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DB 완벽구축… 리스크 줄여 ‘돈방석’

심사기법 . 고객정보량 타 금융기관 압도 ...고금리 후유증으로 인한 사회문제 야기 우려

장면1 / 1966년 어느날 도쿄 외곽의 신흥 아파트단지30대 중반의 남자 한 명이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 단지를 배회하며 아파트 베란다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남자의 시선은 널려 있는 빨래에 온통 집중돼 있다.“지금 이 시간까지 빨래를 널어놓지 않다니…. 게으른 사람이 틀림없군. 이런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주면 안되지.”“이 집은 내의를 남의 눈에 띄도록 아무렇게나 밖에 널어놓았네! 이런 사람은 성격이 활달할 가능성이 높은데…. 돈을 더 빌려 줘도 괜찮겠군.”남자는 남의 집을 엿보는데 재미가 들려서 베란다를 살피고 다닌 것이 아니었다. 서민들을 상대로 고리로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였다. 돈을 빌려 쓰는 사람들이 어떤 성격의 인물인지 ‘증거채집’차 단지를 은밀히 누비고 다닌 것이다. 그가 눈도장을 찍고 다닌 것은 베란다의 세탁물만이 아니었다.우편함을 뒤지며 우편물을 제대로 수거해 가는지 여부도 체크 대상이 됐다. 관리인을 구슬려 관리비수납 장부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고객집에 들어가서는 용변을 보고 싶다며 일부러 화장실에 들어가 청소상태로 고객의 성격을 재기까지 했다. 36년이 지난 2002년, 이 남자는 고리대금업으로 일본 금융시장에서 최고의 재물을 쌓은 인물이 됐다.이름은 다케이 야스오(72). 그가 세운 다케후지는 1조7,666억엔의 여신으로 2002년 3월 말 기준, 일본 소비자금융업계 외형 1위를 달리고, 그는 지난 한해 동안 벌어들인 소득의 대가로 3억600여만엔의 세금을 내며 일본 열도 전체의 세금랭킹 84위에 올랐다.장면2, / 2002년 8월 초 도쿄 도심의 무인대출계약기 코너중소제조업체에 근무하는 25세의 남성 세일즈맨 한 명이 한 소비자금융업체의 무인계약기 코너에서 대출심사를 받고 있다. 그는 인적사항과 소득, 직장경력 등을 터치스크린 화면에 나타난 순서대로 입력해 갔다. 같은 시간 요코하마에 있는 이 업체의 서비스센터에 설치된 한 모니터 앞.대금업체 직원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남성 세일즈맨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시하고 있다. 화면에는 그의 표정이 잠시 나타났는가 하면 신분증명을 위해 제시한 운전면허증의 화상이 떠올랐다. 거동에 수상한 점은 없는지 체크한 대금업체 직원은 면허증이 진짜인지 확인한 후 주소 인근의 지도를 확인했다.그리고 내부에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그의 직장이 믿을 만한 곳인지도 체크했다. 잠시 후 무인계약기 화면에 뜬 해당 고객의 대출 한도는 20만엔. 무인계약기 코너 문을 밀고 들어온 지 10여분 만에 심사가 끝나고 빌려줄 돈의 액수까지 결정된 것이다.아파트를 발로 누비며 고객의 신용도를 눈과 직감으로 판별한 사채업자의 동물적 감각과 모니터를 통해 발가벗기듯 고객의 신용정보를 완벽히 끄집어내는 노하우. ‘황금알을 낳는 거위’ ‘금융업계의 마지막 노른자’로 통하는 일본 대금업체들의 실력과 영업전략을 두 가지 사례만큼 리얼하게 보여주는 거울은 흔치 않다.은행 금리(3~4%)의 10배에 가까울 정도의 고이자를 물리고 있는 대금업체들의 고객은 자금사정이 궁지에 몰린 경제적 약자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여기저기에 빚을 지고 있는 다중 채무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뒤집어 말하면 소액이라지만 담보를 잡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기본 장사원칙으로 삼는 대금업체들로서는 돈을 떼어먹힐 위험이 그만큼 더 크다는 뜻이다.자연 높은 리스크를 피해 가기 위해 대금업체들이 쳐놓고 있는 그물은 타 금융기관들에 비해 수십배 촘촘하면서 질기고 탄탄하다. 떼어먹힐 위험을 사전에 걸러내기 위한 심사 기법과 정보량도 타 금융기관들을 압도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다. 대표적인 것이 신상정보와 연체기록 등을 돋보기처럼 파악해 놓고 있는 고객데이터와 이를 이용한 자동여신시스템, 그리고 거미줄처럼 깔린 무인자동계약기다.대금업체들의 거래기록을 한군데 모아 관리하는 전국신용정보데이터연합회는 현재 1,600만건 이상의 고객데이터를 축적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이터에는 과거의 연체 사실은 물론 어디서 얼마를 빌려 쓰고 있는지가 일목요연하게 나타난다.“예전에는 어느 대금업체나 신분증명서와 건강보험증을 확인하고 돈을 빌려줬기 때문에 고객 중에는 여기저기 찾아다니면 무한정 빌려 쓸 수 있다고 착각한 사람이 적지 않았지요. 하지만 돈을 빌려줄 때 각 업체들은 신분증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바늘로 구멍을 살짝 뚫어 놓습니다. 그러니 낯모르는 신규고객이 찾아온다 해도 구멍이 얼마나 있는지만 확인하면 그 사람의 신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연합회측은 데이터베이스(DB)가 구축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대금업체들은 비밀리에 공동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며 돈을 떼어먹은 전과가 있는 사람은 대금업체에서도 접근이 원천 봉쇄되고 있다고 말한다.개별업체들이 갖고 있는 정보량도 방대하기 이를 데 없다. 아코무는 750만건 이상의 거래기록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신규고객이 대출을 신청해 올 경우 리스크별로 대응할 수 있는 사례를 101가지나 설정해 놓고 있다.방대한 고객데이터와 함께 무인계약기는 대금업체의 시장확대를 이끈 일등공신으로 손꼽히고 있다. 지난 93년 아코무가 첫선을 보인 무인계약기는 대형업체들의 보급경쟁에 힘입어 10년도 안된 2002년 6월 말 현재 대형 4개사만을 기준으로 해도 일본 전역에서 6,000개를 넘어섰다.대형대금업체 아이플의 한 관계자는 “닌텐도의 전자오락을 즐기며 자란 세대는 타인과의 접촉을 기피하며, 부모에게 돈을 빌리는 것도 싫어한다”고 지적하며 “이 같은 점에 착안한 무인계약기가 신규고객 흡수에 절대적 역할을 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무인계약기를 이용하는 고객의 절대다수가 20~30대의 젊은층이며, 대금업체들의 신규고객 중 46%가 20대라는 게 대금업계의 공식통계다.대금업체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된 것은 달라진 일본인들의 금전관념이다. 이들은 이제 남의 돈을 쓰는 데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이에 더해 일본정부의 정책전환은 메마른 땅을 적셔준 단비 역할을 톡톡히 했다.은행 등에 돈줄을 의존해 왔던 소비자금융업체들이 99년 5월부터 시행된 논뱅크(Non Bank)사채법(대출업무를 위한 금융업자들의 사채발행에 관한 법률)에 힘입어 자체 자금조달 루트를 확보하게 됐다. 소비자금융업체들의 대출재원은 지난 99년 4월까지만 해도 자체 자금이나 은행 등 제도금융기관에서 차입한 돈이 전부였다.하지만 논뱅크사채법의 시행으로 채권과 상업어음 발행이 가능해지면서 소비자금융업체들의 자금사정은 180도 달라졌다. 자본금 10억엔 이상의 요건과 신용도 등 일정 자격을 갖춘 업체에만 발행을 허가했지만 법시행 후 이들의 회사채 발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이 법시행 3년 만에 소비자금융업체들은 보통사채 발행 총액의 약 5%를 차지할 만큼 회사채시장의 ‘큰손’으로 급성장했다. 사채 발행으로 조달하는 자금의 연이율은 0.5% 안팎에 불과하다. 따라서 공짜나 다름없이 빌린 돈을 최고 29.2%에 대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일본정부의 조치는 이 업체들에 호재가 아닐 수 없다.또한 전문가들은 소비자금융업체들을 돈방석에 올려놓은 또 다른 배경으로 시장개척 공세를 꼽는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영업기반 확대를 위한 노력 중에서도 20~30대의 젊은 고객들을 겨냥한 광고는 지독하리만치 끈질기고도 공격적이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들의 선전활동은 역 앞이나 상점가에서 1회용 티슈를 나누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그러나 외부평가가 달라지고 고객층이 넓어지면서 사정은 급변했다. 광고공세도 대담해지고 물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야구, 축구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어김없이 이들 업체의 간판과 현수막이 걸려 있다. 고층빌딩 옥상이나 건물 외벽은 말할 것도 없고, 땅 속 지하철도 예외가 아니다.다케후지, 아이플, 아코무, 프로미스 등 대형 4개사가 퍼부은 광고비는 2001년 한해에만 800억엔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게 광고업계의 추산이다. 소비자금융업체들은 또 최근 들어 스포츠마케팅과 대중문화 후원활동을 통해 이미지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대금업체들은 그러나 시장이 포화상태에 부닥치고, 신규고객 확보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고객분석과 관리에서 허점을 드러낼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은행, 카드사 등을 중심으로 한 신규참여 기업들의 추격 또한 치열한 경쟁을 유발, 여신심사의 고삐를 늦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다케후지의 2001년 평균대출잔액이 1인당 60만엔을 넘어서고, 아코무, 아이플 등 다른 대형업체들도 50만엔을 넘어서는 등 건당 대출 규모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일본언론은 대금업체들의 대출 노하우가 고도화되고, 영업 범위가 넓어지는 데 따른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는 최신호에서 “대금업체들의 전략은 자동여신 시스템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 고객이 변제불능의 상태로 빠지기 직전까지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받아내는 것”이라며 “이런 상태라면 고금리후유증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야기됐던 80년대 전반의 참상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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