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유치 출혈경쟁 “브레이크 풀렸다”

하나로 "우리고객 1만5,000명 빼갔다", KT "VDSL 품질 경쟁력 있다" 반박

“경쟁사 죽이기냐.”“첨단으로 가고 있을 뿐이다.”지금 국내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시장에서는 KT와 하나로통신이 맞붙어 불꽃이 튀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8월 국내 통신 종가인 KT가 초고속디지털가입자회선(VDSL) 서비스를 아파트 단지에 공급하면서다.아파트 단지는 하나로통신의 시장점유율이 50%를 웃도는 텃밭. 이곳을 VDSL 서비스로 공략한 것은 그러지 않아도 경영난에 허덕이는 하나로통신을 고사시킬 수 있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다.진행상황그동안 KT와 하나로통신의 과당경쟁은 끝을 모르고 치달아 왔다. KT의 경우 타사 전환 고객에 대해 4~8개월 사용료를 면제해주고, 전화사용료 정액제 혜택을 주는 등 고객 잡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에 질세라 하나로통신도 발신자표시 전화기 등 각종 경품을 내걸고 고객 끌어안기에 안간힘을 썼다. 물론 이런 사실을 양사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실제 영업현장에서 이런 과당경쟁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다.이 지칠 줄 모르는 제살깎기 경쟁은 지난 8월 KT가 VDSL 서비스를 들고 나오면서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10월15일 현재 KT가 VDSL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파트 단지수는 무려 588개에 달한다. 발주물량만 11만회선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하나로통신의 초고속인터넷 ‘하나포스’ 고객을 타깃으로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다는 게 하나로통신측의 주장.이 때문에 하나로통신측은 지난 2개월간 무려 1만5,000명의 고객을 도둑맞았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하나로통신측의 살아남기 위한 반격도 이미 시작됐다. 더 이상의 고객유출을 막기 위해 ‘공짜전화’ 도입을 선언한 것이다.10월 말까지 KT의 파상공세가 시정되지 않으면 초고속인터넷 하나포스와 결합상품으로 서비스하던 플러스전화를 무료로 제공할 방침이다. 시내전화 가입자에게 받던 기본료 4,300원을 포기하겠다는 고육책을 선택한 것이다.하나로통신 관계자는 “현재 ADSL로도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서비스 이용에 전혀 지장이 없음에도 KT가 VDSL사업에 집중하는 것은 과당출혈경쟁을 불사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KT 마케팅본부 접속사업팀 관계자는 “하나로통신의 주장에 대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13Mbps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VDSL로 8Mbps까지만 속도를 낼 수 있는 ADSL을 대체하자는 것인데 하나로통신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소비자에게 부담을 지울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이 관계자는 또 “더욱이 사업자 입장에서는 10% 가량 장비원가를 줄일 수 있는 VDSL쪽으로 사업전환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시장은 9월 말 현재 KT 메가패스가 455만6,000회선(45.3%), 하나로통신 285만3,000회선, 두루넷 130만 6,000회선으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하나로통신측은 KT가 아직 표준화도 안된 VDSL 서비스를 후발주자들의 점유율이 높은 지역에서 확대하는 것은 결국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확보해 독점권을 행사하려는 의도라고 맞서고 있다. 최근엔 유력 일간지 등에 대국민 호소문까지 게재하며 KT를 공격하고 나섰다.중복투자 & 출혈경쟁하나로통신으로서는 KT의 VDSL 공세에 맞서기 위해 사실상 ADSL 단지 내에 VDSL 서비스를 위한 중복투자가 불가피하다. 하나로통신측은 현재 확보한 5,300단지, 130만회선을 기준으로 4,242억원을 추가비용으로 산출하고 있다.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존 하나포스 고객이 VDSL로 전환할 경우 발생하는 DS램, 모뎀, ATM교환기 등 ADSL 매몰비용도 가히 천문학적 수치에 이른다. 130만회선 기준으로 2,000억원에 달한다는 것. 마찬가지로 VDSL 설치를 위한 KT측의 신규투자비용도 2,000억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점쳐진다.이에 대해 KT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KT의 VDSL 시설 공급물량은 대부분 신규가입자 수요분이라는 것이다. 다만 기존 ADSL이 전화국에서 멀리(3㎞ 이상) 떨어져 있는 아파트에서 속도가 떨어지는 까닭에 아파트 단지 위주로 VDSL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KT측은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하나포스 고객이 일부 메가패스로 이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고객 고유의 서비스 선택권에 관한 부분이라며 하나로통신측의 주장을 일축했다.주파수방식 표준화 문제하나로통신측은 VDSL 장비의 주파수방식이 표준화돼 있지 않아 기술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000년 초고속인터넷의 확산으로 도입된 T랜 장비와 VDSL 장비를 인접지역에서 동시에 사용할 경우 VDSL 속도가 떨어지고 심할 경우에는 접속이 끊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특히 국내 VDSL 서비스 제공사업자들은 주파수 변조방식으로 쾀(QAM) 방식을 쓰고 있는데 현재 세계통신연합(ITU)에서는 또 다른 변조방식인 DMT 방식도 표준화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하나로통신측에서 지적하는 VDSL 표준화 문제에 대해서도 KT측은 매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VDSL은 이미 북미(ANSI)와 유럽(ETSI)에서 기본 프레임은 표준화가 돼 있고, ITU에서도 표준채택을 추진하고 있다”며 “인터넷 분야에서는 표준화가 주로 제조업체 위주의 포럼과 지역표준화 단체가 주도하고 있는 만큼 ITU 역시 민간·지역 표준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따라서 한국이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국내 업체가 표준화 초기단계에서 서비스와 제조기술을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하나로통신측은 “KT는 민영화 이후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불공정 마케팅으로 후발주자의 가입자를 전환 유치해 왔다”며 “이에 맞대응하기 위해 출혈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피력했다.이에 대해 KT측은 “불공정 행위를 한 적이 없다”며 “올 들어 신규가입자 수의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런 공격적인 마케팅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 서홍석 과장은 “초고속인터넷 사업자들의 불공정 사례가 일부 접수되고 있다”며 “특히 타사 고객을 자사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에 대해선 엄중 처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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