 직접, 일일이’ 편지를 쓴다. 이 팀의 운영에만 연 10억엔 이상이 들지만 편지공세로 거둬들이는 악성채권이 30억엔을 넘어 비용을 충분히 뽑고도 남는다는 평가다.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서민들의 삶이 고달플수록 고리대금의 활동무대가 넓어질 것이 분명하다며 무허가 업체들의 번성을 더욱 걱정하고 있다. 지난 83년부터 시행된 일본 대금업법은 무허가 대금업체들에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엔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으나 법의 감시망을 벗어난 업체들은 탈법으로 1,000% 이상의 초고금리 영업을 일삼고 있다.샐러리맨 밀집지역인 도쿄 간다역 앞에는 깃발과 팻말을 들고 행인을 유혹하는 불법대금업체들이 줄잡아 4,000개에 이른다.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소비자금융은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함정”이라며 “고금리, 과다융자, 가혹한 회수 등 사라킹 3악의 기본틀이 현재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