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하나로 다양한 고객응대...사람에 대한 폭넓은 이해심이 직업적 매력
“네, 네 고객님∼ 안녕하십니까.”각 방송사의 쇼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종횡무진 활약 중인 한 코미디언은 114 안내원을 흉내내는 독특한 말투로 짧은 기간에 인기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114 안내원은 걸려온 전화상담에 답해주는 텔레마케터의 일종. 생소하게 여겨졌던 텔레마케터가 최근에는 코미디의 소재로 쓰일 정도로 하나의 직업군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우리나라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텔레마케터의 수는 약 23만명. 특히 수적인 증가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급여 수준 등에서도 다른 직업과 비교해볼 때 뒤지지 않는 등 아르바이트 업무로 생각하기 쉬운 사회적 편견을 깨뜨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텔레마케터는 크게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로 나뉜다. 인바운드는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에 대답만 하는 업무를 말한다. 114 안내원처럼 소비자의 불만이나 질문을 접수ㆍ해결해주는 콜센터의 상담원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반면 아웃바운드는 먼저 전화를 걸어 이벤트 등을 소개하고, 제품의 구매나 회원가입을 권유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아웃바운드 업무 담당자들은 성과에 따른 성과급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 중 일부는 전문직 종사자 뺨칠 정도의 급여 수준을 자랑하기도 한다.이영미 SK생명 텔레마케터SK생명 텔레마케터로 활동 중인 이영미씨(33). 오전 9시에 출근해서 퇴근시간인 오후 6시까지 70∼80통의 전화를 소화하는 아웃바운드 텔레마케터다.이중 그녀가 하루에 성사시키는 회원가입은 약 7~8건 정도로 그녀의 수입은 월 평균 500만∼600만원 수준이다.“‘열정을 판다’고나 할까요.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는 데 너무 집중하다 보니 가끔씩 현기증을 느낄 때도 있어요.”이씨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짜릿함이 이 직업의 매력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노력한 만큼 성과가 돌아오기 때문에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방 출신이어서 뒤늦게 시작한 것이 안타까울 정도라고.“제가 살던 부산은 서울보다 유행이 10년은 늦는 것 같아요. 지금도 고향친구들을 만나면 제가 하는 일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좀더 어린나이에 일을 시작하지 못한 게 후회스러워 처음으로 지방 출신의 서러움을 느꼈습니다.”지난 96년 부산과 경주에서 호텔멤버십 텔레마케터로 출발한 이씨는 현재 보험상품을 판매한다.“거짓말을 잘 못해요. 이 직업에 있어 진실성이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보험의 필요성은 제 자신이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어떤 고객이든지 성실히 권해드릴 수 있습니다.”물론 그녀에게도 힘든 때는 있었다. 처음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업무를 배울 때는 너무 힘들어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는 것. ‘잘나가는’ 텔레마케터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 건강에 대한 고민이 그녀의 유일한 애로사항이다.이 직업에 대한 가족들의 생각을 묻자 그녀는 “남편은 일반사무직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아내가 돈을 더 많이 번다는 걸 알면 남편이 자존심 상할까봐 제가 성과급이 높은 텔레마케터라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그녀의 목표는 연봉 1억원을 향해 60대가 될 때까지 일하는 것. 목소리가 나오는 한 텔레마케터 업무를 계속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최철호 MPC 텔레마케터이영미씨의 경우처럼 텔레마케터는 기혼여성에게도 새로운 일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성에게 적합한 직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성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특히 컴퓨터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이 업무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지난 2월 강남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한 최철호씨(23)는 벌써 경력 3년차의 인바운드 텔레마케터다. 대학교 3학년 때인 2000년 우연히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대학졸업 후 첫 직장으로까지 이어진 것.그는 현재 텔레마케팅 대행업체 MPC에서 인터넷 채팅사이트 세이클럽의 개인정보 상담업무를 맡고 있다.“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상담 중에 2시간 동안 욕만 들어 본 적도 있지만 그래도 인터넷 관련 업무이다 보니 남자가 상담하는 게 더 신뢰감을 준다는 고객이 많습니다.”텔레마케터를 하겠다고 했을 때 놀라던 주위 친구들도 이제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일하니 좋겠다”며 농담을 건넬 정도로 그의 업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아직 어리니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그 가능성 중 하나는 텔레마케터생활을 거쳐 훌륭한 관리자가 되는 겁니다. ‘사회조사분석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일처럼 지금 업무와 전혀 다른 일에도 관심이 많지만요.”그가 생각하는 이 직업의 매력은 사람과 업무 두 가지 면에서 모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점은 통계업무를 담당하는 사회조사분석사의 길에 들어서게 되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더욱이 효율적인 상담을 위해서는 자신이 많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병행할 수 있다는 점도 그가 이 직업에 대한 만족감을 갖게 된 중요한 이유다.박은규 제일텔레서비스 슈퍼바이저“고객님, 사은품 추첨 이벤트 말씀하시는군요? 꼭 당첨되실 수 있도록 제가 함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39쇼핑의 텔레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는 박은규 제일텔레서비스 슈퍼바이저(31)는 한 번은 다짜고짜 사은품을 달라는 고객에게 이렇게 응수했다. 사은품 행사라는 게 다 짜고 하는 것이 아니냐며 생떼를 쓰는 고객을 기분 나쁘지 않게 설득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찾은 것이다.박슈퍼바이저는 경력 6년째의 텔레마케터. 현재 월 수입은 약 250만원 정도로 인바운드 텔레마케터로는 높은 수준.그녀는 풍부한 경험을 통해 이런 독특한 멘트를 할 수 있는 여유까지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꾸준히 언어개발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상담원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사람을 상대하는 일도, 제품에 대한 연구도 쉬지 않아야만 성공한 텔레마케터가 될 수 있습니다.”홈쇼핑에서 지난 6년간 판매된 상품은 약 5만가지. 그래서 그녀는 농담으로 “오만가지를 파는 직업”이라고 할 정도로 제품에 대한 연구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또 이 점이 그녀가 이 직업을 무척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상담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이 나이가 되도록 공부할 수 있게끔 동기를 부여해준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그녀는 고객과 교감할 수 있다는 점을 이 직업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친절한 상담을 잊지 않고 명절 때 과일을 보내주는 고객도 있어 공적인 만남이 사적인 만남으로 승화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는 것. 또한 반드시 한 직장이 아니더라도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옮겨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는 게 그녀의 설명.앞에서 열거한 세 사람은 하는 일의 종류나 급여에 있어 각각 다른 특징을 보여 주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무척 높다는 점이다. 텔레마케팅협회측은 직업에 대한 이미지 제고를 위한 개선방안을 내놓기 위해 무척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 세 사람의 사례에서는 이미 그들 스스로 직업에 대한 이미지 제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