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도시에서 생명을 노래하다

또 세상이‘전쟁’이란 단어에 예민해지고 있다. 남의 일이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강 건너 불구경’에 마음을 졸이는 것은 세상이 지구촌으로 가까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침 연극판에서도 전쟁에 대한 무서운 기억이 들춰진다.군국주의와 히로시마 원폭사건으로 빚어진 비극을 뮤지컬 에 담았다. 이 역동적인 뮤지컬은 전쟁의 광기와 그에 맞서 숭고한 생명력을 지켜나가려는 인간의 굿판이다. 전쟁으로 미쳐가는 세상을 대신해 무대에서 쓰는 희망의 반성문이다.이 뮤지컬은 일본의 유수한 연극제작자인 기야마 기요시의 작품이다. 1996년 7월20일 도쿄에서 초연된 이래 무려 203일간 227회(2002년 9월16일 현재)로 롱런하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몇 년 전에는 뉴욕에서 공연돼 관객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혹평에 이골이 난 가 유례없이 높은 평가를 내려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은 1945년 8월6일 당시 6살이었던 소년 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겐은 바로 히로시마 원폭 당시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겐은 원작자다. 작가자신이 겪은 그당시의 생생한 경험을 작품화한 것. 겐이 겪은 비극의 분노와 슬픔이 곧바로 관객에게 전달되고, 감동은 세대와 국경을 넘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불타버린 도시에서 힘 있게 살아가는 장난꾸러기 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뮤지컬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비극을 통해 차별이나 편견, 교육방식, 환경문제, 무엇보다 생명의 존귀함과 가족애 등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일깨워준다.전쟁이라는 광풍이 일본열도를 휩쓸고 있었다. 2차세계대전이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도 모르는 채 소시민들은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자기 자식마저 죽음으로 내몰았다. 화가로서 부지런히 살아가는 겐의 아버지는 소수의 지배층을 위해 대다수 서민들에게 죽음과 빈곤만을 주는 전쟁에 반대한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국민’(非國民)이라는 꼬리표와 이웃의 따돌림, 그리고 감옥살이였다.또 그의 다섯 아이들도 학교나 공장, 동네에서 비국민 자식으로 손가락질과 누명을 뒤집어쓰기 일쑤였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일거리는 없어지고, 식량난은 가속돼 겐의 가족은 메뚜기를 잡아먹으며 겨우 연명해 간다.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겐이 학교에 가던 중 불덩이 같은 거대한 빛이 눈앞에 뛰어들었다고 느끼는 순간 세상이 깜깜해진다. 겐의 집은 무너져 내렸고, 기둥과 벽에 깔려 있는 아버지, 누이, 동생을 필사적으로 끌어내려고 했지만 불길이 치솟으면서 마침내 이들은 불에 타 죽고, 이 처참한 광경을 겐은 꼼짝없이 목격한다.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 산달이 가까웠던 어머니는 쇼크를 받은 나머지 산기를 느끼고 딸을 출산한다. 죽음의 바이러스가 퍼진 곳에 새 생명이 태어나지만 희망을 주었던 아기는 영양실조로 죽어간다. 모두 전쟁에 기인한 것이다. 이렇듯 이 작품에는 슬프면서도 소름끼치는 평화를 위한 항변이 녹아있다.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극적인 움직임, 내레이션, 노래, 음악, 잘 짜여진 안무, 마임, 문자 슬라이드들과 불길하면서도 무서운 느낌을 주는 음향효과와 조명이 조화를 이루면서 극의 묘미를 살려준다.원작은 만화다. 나카자와 게이지의 만화이 그것. 일본 만화잡지 에 73년부터 연재되었으며, 그후에 10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돼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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