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편의 먼저 생각하는 서비스 인기·지역사회 기부 활발 … 매년 15억달러 정도 수출
우리 주변에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자주 접하게 되는 회사가 바로 한국휴렛팩커드(HP)다. 아마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 가운데 한국HP 제품 하나쯤은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 든 상태다. 외국계 기업 가운데 유난히 친숙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한국HP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지난 84년이다. 미국의 HP 본사와 삼성전자가 합작해 한국HP를 세웠다. 당시 자본금은 81억원으로 HP가 55%, 삼성전자가 45%를 출자했다. 이후 96년에 80억원을 증자해 총자본금을 161억원으로 늘렸다. 98년에는 HP 본사에서 삼성이 갖고 있던 지분 45%를 전량 인수했고, 2002년 4월에는 컴팩코리아를 합병해 회사규모를 키웠다.매출액도 해마다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96년 6,390억원이었던 것이 98년에는 8,320억원으로 늘었다. 이어 2001년에는 1조2,906억원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증가세를 나타냈다. 순이익 규모 역시 2001년 기준으로 311억원을 기록해 외형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내실 면에서도 아주 우수하다는 점을 입증했다.주력품목은 데스크톱 및 워크스테이션, 노트북과 PDA 등 다양하다. 또 프린터와 팩스, 복사기, 저장장치 등을 생산하고 서버와 네트워킹, 모니터, 그리고 프로젝터 등도 한국HP의 제품군을 형성한다. 각종 소모품, 소프트웨어 및 운영체계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와 함께 이들 제품에 대한 서비스와 솔루션도 제공하고 있고, 장비대여와 렌털사업, 교육사업 등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데스크젯 시장점유율 1위특히 이 회사의 잉크젯 프린터인 데스크젯의 경우 능률협회가 조사해 발표하는 고객만족도 조사 프린터 부문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회사측은 “데스크젯의 경우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부침이 심한 IT시장, 이 가운데서도 주변기기시장에서 변함없이 장수하고 있는 대표 브랜드”라며 “무엇보다도 앞선 기술로 구현하는 뛰어난 품질과 고객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는 서비스 정신이 소비자들에게 높이 평가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한국HP에서 만드는 각종 제품들은 국내 현지공장에서 모두 만들어진다. 서울 가산동에 위치한 공장에서 한국HP가 연구개발한 것을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생산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공급한다. 특히 HP의 계측장비에 장착되는 모듈을 각 제품의 특성에 맞게 개발, 생산하여 HP 수요의 약 75%를 공급하는 기술이전을 통해 한국 계측기산업의 세계화를 꾀하고 있다.또한 무선통신 기지국용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리시버를 97년부터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으며, 기지국 장비를 검사하는 계측장비(CDMA)의 소프트웨어를 HP 본사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국내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한국HP는 수출에서도 적잖은 몫을 차지하고 있다. 수입액보다 수출액이 항상 많았고, 해마다 약 15억달러 정도를 수출하여 무역수지에 적잖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인 수출품목은 PC 모니터로 HP가 필요로 하는 모니터 전체 공급량의 약 50%를 한국에서 책임질 정도로 외국으로 많이 나간다. 또한 TFT-LCD, D램, 마스크롬(Mask Rom) 등의 반도체와 CD롬 등도 해외에 많이 수출한다.지역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기부 또한 한국HP를 돋보이게 만든다. 불우이웃돕기 및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에 대한 꾸준한 기부를 통해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97년에는 정부기관에서 추진한 ‘중소기업 인트라넷 환경의 ERP 표준모델 개발’을 지원하여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는 중소기업 정보화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또 98년에는 대학과 연구기관에 약 200억원 어치의 소프트웨어 및 장비를 기증하여 국내 정보산업 발전에 일조했고, 2000년에는 교육정보화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300명의 초중고 전산담당 교원들에게 네트워크, 인터넷 관련 무상 교육과정을 제공해 상대적으로 정보인프라 혜택을 덜 받는 학교 담당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외국계 기업답게 한국HP는 자유로운 벤처문화를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한국HP의 눈부신 성장배경에는 자율성과 성과주의의 조직문화가 큰 몫을 했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일례로 정해진 출근시간이 없고, 자유롭게 퇴근한다.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업무일정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물론 업무에 대한 책임도 담당자가 진다. 성과주의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한국HP의 기업목표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한때의 IT호황을 틈타 ‘반짝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동북아의 거점기지’로 육성하는 한편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또 경영철학은 ‘HP Way’로 요약된다. 종업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배려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대하고, 각자의 업적을 서로 인정해주자고 강조한다.CEO 탐구 / 최준근 사장열린 경영 실천하는 ‘20년 HP맨’지난 1995년 한국HP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 올해로 8년째 CEO로 일하고 있는 최준근 사장(49)은 자유로운 기업문화를 직접 실천하는 경영인으로 유명하다. 사장은 있지만 사장실은 따로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무실 한쪽에 책상을 놓고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며, 칸막이 위에 ‘최준근’이라는 명패를 놓아 사장이 일하는 곳임을 알린다.사장 임명 당시 한국인 최초의 한국HP 대표이사로 주목을 받았던 최사장은 기업 내의 권위주의적인 요소를 걷어내는 데 앞장서 왔고, 출퇴근 자율제 등 형식파괴와 실적주의 평가로 업무능률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HP가 설립된 지 20년이 안돼 매출 2조원을 바라보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최사장은 평소 ‘자신은 본사의 경영정신을 한국 상황에 맞게 한국HP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가교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최근 들어 칼리 피오리나 회장 등이 강조하는 “고객의 요구를 즉각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속도를 높여야 한다”를 자주 말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점도 최사장의 강점으로 꼽힌다. 평소 ‘스스로 재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HP 본사 연구원 출신답게 제품에 관련된 아이디어를 수시로 내놓는다. 지난 98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본사로부터 3억7,000만달러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려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인터넷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개라지(Garage) 프로그램’(비즈니스 모델 개발 지원부터 마케팅 협력에 이르는 총괄적인 기업육성책)을 국내에 도입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진주고와 부산대 공대를 나왔으며, 82년 미국 HP 본사의 소프트웨어연구소에서 개발업무를 맡으며 인연을 맺었다. 84년 HP가 한국에 진출할 때 귀국해 계속 근무했고, 93년 한국HP 관리본부장을 거쳐 95년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에 올랐다.하버드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을 지난 98년 수료했으며, 전경련 국제기업위원회 위원장과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요즘은 지난 4월 합병한 컴팩코리아 직원들을 효과적으로 아우르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