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엔 ‘강세’ 유로화엔 ‘약세’ 보일듯

미 달러화 가치가 다시 약세로 돌아설 태세다. 연초 130엔대에서 움직였던 엔화환율이 120엔 내외로 떨어지고 유로화환율은 ‘1유로=1달러’의 등가시대에 접어들었다.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지난 85년 9월 플라자 합의 이후 한동안 지속됐던 달러화 약세 국면이 재현되는 것인가 하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최근 들어 미 달러화 가치가 다시 약세를 보이는 것은 연초와 마찬가지로 상대국측 요인보다는 미국측에서 제공하는 측면이 강하다. 1/4분기 성장률이 5%로 높게 나왔으나 2/4분기 이후에는 1~2%대의 낮은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주가불안에 따른 역자산 효과(Negative Wealth Effect)가 여전히 미국경기 회복에 부담이 되고 있다.한동안 안전한 국가(Safe-Haven Cou-ntry)로 인식돼 온 미국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미 달러화 약세의 주요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미 달러화 가치의 약세 국면이 아직까지 기조적으로 정착됐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다.무엇보다 미국 이외의 여타 국가도 자국 통화 가치가 강세가 될 만한 뚜렷한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국제외환시장에서는 엔화, 유로화를 비롯한 세계 주요통화에 대해 미 달러화 가치가 일방적으로 약세를 보이기보다 각국의 경제 여건에 따라 달리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일본경제는 경기회복의 관건인 민간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현재 일본국민들의 소비는 정책 당국이 어떤 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좀비경제(Zoombi Economy)란 용어까지 생기고 있다. 재정정책 면에서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각각 GDP의 11%, 132%에 이르고 있어 여유가 없어진 지 오래다.이런 상태에서 일본경제의 아킬레스건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일본정부는 일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 규모를 40조엔으로 밝혔으나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이것보다 최소한 3배가 많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더욱 문제인 것은 재정수지 악화, 산업공동화 등으로 부실채권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Cash Flow)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특히 일본경제가 처한 여건을 감안할 때 현 수준 이상의 엔화강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 못된다. 현재처럼 민간소비가 부진한 상황에서 엔화강세가 지속될 경우 엔고에 따른 디플레 효과로 경기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책 당국자들이 엔화환율의 적정수준을 120~125엔(연초에는 130엔)으로 계속해서 외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유럽경제도 프랑스 조스팽 총리의 패배로 우파로 빠르게 돌아서고 있다. 우파는 경제통합보다 회원국들의 정체성 문제를 고민해 온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좌파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추진해 왔던 유럽경제통합이 지연돼 오히려 유로화 가치회복에는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다만 미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의 회복세는 내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유로존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예상으로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에서 유로랜드에 가입하지 않은 영국과 스웨덴, 덴마크가 내년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004년 5월 말까지는 동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10개국이 가입할 계획이다.반면 현재 미국경기는 저점을 통과하고 회복 국면에 놓여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 실제로 경험적 확률이나 3개월 평균 주가수익률,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가장 신뢰하는 채권시장에서 형성되는 장단기 금리차를 보더라도 일제히 미국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미국경기 회복속도 다소 더딜 듯여러 문제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나 기본적으로 성장주도산업이 있느냐와 직결된다. 이 점에 있어서 부시행정부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첨단기술 업종과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전통적인 제조업간의 균형을 강조하는 융합경제(Fusion Eco-nomy)를 지향하는 산업정책을 펴고 있어 경기 회복 속도는 종전에 비해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결국 일본과 유럽 등 상대국 경제와 각국의 특수한 일정, 미국의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플라자 합의 이후 시대처럼 미 달러화 약세 기조가 정착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앞으로 미 달러화 가치는 엔화에 대해서는 강세를, 유로화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차별화(Decoupling)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원화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외환 당국의 입장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현재 당국은 외환보유고가 1,000억달러를 넘어섬에 따라 추가적립에 따른 만만치 않은 기회비용 부담을 안고 있다. 특히 시중에 과잉 유동성을 조절하기 위해 금리인상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원화절상을 대체 수단으로 고려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외환수급에서 달러공급 과잉상태가 나타날 경우 환율로 그대로 밀어내 반영시킬 가능성이 높다.이런 점을 감안하면 올 들어 대체로 엔화환율에 의해 원화환율이 좌우돼 왔으나 앞으로는 외환수급 요인이 원화환율 변동의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외환수급 요인이 올해 남은 기간과 내년에도 별로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경상거래 측면에서 상품수지 면에서는 어렵게라도 흑자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나 서비스 수지의 적자폭 확대로 경우에 따라 내년에는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일부 국내 전망기관들은 내년에 10억달러 이하의 적자를 기록해 외환위기 이후 지속돼 왔던 흑자시대가 막을 내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결국 관건은 외국인 자금이 얼마나 유입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단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추가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은 지난해보다 좋지 않다. 국내 증시에서 어느 정도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고 있는데다 구조조정이 마무리됨에 따라 선진금융기법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이 누릴 수 있는 이익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 경제정책의 모습이 확실하게 드러나기 전까지 외국인들이 쉽게 우리나라에 투자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앞으로 원/달러 환율은 외환수급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여건이 형성된다 하더라도 원화환율이 크게 하락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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