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성공기법 수입, 한국서 ‘룰루랄라’

IMF외환위기 이후 시장 급성장...일본계 고금리 이용자 50만명 육박

‘대금업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큼 국내에서도 대금업시장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대금업계 일본계 업체들이 단연 선두다. 지난 99년 첫선을 보인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이미 자리를 잡았다할 정도로 영업반경을 넓혀놓았다.여기에다 지난 8월 유아이크레디트, 아네스트 등 일본의 대형대금업체와 손잡고 있는 새로운 대금업체들이 막 시장에 진입했다. 상호저축은행과 토종대금업체들도 속속 신상품을 내놓고 있다. 시장선점을 위한 쟁탈전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일본계 대금업체들은 국내 소비자금융시장을 이미 ‘싹쓸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월 말 현재 13개 일본계 대금업체의 대출잔액이 1조원을 넘어선 것. 연 90~130%의 고금리에 급전을 꾸어주는 일본계 대금업체들의 지난해 말 대출액 합계는 5,031억원이었으나 8개월 만에 두 배로 급증했다.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업체별로는 선두업체인 A&O 인터내셔널의 대출금이 8월 말 기준으로 2,771억원을 기록, 지난해 말보다 53%가 늘어났고, 2위인 프로그레스도 올 들어 1.3배가 늘어난 2,426억원의 대출실적을 올렸다. 일본계 대금업체 이용수준이 통상 200만원 선인 점을 감안하면 약 50만명의 서민이 일본계 고금리 빚을 쓰고 있는 셈이다.신속성·편리성 내세워 서민들 ‘유혹’이들이 이처럼 빠르게 성공적으로 국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확한 타이밍 때문이었다고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금융감독원 비제도금융조사팀 조성목 팀장은 “IMF 직후 여러 상황이 절묘하게 맞물려 대금업이 번창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이 시장에 일본계 대금업체들이 제때 진출한 것”이라고 말했다.IMF 이후 직장을 잃거나 경제여건이 어려워진 서민들이 양산됐다. 동시에 위기에 몰린 금융사들이 부실화되지 않기 위해 갑자기 대출기준을 엄격하게 강화했기 때문에 서민들은 제도권금융으로부터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바로 이 틈새를 대금업체들이 파고들었던 것이다.업계 관계자들 중에는 일본계 대금업체의 노하우가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잖다. 자금력만 있으면 80~100%대의 높은 이자를 받고, 대출금을 강하게 회수하면 되는 장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3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의 영업노하우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이식됐고, ‘간단한 장사’에서도 누구나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들의 영업방식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신속성과 편리성이다. 국내 대금업체들은 일본처럼 화상대출은 하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명동이나 강남 등 유동인구가 많고 교통이 편리한 도심에 위치한 영업점에 찾아가 서류를 작성하면 즉시 대출을 받을 수 있다.일본계 대금업체들이 대출자를 선별할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주로 직장에 다니는지 유무다. 일본 현지의 업체들처럼 고객의 가정환경이나 주변상황까지 챙기지는 않지만 일단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도벽이 있다든지 하는 개인적 성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본 현지보다는 덜 까다롭지만 토종 업체들에 비하면 엄격하다는 설명이다.제일은행 도쿄지점장을 거쳐 에이원크레디트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주환곤 사장은 “지금 한국의 상황은 일본의 20년 전과 똑같다”며 “이미 이자율 상한선 등을 겪은 터라 노하우도 풍부하고 한국 대금업체가 소홀히 하는 대출심사도 나름의 기준으로 엄격히 하는 등 차별화를 둔 점”이라고 설명했다.도쿄지점장 시절 호리에 전 제일은행장의 영향을 받아 대금업 공부를 했다는 주사장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일본 본사인 신판의 영업 노하우를 그대로 적용할 계획이다. 이는 영업 개시 첫날의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 8월26일 처음 문을 열었을 때 32명의 대출희망자가 방문했는데, 이중 대출에 성공한 사람은 8명에 불과할 정도로 기준이 명확한 대출심사가 좋은 예다.시간대 맞춰 독촉내용도 달리해 회수 나서일본계 대금업체들은 회수에 있어서도 이미 정형화된 방식을 마련했다. 궁지에 몰린 서민들을 고객으로 하기에 떼어먹힐 염려가 큰 업종인 만큼 회수 또한 영업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다. A&O는 영업점에서 대출과 회수를 병행하고 있다. 180일 이상 연체된 불량채권만 모아 회수팀에서 따로 관리한다.이 회사 채권관리팀 김광해 팀장은 장기채권 회수방식을 이렇게 요약 설명한다. “장기연체자의 경우 사라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연락처를 확보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채무자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파악한다. 무조건 강요한다고 회수가 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연체이자 및 원금 상환플랜을 함께 짠다.”직접 찾아가 봐야 회수율이 높지 않고, 교통비와 인건비 등 비용 대비 효과가 낮아 100% 전화로만 독촉을 하는데 아침ㆍ점심ㆍ저녁 등 통화하는 시간에 따라서 전화내용도 달라져야 효과가 있다고 김팀장은 말했다.또 한편 이들은 사채업자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념을 깨는 데 주력했다. 건물 외벽에 자리잡은 커다란 간판, 은행 못지않게 밝고 넓은 영업점, 각종 매체를 통한 광고 등을 통해서 이미지 ‘업그레이드’에 적잖은 투자를 했다. 대금업체들이 몰려 있는 강남역 일대와 테헤란로 인근에서는 쉽게 A&O, 프로그레스, 해피레이디, 여자 크레디트 등 대금업체들의 크고 산뜻한 간판을 찾아볼 수 있다.또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기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언론을 활용, 보여줄 것은 보여준다는 전략을 택하기도 했고, 이것이 오히려 이들을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일본에서 성공한 전략들을 그대로 들여왔지만 우리나라 시장은 상대적으로 초기인 만큼 일본에서의 노하우가 그대로 다 들어 온 것은 아니다. 개인정보와 연체기록을 모은 고객데이터가 없다는 것이 결정적. 일본에는 대금업연합회가 있어 이에 가입하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어 있고, 회원사들은 전국신용정보데이터연합회와 모든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관계사들을 제외하곤 대금업체들끼리 신용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은행연합회의 신용정보에 대금업체도 등록, 연체정보를 공유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으나 신용불량자가 너무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보류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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