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시장 “몰라보게 커졌다”

추석 명절을 맞아 사람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답변이 나올 수 있지만 한 설문조사 결과 단연 상품권이 꼽혔다. 롯데백화점이 지난 8월 중순 고객 8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무려 44.8%가 상품권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어 정육갈비세트(18.5%), 굴비수산세트(14.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상품권은 ‘주고 싶은 선물’에서도 37.4%로 1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결과는 최근 몇 년째 반복되는 것으로 이제 상품권이 최고의 선물로 굳건히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상품권이 선물 리스트 맨 위에 오른 것을 입증하듯 주변을 둘러보면 수많은 상품권이 나와 소비자들의 손길을 기다린다.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백화점상품권을 비롯해 구두상품권, 주유상품권, 도서상품권, 문화상품권 등 그 종류만도 수백 가지를 헤아린다. 각 기업이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대로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상품권수를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업계에서는 현재 유통되는 상품권만 500가지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덩달아 상품권시장 규모도 급팽창하고 있다. 특히 99년 2월 상품권법 폐지 이후 가히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난 98년 8,000억원 규모였던 것이 지난해에는 3조5,000억원대로 수직상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여세를 몰아 올해에는 5조원대를 돌파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무려 50%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분석된다.상품권 가운데는 단연 백화점상품권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체 상품권 매출액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그다음으로 구두상품권과 주유상품권이 각각 15%씩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밖에 도서상품권과 외식상품권 등이 10% 이내의 점유율로 뒤를 잇고 있다.아직 시장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이색적인 상품권도 눈길을 끈다. 먼저 나이든 부모님들을 겨냥해 내놓은 관광상품권과 건강상품권이 효도선물로 큰 호응을 얻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외식과 레저, 문화적인 수요가 늘어나면서 등장한 상품권도 아주 다양하다. 이미 외식상품권이 폭넓게 사용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레저와 문화상품권의 수요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삼성·LG·SK 등 경쟁적 상품권시장 참여대기업들이 내놓은 상품권도 다양한 용도를 자랑하며 시장을 넓혀나가고 있다. 삼성, LG, SK 등을 중심으로 상품권을 발행해 같은 계열사가 내놓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두루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기업 규모는 작지만 결혼정보업체인 선우 등도 다각적인 마케팅 차원에서 미팅상품권을 선보이고 있다.그렇다면 국내에서 이처럼 상품권이 대단한 인기를 끌며 고속성장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상품권에 대한 규제가 완전히 풀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전에는 일정한 액수의 공탁금을 걸고 정부의 허가가 나야 발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발행해 유통시킬 수 있다.한국의 독특한 선물문화도 한몫 한다. 특히 명절 때는 뭔가 주어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고, 특히 기업들의 경우 거래처에 선물을 돌리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롯데백화점 상품권팀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대량으로 구매하는 물량이 전체 판매량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기업 수요가 매우 크다”며 “대부분 거래처에 선물용으로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최근 들어 백화점을 중심으로 50만원짜리 고액상품권이 등장한 것도 우리의 독특한 선물문화의 산물이다. 외국에서도 상품권은 유통되지만 고액상품권은 흔치 않다. 일본의 경우 1만엔(약 10만원) 이상 선물을 교환하는 경우가 극히 적어 고액상품권이 발붙일 여지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편의성이 높아진 점도 상품권 수요를 부채질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백화점, 정유업체, 호텔, 외식업체 등이 연합해 공동상품권을 발행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각 업체들이 손잡고 상대방 회사의 상품권을 자사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게 벽을 허무는 사례도 꼬리를 물고 있다.상품권은 분명히 가장 각광받는 선물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현금처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받는 사람들이 선호한다.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좋아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하지만 일각에서는 상품권이 과소비를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는다. 상품권의 기본단위가 10만원권으로 인식돼 있어 넥타이나 와이셔츠, 손수건 세트 등을 선물하는 것보다 2배 이상 비용이 든다. 신세계백화점 미아점의 이진우 과장은 “요즘 들어 상품권 선호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비싸지 않으면서 실용적인 것을 선물하려는 사람들도 상품권을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돋보기 국내 상품권의 역사99년 상품권 발행 완전 자유화국내 상품권의 역사는 40년이 넘었다. 지난 61년 상품권법을 만들어 공포하면서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상품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경기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정부가 일본의 상품권법을 본떠 만들었고, 유통업체들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이후 상품권은 국민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조리, 과소비, 소비자와 상품권 발행자와의 마찰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남에 따라 75년 12월 이후 정부가 판매를 금지시켰다. 특히 일각에서 사재기가 판을 치고, 인플레이션 발생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후 70년대 후반과 80년대는 상품권의 재발행을 둘러싸고 논의가 계속됐다.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절대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맞섰다. 간혹 허용검토 얘기가 흘러나왔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이를 전면 부인하며 이전 입장을 고수했다.그러다 지난 94년 개정상품권법이 전격 공포되면서 다시 세상에 등장했다. 정부가 경제행정 규제완화에 적극 나서면서 상품권법 역시 혜택을 받게 된 것. 이후 백화점 등을 중심으로 상품권이 폭넓게 발행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선물로 자리매김했다.지난 99년 상품권은 다시 한 번 전환기를 맞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기업자율활동을 더욱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아예 상품권법을 폐지하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상품권 발행에 따른 각종 규제를 전면 자율화시킨 것이다.상품권에 대한 규제가 완전히 풀리면서 2000년대 들어 상품권 종류는 급격히 증가했다. 아울러 발행자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폭이 넓어졌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99년 상품권법 폐지로 이제 정부 내에 상품권을 담당하는 부서가 없다”며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발행하는 만큼 소비자들의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