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업계 ‘여자가 접수!’

“부동산은 서비스업이다. 정확성과 스피드를 요한다. 게다가 지식산업의 일종이다. 똑똑하고 민첩한 여성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차상란 KB부동산신탁 전략사업팀장)“모든 업계에서 여성의 진출이 늘어난 것처럼 부동산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여성에게 문호가 개방된 분야다. 생활 속에서 부동산을 접하는 여성들이 두각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김우희 저스트알 상무)부동산업계에 메머드급 ‘여풍’(女風)이 불고 있다.중개, 법원경매, 주택건설 등 전통적인 부동산 관련 업종뿐만 아니라 자산관리, 투자자문, 시세정보분석, 연구기관 등에서도 여성 인재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부동산 전 분야에 걸쳐 여성의 입지가 높아진 것은 물론 이들의 업무 수행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업계에 ‘여자 전성시대’가 도래한 셈이다.여성 진출이 늘어났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로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들 수 있다. 지난 10월20일 치러진 제13회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의 경우 26만5,995명의 지원자 가운데 여성은 33.7%인 8만9,000여명에 달했다.특히 합격자 비율은 매년 급속도로 높아지는 추세다. 제1회 시험이 치러진 지난 85년의 경우 합격자 가운데 여성은 4.4%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99년에는 26.6%, 2000년에는 38.9%, 지난해에는 40.4%로 크게 높아졌다.(표참조) 지난해 전체 합격자 비율이 18%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여성 응시자의 합격률이 남성 응시자에 비해 월등히 높은 셈이다. 또 지난해 개업한 공인중개사 가운데 여성 비율이 40%를 넘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부동산전문가의 ‘산실’로 인정받고 있는 건국대 부동산학과의 학생 비율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90년에는 입학생 가운데 여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현재 2학년은 여학생 비율이 40%로 크게 높아졌다.이 학교 출신인 한미숙 리얼티어드바이저스코리아 투자운용팀 과장은 “92년 입학 당시 여학생은 2명뿐이었다. 그나마 부모님들은 졸업 후 복덕방에 취직하는 줄 알고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미리 진로를 결정하고 입학, 꾸준히 스스로를 연마하는 모습”이라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부동산시장에 진출하는 여성이 늘어나는 것은 시장의 성격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외국계 부동산 서비스 기업이 국내에 속속 상륙했고, 그에 따라 선진 부동산기법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공급자 중심의 시장에서 서비스 기능이 강조되는 ‘종합 예술’ 부동산시장으로 바뀐 것이 여성들에게 디딤돌이 된 것이다.특히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한 중개 컨설팅업의 급부상, 리츠 등 금융 접목 상품의 출시, 시세정보 수집ㆍ분석의 중요성 대두 등 새롭게 만들어진 시장환경이 여성 인재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고성수 교수는 “저자본 영세 업태가 대종을 이루던 부동산시장이 기업화, 대규모화, 전문화되면서 감각 있는 여성 인력이 진출할 만한 틈새가 많아졌다.어학능력과 부동산 전문지식을 고루 겸비한 젊은 여성 인력들이 각광받는 것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요구”라고 말한다. 남성들이 기반을 잡고 있는 다른 분야에 비해 진출이 수월한데다 빠른 시일 내에 자리를 잡으면서 ‘아성’을 구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역동성ㆍ창의성 가장 큰 ‘매력’부동산업계에서 주목받는 여성들은 ‘노력파’라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어려운 과정을 마다하지 않고 주어진 임무는 밤을 새워서라도 해낸다.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부동산시장 분석가로 잘 알려진 김우희 저스트알 상무는 업무만으로도 바쁜 일과를 쪼개 대학원에 진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야간대학원에 입학해도 힘에 부칠 것을, 일반 대학원 부동산학과에 들어가 ‘전업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했다. 주변에서 ‘철인’이라고 표현하는 게 무리가 아니다.부동산신탁업계 최초의 여성 팀장인 차상란 KB부동산신탁 전략사업팀장도 마찬가지다. 감정평가사를 비롯해 부동산 관련 자격증만 5개를 지녔다. 감정평가사로 일할 때는 새벽 출근을 밥 먹듯 했고, 고객과의 전국일주도 주저하지 않았다. 화려한 경력들이 100%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졌음은 물론이다.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발로 뛰어 만든 보고서로 정평이 났다. 뿐만아니라 일주일에 3~4회 언론에 기고를 하고, 2~3회는 외부 강연에 시간을 할애한다. 연이어 걸려오는 전화까지 합치면 실로 눈 코 뜰 새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진다.그러나 이들은 부동산의 ‘역동성’ ‘창의성’ ‘신선함’에 반해 몸의 고단함 정도는 금세 잊는다고 말한다. 언제나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시장이 살아 움직이는 걸 체감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 때문이다. 그에 따라 어느 누구보다 큰 성취감도 느낀다.이지현 BHP코리아 대리는 “컨설팅한 부동산의 투자수익성이 증명될 때, 그 짜릿함은 대단한 것”이라고 말한다. 대림산업 민간사업부의 홍일점인 최미혜씨도 “직접 사업성을 검토한 아파트가 지역에서 최고가 아파트가 됐다는 소식에 뿌듯함을 느낀다”며 웃는다. 김희선 부동산114 CRM본부 상무는 “개인 자산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을 다루고, 그 부동산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쌓을 때마다 자긍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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