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케미컬 매출액 비중 패션 앞질러...학생복사업 포기 쓰라린 경험도
‘아직도 직물ㆍ패션업체로 알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부터 화학ㆍ전자 재료 업체로 불러주세요.’제일모직은 업계에서 ‘변신의 귀재’로 통할 정도로 업종전환에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1954년 직물기업으로 시작한 제일모직의 첫 번째 변신은 80년대 초반 패션사업에 진출한 것이다.패션 부문은 현재 국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갤럭시, 빈폴 등 유명 브랜드를 앞세워 세계시장의 문을 두드릴 정도로 성장했다. 90년대 들어 제일모직은 카멜레온처럼 ‘케미컬회사’로 옷을 갈아입었다. 케미컬사업도 대박을 터뜨렸다.모니터용 수지는 지난해 말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 1위(36%)에 올라섰고, 컬러TV용 수지와 냉장고용 수지도 각각 12%씩 차지해 2위를 기록했다. 제일모직의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삼성전자와 삼성SDI 등에서 생산하는 IT 제품의 재료 분야에 뛰어들었다.제일모직은 전자재료 분야에 기업의 미래를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변신의 전도사’로 불리는 안복현 사장이 “오는 2005년께는 (제일모직이) IT 첨단재료업체가 될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다.제일모직은 변신을 거듭하며 체질이 다른 회사가 됐다. 2002년 상반기 매출액 중 케미컬이 차지하는 비중이 46%로 가장 높았다. 기존의 주력이었던 패션(43%)을 따돌리며 제일모직의 ‘몸통’으로 자리잡은 것이다.전자재료(5.2%)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제일모직이 10년 뒤 ‘몸통’으로 삼을 분야다. 그래서일까.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만든 IR 자료의 첫 페이지는 ‘전자재료’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다음이 케미컬, 패션, 직물 등의 순이다.끊임없이 신수종 찾기 시도제일모직이 수십년에 걸쳐 기업변신에 성공한 비결은 뭘까. 먼저 ‘잘나갈 때 미래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제일모직이 패션업에 뛰어든 것은 80년대 초. 당시 국내 신사복시장이 기성복시장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는 상황을 발빠르게 간파했다. ‘최고의 신사복 원단으로 최고의 양복’이라는 컨셉은 소비자들의 호응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특히 IMF 위기가 오기 10여년 전에 이미 케미컬연구소를 만든 것은 제일모직의 선견지명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회사 내부에서는 신사업 진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진출업종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진출이 쉬운 유통이나 외식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산업재시장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가 반영됐다.김인수 홍보담당 상무는 “미래성장성이 약한 소비재산업보다 미래가치가 높은 산업재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케미컬사업 진출을 결정한 것은 애초에 섬유를 주력으로 하다가 화학업체로 변신한 듀폰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과감한 구조조정도 원활한 기업변신을 도왔다는 것이 회사 안팎의 평이다. 제일모직은 97년 3,727명의 임직원을 2001년 2,197명으로 41% 정도 줄였다. 이 과정에서 적자사업은 철수하고 생산ㆍ판매 부문의 일부는 분사했다. 특히 패션 부문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브랜드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생산 전량을 아웃소싱으로 돌렸다.대리점은 대부분 일종의 소사장제인 ‘사내 기업가 제도’를 도입해 유통ㆍ판매 분야의 경험자들에게 매장을 맡겼다. 이렇게 함으로써 노사분규 없이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물론 삼성그룹이라는 막강한 인프라도 큰 도움이 됐다. 전자재료 분야가 그런 경우다. 제일모직이 전자재료 분야를 새로운 신수종으로 삼은 것은 수입의존도가 80%가 넘을 정도로 국내에서는 아직 초기단계라는 점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삼성SDI 등 공급처가 충분하고, 기술적인 지원도 이들 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함께 고려된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그렇다고 변신과정에서 탄탄대로만 달린 것은 아니다. 우선 다양한 신사업에 진출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지난 1988년 학생복사업에 진출했다가 1999년 중소업체에 사업권을 넘겼고, 1996년 뛰어든 카펫사업도 2000년에 포기하는 아픔을 겪었다.또 케미컬과 전자소재 분야에서는 기술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수인력 확보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하고 국내외 우수인력 스카우트에 적극 나서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 이런 노력으로 현재 제일모직 연구인력 중 석ㆍ박사급은 220여명에 달한다.제일모직은 전자재료 분야에 투자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2005년까지 전자소재 분야에 2,3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전자재료 부문에서만 4,200억원의 매출을 올려 국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서겠다는 것. 1950년대 직물업체에서 2000년대 첨단업체로 거듭난 제일모직의 10년 후 모습이 기다려진다.INTERVIEW / 안복현 사장“변신 계속해야 기업수명 30년 이상 갑니다”제일모직의 변신을 이끌고 있는 안복현 사장(53)은 삼성그룹에서도 알아주는 재무통으로 사업에 대한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1971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뒤 불과 7년 만에 그룹비서실 재무팀장을 맡을 만큼 일찌감치 인정을 받았다. 1998년부터 제일모직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끊임없이 변신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서 변신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수익성과 성장성을 염두에 두고 시대별 경영환경에 맞는 기업변신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수명은 30년이라고 합니다.즉 지속적인 변신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기업은 30년 만에 수명을 다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기업이 오랜기간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시대에 맞게 변신해 나가야 합니다.이질적인 업종이 공존하고 있어 전사적인 공감대 형성이 힘들지 않았습니까.대표이사 취임 뒤 지금까지 전임직원을 대상으로 ‘대표이사로부터 온 편지’를 매주 또는 격주로 발송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70여통의 편지가 사내 전산망을 통해 해외 현지 직원들에게까지 전달됩니다. 편지내용은 회사의 월별 매출액이나 손익실적, 사업부별 문제점이나 현안 등 경영상황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한 것입니다.또는 경영철학이나 독후감, 출장소감 등 임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도 담습니다. 임직원들이 대표이사의 편지를 읽고 답장을 보내면 일일이 답신을 합니다. 이와 함께 전사적으로 ‘칭찬 릴레이’ 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전직원이 신명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늘 강조하는 투명경영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습니까.주주이익을 우선시하면 투명경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기별 경영실적에 대해 투명한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주주 및 투자자와의 정기적인 간담회 및 기업설명회를 통해 경영현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액면가 기준 배당률 10~12%의 고배당 정책을 유지해 주주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고배당 정책을 유지할 방침입니다.제일모직의 10년 후 비전은 무엇입니까.제일모직은 성공적인 기업변신을 통해 첨단화학소재와 전자재료 및 토털 패션사업을 추구하는 세계 일류기업으로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직물과 패션의 수익성과 화학, 전자재료 사업의 성장성을 조화시켜 나갈 것입니다.직물사업은 세계 최고의 품질과 생산성을 확보해 안정적인 이익률을 달성하고, 패션사업은 글로벌 브랜드를 육성해 세계적 패션업체로 도약할 것입니다. 화학사업은 세계 최고의 특화된 수지제품을 생산하고, 전자재료는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나가고 핵심아이템의 세계시장점유율을 점진적으로 높여나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