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 ‘최고급’·물건 ‘다양’… 수익 상승커브

일본은 중고품 대국이다. 천하무적의 제조업 경쟁력을 뽐내면서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해 온 덕에 어디에 가나 신상품이 넘쳐 나고 각양각색의 공산품이 거대시장을 형성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중고품 비즈니스가 유망사업으로 급속히 뿌리내리고 있다.중고장사라 해서 상품의 종류가 책, 자동차 등 일부에 한정돼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팔고 사는 중고품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입다만 헌옷에서 찻잔, 서화, 그릇, 액세서리, 악기, 골프채에서 고가 수입명품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상품이 중고품시장으로 나오고 있다.일부 일본 이코노미스트들 중에서는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제조업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해외로 나가고 있는 점에 비춰 볼 때 일본경제는 앞으로 리사이클산업과 중고품 비즈니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 중고품 비즈니스를 일본 최후의 산업으로 평가하는 견해까지 제기될 정도다. 중고품 비즈니스에 대한 시각변화는 달라진 세무 당국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일본 세무 당국은 중고품 취급업자를 지금까지 ‘고물상’으로 부르면서 물건구입과 판매 등에 관련된 영업실태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도쿄지역에서만 전문업자가 3,000~4,000명이나 될 만큼 고성장 비즈니스로 각광받게 되자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세무 당국은 최근 도쿄 인근의 도치기현 우쓰노미야시에서 한 중고품 취급업자를 덮쳐 장부를 가져간 데 이어 앞으로는 세무신고를 확실히 챙기겠다는 으름장으로 업자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처럼 중고품 비즈니스의 밝은 내일을 확신하며, 특히 독특한 영업방식과 체계화된 관리시스템으로 시장개척의 파이어니어 역할을 해 온 업체로 나고야의 ‘코메 효’를 꼽고 있다.나고야시 한복판에 들어선 6층짜리 대형 건물을 본점 매장으로 쓰고 있는 이 업체가 일본 언론의 주목대상이 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매장 내부를 돌아보면 중고품 취급업체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던 선입견이 단숨에 지워진다.건물 외관도 일류 백화점 못지않게 꾸며 놓았지만 내부의 쇼케이스와 진열장, 인테리어 등은 분위기 좋은 신상품 매장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고가품을 취급하는 코너는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으며 보석ㆍ시계, 수입 명품 핸드백, 카메라 등 진열된 상품 모두가 새것으로 착각할 만큼 깨끗이 다듬어져 진열돼 있다.가격표에 ‘중고품’이라는 표시만 없으면 감쪽같이 새것으로 속아 넘어갈 정도다. 상품도 없는 것이 없다. 중고품백화점이라는 명성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이 업체가 신상품을 전혀 취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체상품의 약 40%는 신상품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신상품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에 그친다. 인기상품의 경우 재고가 떨어졌을 때 신상품이라도 사기를 원하는 소비자가 나타나면 허탕을 치고 돌아가지 않도록 ‘고객만족’ 차원에서 갖춰 놓을 뿐이다. 본업은 분명 중고품 비즈니스다.‘코메 효’가 건물 외관과 매장, 내부 인테리어만으로 백화점과 어깨를 견준다는 것은 아니다. 매출과 수익 등 장사솜씨에서는 오히려 백화점을 능가한다. 본점의 1㎡당 연간매출은 380만엔에 달해 지척에 있는 일류 백화점의 배를 넘고 있다.도쿄의 내로라하는 백화점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2002년 3월 결산에서 이 업체는 205억엔의 매출에 5억4,700만엔의 세후 순익을 올렸다. 창립 후 55년간 순익이 계속 상승커브를 그리는 데 성공, 2003년 가을에는 기업공개를 단행할 계획이다.그러나 이 업체의 경쟁력은 외관이나 만물상식 영업방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쟁력의 핵심은 중고품을 고르고 사들이는 안목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이 업체는 전체상품을 7개 분야로 나눈 후 각 분야에 전문바이어를 두고 있다. 바이어수만 해도 80명에 이르고, 이들이 중고품 매각을 위해 ‘코메 효’를 찾아오는 연간 11만여명의 고객들을 상대한다.좋은 상품의 발굴이 사업 성패 가름이 업체의 이시하라 지로 사장은 중고품 비즈니스의 성공은 매력 있는 상품을 적정한 수준의 가격으로 확보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때문에 고객이 갖고 온 상품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는 노하우를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믿고 ‘코메 효’만의 고유비법을 바이어들에게 무장시키는 데 특히 힘을 쏟고 있다.이 업체가 중고품을 팔고자 찾아온 고객을 대하는 태도는 독특하다. 문 앞에 서서 깍듯한 인사로 맞이하지만 가격은 절대 흥정하지 않는다. 적정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되는 매입가격을 한 마디로 제시하고 나면 고객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법이 없다.이시하라 사장의 지시와 가르침 덕분이다. 흥정을 하다 보면 고객도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되기 쉽고, 가격의 투명성이 떨어져 이미지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사장의 판단이다.가격 사정 노하우는 창립 후 지금까지 축적된 풍부한 경험과 데이터에 뿌리를 두고 있다.이 업체는 우선 ‘8대2’의 원칙을 굳게 지키고 있다. 상품을 가지고 온 고객의 80% 이상으로부터 매입에 성공한다면 비싸건 싸건 바이어가 제시한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코메 효’의 바이어들은 중고품을 팔러온 고객으로부터의 매입성사율이 80% 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상품을 보는 눈을 다듬는 등 자신을 연마하고 있다.또 다른 원칙은 30%의 마진을 항상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팔리지 않고 폐기처분될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30%의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선에서 가격을 제시하라고 이 업체는 바이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코메 효’는 중고품을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가격이 적정한지 아닌지의 여부를 가려내는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상품을 들여 놓은 후 첫 일주일 동안에 20%, 2개월 내에 80%가 팔려나갔는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적정가격을 판가름하고 있다.판매실적 체크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대형유통업체들 못지않게 완벽하게 구축해 놓은 판매시점관리시스템(POS)이다. 이 업체는 POS를 통해 30만여점에 달하는 모든 상품의 매입가격, 바이어별 매입성사율, 상품이 팔린 날, 가격, 이익률 등을 낱낱이 파악해 놓고 있다. POS에 입력된 데이터가 바이어 한 명 한 명의 성적표가 됨은 물론이다.이 같은 시스템에 대해 이시하라 사장은 “과거의 경험법칙이 아무리 좋더라도 이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꾸어 놓지 않으면 우수한 바이어들을 길러낼 수 없다”며 효과에 강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코메 효’가 갖추고 있는 경쟁력의 또 다른 비밀은 ‘상품퇴출연구회’에 있다.이 업체는 매월 1회씩 정기휴일에 모든 바이어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갖는다. 회의에서는 진열된 지 2개월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은 상품을 하나하나씩 테이블에 올린다. 바이어들은 가격책정이 잘못됐는지, 아니면 진열방식이 나빴는지 원인을 가려내기 위해 집중 토론을 벌인다. 회의가 반복될수록 동일한 실패가 반복될 가능성은 낮아지고 경쟁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그러나 탄탄한 영업 기반과 내부 시스템을 갖춰 놓고 있음에도 불구, 이시하라 사장은회사의 돌아가는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좋은 상품을 많이 발굴해내는 것에 중고품 비즈니스의 성패가 달렸지만 지난 한 해 동안 매입성사율 증가속도(20%)가 매출증가율(27%)을 따라주지 못했다는 욕심 때문이다. yangs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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