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생 앞세워 금융그룹으로 대변신 한다

대생인수로 재계 랭킹 8위로 '껑충'...보험사 경영능력 검증받아야 '특혜설' 잠잠해질 듯

한화그룹이 대한생명 인수자로 최종 확정된 9월23일 서울 장교동 사옥은 온통 잔칫집 분위기였다. 구조조정본부가 있는 25~26층은 하루 종일 축하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긴급 요청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여수 세계박람회 개최 지원활동 중인 김승연 회장은 김연배 구조조정본부장(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흥분된 목소리로 “이제는 됐다”며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다는 후문이다.한화그룹은 이번 대생인수로 창업 50년 만에 주력업종이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바뀌게 됐다. 실제 한화의 자산은 11조4,000억원(27개 계열사 총계)으로 대생의 26조1,000억원(신동아화재 포함)의 절반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매출액도 8조3,000억원으로 대생(8조4,700억원)보다 적다. 직원수는 1만6,000명으로 대생(5,689명)보다 많지만 이는 보험설계사 3만3,985명이 빠진 숫자다.한화가 카멜레온처럼 그룹의 색깔을 바꾼 이유는 뭘까.일단 표면상 김회장이 금융업을 21세기 그룹 생존의 승부처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화는 향후 그룹의 핵심역량을 금융 부문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생, 한화증권, 한화투자신탁운용, 한화기술금융을 아우르는 금융네트워크를 만들어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종합금융그룹 플랜도 마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는 한화가 은행, 카드사 등 다른 금융기관 인수에 나설지를 놓고 벌써부터 정보수집에 들어간 상태다.한화가 그룹색깔만 바꾼 것은 아니다. 한화는 대생인수로 자산기준 재계 11위에서 8위로 뛰어올랐다. 특히 국내 재벌그룹 중 생ㆍ손보사를 함께 소유하고 있는 곳은 삼성, 동부, LG 등에 불과하다. 그것도 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은 규모가 미미한 형편이다. 따라서 생보업계 2위인 대생과 손보업계 8위인 신동아화재를 보유하게 된 한화그룹의 위상은 삼성과 맞설 정도로 높아지게 됐다.구조조정 성공으로 이미지 쇄신한화가 대생을 인수하기까지 무려 3년 3개월이 걸렸다. 한화가 인수전에 뛰어든 것은 지난 9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화는 새로운 성장엔진 찾기에 혈안이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룹의 돈줄을 모두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사실 IMF 직전인 97년 한화는 초죽음 상태였다. 방만한 사업다각화로 97년 말 부채비율이 1,200%에 달해 숨쉬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당시 재계에서는 워크아웃 0순위로 거론됐다.할 수 없이 빚을 갚기 위해 주력회사를 대거 팔아야 했다. 한화바스프우레탄, 한화NSK정밀, 한화기계 베어링 부문 등 우량회사를 모두 남의 손에 넘겼다. 그러다 보니 구조조정은 성공했지만 앞으로 ‘뭘 먹고 살 것인가’가 문제였다. 이미 한화의 또 다른 자금줄인 한화석유화학도 성장성이 둔화된 상태였다.또한 유통은 롯데, 신세계 등 선발업체의 장벽에 막혀 있었고, 레저는 자본회수기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다. 한화리조트는 2000년 들어 처음으로 30여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밖에 한화증권, 한화투자신탁운용 등 금융 부문도 업계 위상이 낮았다.김회장의 고민이 점점 깊어갈 즈음에 그룹 내 금융계 인맥이 대생인수를 제안했다. 국민은행장과 상업은행장을 역임한 금융계 원로인 박종석 그룹 부회장과 진영욱 한화증권 사장, 안창희 한화투신운용 사장이 김회장을 설득했다.대생인수를 위한 전략수립은 김회장의 ‘그림자’로 불리는 김연배 구조조정본부장이 책임지고 M&A전문가인 이용호 전무가 실무팀장으로 기획과 자금동원을 맡는 모양새를 갖췄다. 여기에 한화경제연구원 출신으로 김회장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명섭 이사가 실무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이들 3인방은 박종석 부회장과 더불어 대생인수의 일등공신이다.한화의 대생인수는 악전고투 끝에 얻어낸 성과물이다. 한때 한화는 대생인수를 포기할 마음도 먹었다. 지난 99년 1, 2차 입찰이 유찰되면서 그룹 내부에서도 “(대생인수를 포기하고) 다른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당시 구조본부 관계자들은 대생인수 실패에 대비해 투자유망업체 20여개사를 선정, 김회장에게 보고하기도 했다.이와 함께 또 다른 활로를 찾기 위해 인터넷사업에 큰 기대를 걸었다. 2001년 2월에 ‘사이버 한화’ 선포식도 가졌다. 당시 한화는 인터넷을 그룹의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2002년까지 총 3,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다. 또 2003년까지 그룹 총매출액의 30%를 인터넷 비즈니스를 통해 이루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인터넷 투자가 대부분 어려움을 겪었듯이 한화도 마찬가지로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새로운 활로 찾기에 실패한 한화는 대생인수에 더욱 적극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됐다.이 과정에서 김회장은 누구보다 정열적으로 움직였다. 지난해 5월 직접 인수제안서를 제출한 데서 그의 의지를 잘 알 수 있다.김회장은 정부와의 관계도 좋게 이끌었다. 구조조정 모범사례로 선정돼 ‘DJ정부’의 총애를 받았고, 지난 8월에는 정부의 경제통상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미국 공화당 인맥과 절친한 점을 활용해 ‘한미교류협회’를 설립, 현 정부를 측면에서 지원하기도 했다.또 자격논란이 일면서 이미지 개선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외환관리법 위반 등 여러 구설수에 휘말렸던 김회장은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장애인봉사활동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한화는 앞으로 금융을 중심에 두고 성장성이 무한한 유통ㆍ레저를 전략적으로 키우며, 제조업은 내실위주로 나간다는 전략이다. 또 부동산 매각 등 구조조정도 더욱 가속화할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선 ‘특혜 논란’(돋보기 기사 참조)에서 벗어나야 하고 대생의 경영능력도 검증받아야 하다. 이를 무사히 통과한다면 김회장이 강조하는 ‘제2의 창업’은 가능할 것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돋보기 / 대생 헐값 매각설 분분공자금 3조원 투입된 기업인데…대한생명의 매각가격은 과연 ‘헐값’일까. 한화가 대생의 최종인수자로 확정되면서 헐값논쟁이 뜨겁다. 한화그룹의 대생 인수가격은 8,236억원. 이는 대생의 기업가치로 산정된 1조6,150억원의 51%에 해당하는 금액. 여기에다 한화는 대생과 함께 63빌딩, 신동아화재까지 인수했기 때문에 헐값에 매각했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돼 왔다.매각가격이 낮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장은 대개 이렇다. 대생에 투입된 공적자금이 총 3조5,000억원에 이르고 지난 회계연도 당기순이익이 8,000여억원인 우량회사라는 것. 즉 외견상 8,684억원의 순익을 낸 기업을 8,236억여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팔았다면 헐값매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대생의 미래를 밝게 보는것도 ‘헐값매각’에 힘을 싣는다.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전체 보험료 수익에서 개인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모집인의 중요성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4만여명의 모집인을 보유한 대생의 기업가치는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인영업의 강점을 가진 대생이 한화 인수를 계기로 법인영업에서 선전할 것으로 보여 앞으로 수년간 1조원대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그러나 다른 견해를 보이는 보험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이들의 주장은 대생의 흑자가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8,000여억원의 이익 중 6,600여억원 가량이 사업비를 계획보다 적게 써 발생하는 비차익 부문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영업력이 신장됐다기보다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라는 것이다. 즉 해마다 7,000억~8,000억원의 순이익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이 같은 헐값논쟁은 특혜설과 맞물려 지속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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