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출발언에 탈세설까지… ‘북한판 최규선?”

‘희대의 사기꾼인가, 아니면 한반도 평화의 전도사인가.’ 양빈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에 대한 시각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이처럼 상반된 평가를 받아오던 양빈 장관이 10월4일(한국시간) 중국당국에 전격연행됨으로써 그의 실체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양빈 장관의 정확한 연행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탈세와 주식투기, 부동산불법개발에 대한 조사와 관련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양빈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상당액의 세금을 체납, 선양 지방세무국으로부터 체납세금을 납부하라는 통지서를 받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어 그의 연행이 탈세조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양빈 장관이 중국당국에 전격 연행됨으로써 그가 ‘한반도 평화의 전도사’이기보다 ‘희대의 사기꾼’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이와 함께 북한이 의욕적으로 내놓은 ‘신의주 특구’프로잭트 또한 물거품이 될 위기에 봉착했다.양장관은 최근 중국 선양에서 잇따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동북아의 평화가 신의주 특구 건설의 최대 목표”라고 강조했다. 또한 “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몸을 던졌다”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 그러나 신의주 무비자 입국과 관련된 그의 발언이 수차례 빈말로 끝나고 중국당국에 전격연행됨으로써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양장관에 대해 지금까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신의주를 홍콩식 특구로 개발하기로 했고, 네덜란드 국적의 양빈을 장관으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양장관은 이를 확인시켜 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임명장을 공개하기도 했다.그는 북한 내 자신의 위치에 대해 “부총리 또는 장관급으로 들었다”며 “지난 9월25일 장관임명장을 받은 이후 신의주 특구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강조했다.그럼에도 그를 보는 시각에 의문부호를 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우선 비자문제와 관련된 그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 9월27일 한국 기자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은 9월30일부터 비자 없이 신의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자신이 장관이기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였다.그러나 9월29일 그는 말을 바꿨다. “나의 서명이 있으면 북한대사관으로부터 비자를 발급받아 신의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 것. 많은 기자들이 이 말을 믿고 9월29일 밤 신의주 입국을 위해 여권을 준비하고, 신청서를 쓰는 등 난리를 폈다.입국당일인 9월30일. 그의 말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북한당국이 외국 기자의 입국을 모두 거절한 것이다.양장관은 “북한당국과의 충분한 사전협의가 없었기 때문에 혼선이 생겼다”며 사과했다. 신의주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당초 말과는 달랐다. 당연히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두 번째 이유는 중국의 어정쩡한 태도다. 중국은 ‘양빈 장관에 대해 보도하지 말라’는 언론 보도지침을 내린 상태다. 그의 신의주 장관 취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이와 관련, 양장관을 잘아는 선양의 한 관계자는 “그가 지난 89년 천안문사태를 이용,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했다”며 “중국당국은 양장관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 신의주 행정장관 직무를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셋째, 중국 내 그의 사업에 대한 우려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돌아와 선진농업(구체적으로 화훼)에 손을 댔다. 선양에 구축한 복합 주거ㆍ농업단지인 허란춘(네덜란드 빌리지)이 그의 사업체다.그러나 허란춘은 주택만 지어놓았을 뿐 농업과 관련된 시설은 없다. 주택마저 공사가 거의 중단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분양이 되지 않아 자금난에 봉착했기 때문이라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양장관은 수십억 위안(1위안=약 150원)에 달하는 은행 빚에 쫓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양장관이 신의주 건설에 나서는 이유는 중국 내 사업을 일으켜 보자는 취지”라는 말이 나돌기도 한다.양장관의 신의주 특구 건설에 ‘사기성’이 있는지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가 특구 행정장관으로 임명됐고, 앞으로 특구 운영을 책임질 인물이라는 점이다. 양장관이 특구를 자신의 뜻대로 건설해 나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요인이 필요하다. 이는 곧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우선 명확한 현실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양장관의 잇단 말 바꾸기는 현실인식의 결여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게 수차례 그를 만났던 기자의 생각이다. 특히 그는 한반도의 특수상황을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또 양장관은 신의주 특구 건설을 부동산개발쯤으로 간주하는 현실인식의 한계를 노출했다. 국제자금을 끌어다 기초시설을 갖춰 놓으면 투자자들이 신의주로 달려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남쪽에 홍콩이 있다면 북쪽에는 신의주가 있다”라는 그의 말이 이를 보여준다.그러나 홍콩과 신의주는 지역적으로, 역사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신의주가 홍콩처럼 국제투자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산이다. 외국 투자자금이 무한한 투자기회가 있는 중국을 버리고, 서해바다 멀리 박혀 있는 신의주로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양장관은 임명권자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지도 보여줘야 한다. 이번 무비자 입국 해프닝은 양장관과 북한 지도체제가 충돌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또 중국 내에서 일고 있는 부정적 시각을 스스로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탈세혐의 등으로 전격연행됨으로써 중국당국이 양장관을 보는 시각은 분명해졌다. ‘희대의 사기꾼’일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양장관은 ‘북한판 최규선’인가?woodyhan@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