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연매출 20억원 미만, 개인사업자 대상 대출 시작...다른 은행들도 개발 '한창'
자영업자를 잡아라! 은행가에 새로운 과제가 떨어졌다. 새로운 수익원 발굴에 고심하는 은행들이 새로이 눈독들이고 있는 곳은 자영업자 대출 시장이다.그간 은행들은 신용대출에서 자영업자를 소외시켜 왔다. 고정적인 소득이 들어오는 ‘유리알 지갑’ 봉급생활자들과 달리 자영업자는 신용을 과학적으로 평가할 방법을 국내 은행들이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은행들은 업종 특성상 부도율이 극히 낮은 변호사, 의사 등 특정 직종의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들만을 대상으로 대출상품을 만들었다. 제공할 담보가 없는 일반적인 자영업자들은 주로 가계대출이나 사채 등을 이용해야만 했다.그런데 최근 초대형 국민은행이 대대적으로 ‘소호시장에 뛰어든다’고 선언했다. 국민은행이 전국에 갖고 있는 점포수만 1,300여개. 이 많은 점포에서 자영업자 모시기에 나선다고 하니 멀지 않아 싼 값에 편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국민은행은 그간 국내 시중은행들이 갖고 있지 못했던 자영업자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모형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10월 중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우선 서울 강남대로 지점 등 6개 지점을 시범점포로 선정, 테스트를 시작했다.만든 시스템은 재무제표가 없기 때문에 신용상태를 평가할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한 고객을 위한 것이다. 국민은행은 기본적인 소득, 은행 여수신 상황 등 계량적인 정보 외에 경영자로서의 자질 등 비계량적인 정보까지 점수화해 소호의 신용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신용평가가 사람의 주관적 판단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대출 여부를 빨리 결정하고 이에 따라 적정 대출금리 적용도 가능하다는 것. 한 달 시범영업이 끝나면 11월15일 소호전담팀이 설치되는 307개 점포를 포함해 1,300여개 전 점포에서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현재 시범점포에 투입될 전담인력을 교육하고 있다.고객을 10등급으로 분류해 그 등급에 따라 대출한도와 금리가 달라진다. 국민은행측은 아직 금리를 밝히지 않았으나 “가격경쟁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은행권에서는 10~15% 선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서 ‘소호’란 매출액 20억원 미만, 은행여신 5억원 미만의 자영업자들이다.모형을 개발하면서 국민은행은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시스템에 의한 대출’로 대출에서 부실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일선 영업점 직원들이 책임을 지지 않게 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책임을 걱정한 영업인력들이 상품을 팔지 않기 때문이다.이 같은 면책 때문에 신속한 대출, 한꺼번에 많은 물량 판매가 가능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금액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출의 80% 이상이 서류와 창구상담만으로, 현장 방문 없이 이뤄지게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국은, 신용평가 모형으로 빠른 대출 가능반면 현재 국민은행이 말하는 소호와 가장 유사한 고객을 공략하고 있는 기업은행은 대출심사시 시스템과 담당자의 평가를 결합한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자영업자 우대 대출인 ‘파인 한가족 신용대출’을 올해 한시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고객이 대출상담을 하면 대개 담당직원이 직접 사업장에 나와 둘러보고 나서 대출 여부를 결정한다.국민은행 관계자는 “우리 시스템이 우수한지, 기업은행의 방식이 옳은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면서 “모든 것을 시스템에 맡기는 것은 대량으로 신속하게 판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그만큼 위험하다는 단점도 있다. 1년 이상이 시간이 지나야 이 모델이 적확했는지에 대한 검증이 끝난다”고 말했다.국민은행이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이 분야 시장에서 치고 나서는 이유는 이 은행의 비전이 ‘세계 수준의 소매은행’이고, 이에 따라 타 은행과 달리 기업금융 부문의 전략목표마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옛 주택은행 시절부터 이 시장에 대해 사전 검토를 해 왔으며, 본격적으로 시스템 개발에 매달린 것도 1년 가까이 된다.국민은행은 연간 매출 20억원 미만의 자영업자 대출 시장에 대해 매우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시장진출을 타진하면서 맥킨지사의 컨설팅을 받았는데, 이 회사 역시 매우 고무적인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가지고 왔다.올해 초 작성된 국민은행 경제경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소호 고객에 대한 여신시장 규모는 2004년까지 240조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수치로 보면 대상이 되는 개인사업자는 올해 200만명인 것으로 파악된다.신한은행은 내부 보고서를 통해 매출액 30억원 미만의 법인 및 개인사업자를 ‘스몰 비즈니스’라고 부르고 있다. 이 은행에서 파악한 이 집단의 특성은 첫째, 최초 거래은행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 둘째, 금리에 둔감하다. 셋째, 세원 노출을 우려하기 때문에 정보 공개를 회피한다. 넷째, 업종의 종류가 너무 많아 획일적인 사무 처리가 어렵다. 다섯째, 편의성과 신속성을 보다 중시한다 등이다.이처럼 국민은행이 ‘매출 20억원 미만’을 타깃 고객으로 한정한 반면, 대응책 찾기에 부심하고 있는 타 은행들은 대상고객을 중소형 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으로 아우르고 있다. 이들간의 구분은 모호한 편.기존 중소기업 및 소형사업자 대출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던 우리, 기업은행 등은 국민은행의 이 같은 공격적 행보를 주시하면서도, 이 은행의 전략이 최근 3년 사이 주택담보대출이 폭발했던 것처럼 신규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지에 의구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신한은행 역시 이에 대응해 ‘스몰 비즈니스팀’을 신설했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전망은 조금 다르다. 이 은행 임종택 차장은 “기존 소규모 사업자들의 대출이 옮겨가는 것이라면 큰 의미가 없고, 규모 성장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또한 향후 1~2년간의 경기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자영업자들은 음식료 등 서비스 업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경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종. 여러 민간 연구소 등에서 최근 제시되고 있는 향후 경기 전망이 밝지 못하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는 상황은 자영업자 대출 시장이 순조롭게 성장할지에 의문을 갖게 한다.또한 씨티은행 계열인 SSB증권의 오석태 조사부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미 가계대출로 잡혀 있는 것 중에서 166조6,000억원이 자영업자 부문에서 발생한 것으로, GDP의 28.7%”라며 “이는 미국의 20.6%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금리가 상승할 경우 이런 개인 자영업자들이 사업 운영을 위해 빌려 쓴 대출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위험을 감수하고 ‘마켓 메이커’로 나서는 국민은행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럽다. 이 은행 관계자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황금시장은 아니다”고 말한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국민은행은 2년간 공격적이면서도 동시에 보수적으로 신용대출을 해 보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이를 확장한다는 계획이다.신용대출기간이 1년이고, 7개월 이상 연체 해야 완전 부실채권으로 잡히기 때문에 2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은행 지점과 가까운 곳에 있는 점포에 대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접점이 있는 셈이고, 이 가게가 1년 안에 망하지만 않으면 크게 손해 볼 일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이미 소규모사업자 대출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던 기업은행도 자산 5억원 이상의 중규모 기업을 ‘파트너 기업’, 자산 5억원 이하의 소규모를 ‘드림 기업’ 이라고 해서 대상을 세분화하는 한편 드림기업 전담팀을 40개에서 64개로 확대 개편하고 있다. 하지만 매출 20억원 미만의 자영업자와는 그 대상이 다소 차이가 있다.저축은행, 동대문 상가 등 밀착영업중한편 지역 밀착형 영업을 선호하는 저축은행들은 소리 없이 자영업자 대출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다. 다만 이들은 신용평가 시스템보다 상품으로 접근한다. 즉 대출부도율이 낮은 틈새 직업군을 집중적으로 선정해 이들에게 맞추는 각종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플러스저축은행, 토마토저축은행, 삼화저축은행 등이 대표적이다. 삼화저축은행은 과일유통업체, 미용재료상 등 특정업종을 대상으로 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화저축은행의 ‘과일나라 가맹점 창업자금 대출’은 과일유통전문 기업인 과일나라와 협약을 맺고 신규 가맹점에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것.최고 1,200만원까지 연 12%의 이자를 받는다. 또 이 저축은행은 국가나 공공단체가 인증한 자격증으로 소지한 사람들에게 대출하는 ‘자격증대출’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