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임대료에 ‘백기’… 문닫는 곳 속출

다른 물가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의 양복가격은 비싸다. 어지간한 중급 브랜드 제품이라 해도 한 벌에 7만~8만엔(약 70만~80만원)은 주어야 한다. 백화점 매장에 걸린 옷이라면 어김없이 10만엔에 가까운 가격표가 붙어 있다. 때문에 입고 싶다고 아무때나 새옷을 살 수 있는 샐러리맨들은 거의 없다. 거리를 걷다 보면 엉덩이 부분이 반질반질해질 정도로 오래됐거나 바짓단이 닳아 헤어진 옷을 입고 다니는 직장인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특유의 검소한 소비습관까지 몸에 밴 덕에 한쪽으로 잔뜩 닳아빠진 구두에 허름한 양복을 입고도 태연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일본 샐러리맨들의 단면이다.신사복을 초염가의 두 가지 가격으로만 판매하는 세일즈 방식으로 시장개척에 나섰던, 이른바 투 프라이스(Two Price)양복점은 샐러리맨들의 얄팍한 지갑을 역으로 이용해 돌풍을 몰고 온 신종 비즈니스였다. 샐러리맨 중에서도 아직 호주머니사정이 넉넉지 못한 사회 초년병과 30대 전후의 젊은 직장인이 투 프라이스의 주 타깃 고객이었다.2000년 초부터 집중적으로 점포확장에 나선 아오키 인터내셔널과 하루야마상사 등 체인형 중저가 신사복업체들은 캐주얼의류업체 유니쿠로와 함께 고객들의 인기와 지지를 한 몸에 누려 왔다.아오키 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슈트 다이렉트’의 경우 정장 한 벌을 1만9,000엔과 2만8,000엔의 두 가지 가격으로만 판매, 종일토록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매장에 따라서는 한 벌에 5만엔을 넘는 옷도 있지만 이는 최고급 수입원단을 사용해 만든 후 특정고객을 겨냥해 취급하는 곁가지 상품의 의미를 벗어나지 못했다.다른 대다수 투 프라이스 양복점의 판매가도 슈트 다이렉트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비싸다고 해도 3만엔을 넘어가지 않는 수준에서 두 가지 가격만으로 팔며 문턱을 크게 낮췄다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었다.투 프라이스 양복점들의 닮은 점은 가격말고도 두 가지가 더 있었다. 가격의 정직성, 합리성을 강조하면서 바겐세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또 다른 공통점이었다. 중저가품을 판다지만 점포 위치는 교외가 아닌 도심 한복판의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를 집중적으로파고든 것이 이들의 세 번째 특징이었다.하지만 투 프라이스 양복점의 기세는 3년도 못된 시점에서 일제히 고개를 숙이기 시작,업계 안팎을 놀라게 하고 있다. 채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업체마다 소리 없이 점포정리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는가 하면 판단을 잘못한 것 같다는 한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염가양질을 무기로 불황에 강한 업종으로 탄탄히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받았던 사업초기의 기대가 물거품으로 변해버린 셈이다.아오키 인터내셔널은 지난 5~7월까지의 3개월간 나고야, 요코하마, 하시모토 등 3개 지역 슈트 다이렉트 점포의 셔터를 내렸다. 이와 함께 신규 출점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문닫은 3개 점포는 모두 개점 후 1년도 채 안된 점포여서 경쟁업체들의 충격도 그만큼 더 컸다.이 회사의 한 임원은 “점포는 늘어났어도 경쟁이 격화된데다 점포임대료를 빼주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이 없었다”면서 “수익 위주로 점포를 압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회사는 내년 3월까지 3~4개 점포를 추가로 더 폐쇄하고, 단 1개 점포만 새로 문을 열 예정이다.중저가 신사복업체의 파이어니어업체로 알려진 아오야마상사가 운영하는 ‘더 슈트 컴퍼니’도 사정은 다를 바 없다. 지난 한 해에만 9개 점포를 새로 오픈했던 이 회사는 올 들어 지난 8월 말까지 2개 점포만을 늘리는 데 그쳤다. 9월 이후 신설 계획이 잡혀 있는 점포도 모두 4개점에 불과, 지난해의 반타작밖에 되지 않는다.‘퍼펙트 슈트 팩토리’의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인 하루야마상사는 지난해에는 9개의 점포를 개점했지만 올해는 8월 말까지 2개를 늘리는 데 그쳐 아오야마상사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슈트 셀렉트21’의 운영업체인 코나카는 2001년 봄부터 최후발주자로 시장에 뛰어든 탓에 점포수가 9개로 동종업계에서 가장 적은 수준이다. 그러나 최근 6개월간 신규 점포 오픈을 일절 중단, 2003년 12월까지 40개점을 확보하겠다던 당초 목표에 크게 미달할 것이 분명한 상태다.고정 투자비 과다 외화내빈형 점포의류업계 전문가들은 투 프라이스 숍의 고전 이유를 일차적으로 점포입지의 한계에서 찾고 있다. 투 프라이스 숍의 타깃 고객이 20대와 30대 전후의 젊은 직장인들에게 맞춰져 있는 상태에서 이들이 선호하는 도심 번화가에 점포를 내다보니 채산성에 한계가 왔다는 것이다.투 프라이스 숍의 매장은 여성의류 매장 못지않게 깔끔한 인테리어와 밝은 조명, 환한 실내 분위기 등으로 꾸며져 있다. 젊은 직장인들의 취향에 맞춰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다 보니 인테리어 등에 고정투자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 노른자위 상권에 점포를 마련하고, 매장 꾸미기에 신경을 쓰다 보니 업체마다 점포당 1억엔 이상의 목돈을 간단히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한 대형업체 관계자는 “임차보증금과 내부 공사 등으로 점포당 1억5,000만엔 이상 돈을 들인 곳이 수두룩한데 옷값이 싸다 보니 실제 매출은 기대를 따라주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1억5,000만엔 이상의 자금이 들어 간 곳이라면 최소한 연간 매출 4억엔 이상을 올려야 흑자전환이 가능한데 알맹이는 그렇지 못했다는 고백이다.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부동산값이 많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금싸라기 상권은 임차료가 싼 물건이 극히 한정돼 있다”고 지적한 후 “점포를 내고 싶은 의욕은 있어도 (흑자 전망이 서지 않아) 적극 추진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히고 있다.일본 중저가 양복업계에서는 교외형 점포의 경우 면적 500평 규모의 1개 매장당 7,000만~8,000만엔의 초기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1년에 1억5,000만~1억8,000만엔 정도의 매출만 올리면 그런대로 흑자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업계 실무자들의 일치된 분석이었다.이 같은 분석을 바탕에 깔고 본다면 투 프라이스 양복점은 과다한 투자비용에 실익은 별로 없는 외화내빈형 점포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겉은 번지르르하고, 고객들에게 인기는 끄는 것 같아도 버는 돈을 매장 건물주에게 주고 나면 빈손이 되는 그러한 사업이었다는 설명이다.(고나카의 오카다 요시히코 총무부장)사업 초기단계에서 역풍에 처한 투 프라이스 양복점들은 저마다 돌파구를 찾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더 슈트 컴포니의 경우 캐주얼의류를 포함한 패션잡화를 곁가지 상품으로 배치하며 수익극대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퍼펙트 슈트 팩토리는 남성용 정장만 파는 영업전략을 선회, 여성용 의류와 잡화까지 취급하며 고객들의 발길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슈트 다이렉트 등 일부 업체는 가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바겐세일을 외면한다고 주장했던 그동안의 고집을 꺾고 지난여름 처음으로 세일을 실시,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잇단 점포폐쇄 등 각 업체들의 후퇴전략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투 프라이스 양복점의 사업전망이 아주 흐린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익확보의 최고 걸림돌인 임차료 문제를 교외형 점포로 해결하고 상품의 다양화로 고객층을 좀더 넓히는 데 주력한다면 적자운영을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다고 이들은 진단하고 있다.야노경제연구소의 마쓰이 가즈오 연구원은 “점포입지뿐만 아니라 상품, 가격체계 등 사업내용을 근본적으로 수정한다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yangs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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