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염가 운동화…일본 신발시장 ‘평정’

일본에서 180엔이라는 액수가 갖는 돈의 의미는 그야말로 바닥이다. 지하철도 기본운임이 160엔이고, 시내버스는 200엔을 주어야 탈 수 있다. 기껏해야 과자 한 봉지를 사고 나면 그만인 금액이다.하지만 시내버스도 탈 수 없는 소액으로 살 수 있는 초염가 운동화가 일본시장을 흥분시키고 있다. 통신판매 신발전문업체인 ‘히라키’가 2001년 11월에 내놓은 180엔짜리 끈 달린 운동화(스니커)가 거의 1년째 일본열도를 후끈 달궈놓고 있는 화제의 상품이다.과자 한 봉지 값에 불과한 가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스니커는 100% 중국에서 만든 제품이다. 하지만 아무리 중국에서 만들었다 해도 운송비, 관세, 유통마진 등을 감안하면 180엔짜리 스니커는 염가상품이 더 이상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 그 자체를 보여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값이 싸니 엉터리 저질 상품이라고 지레 짐작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이 스니커는 켤레당 1,000엔을 넘는 다른 운동화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바닥이 합성고무로 돼 있어 좀처럼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 것도 일반제품들과 같다. 사이즈는 어린이용에서 왕발용까지 22가지가 나와 있으며 색상도 5가지나 된다.품질은 차이가 없으면서 가격은 압도적으로 저렴한 데 힘입어 이 스니커는 지난 9월 말까지 무려 160만켤레가 팔렸다. 교토 전체인구와 맞먹는 수의 사람들이 빠짐없이 한 켤레씩 사 신은 셈이다. 연간 10만켤레만 나가도 신발메이커들이 함박웃음을 짓는 다른 일반상품들과 비교하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한 양이다.업계 관계자들은 이 스니커의 가격비밀이야말로 제품을 만들어낸 지역과 불가분의 함수관계에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염가신발 통신판매로 폭넓은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히라키는 제품생산지를 공개하지 않고 최고의 기업비밀로 함구하고 있다.그러나 전문가들은 히라키가 중국에서도 해안지역이 아닌 내륙 오지로 들어가 제품을 만들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산업화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인건비가 비싼 해안지역보다 아직 때가 묻지 않고 일거리도 없어 인건비가 싼 내륙으로 파고들어 제품생산을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제품에 따라 하청을 주는 공장을 바꿀지언정 전체적으로는 일손이 넘치고 노동력이 값싼 중국 내륙에서 물건을 만들어 이를 일본시장에 융단폭격 식으로 퍼붓고 있다는 설명이다.값이 하도 싸다 보니 180엔 스니커는 적지 않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고객들 중에는 5가지 색상의 제품을 모두 갖추고 매일 갈아 신는 패션족들도 생겨났다. 히라키에서 스니커를 대량 구입한 후 여기에 고액의 마진을 얹어 50엔씩에 파는 중간상들이 극성을 부리기도 했다.이 때문에 히라키는 고객들이 부당한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1인당 구매량을 30켤레로 제한하는 조치를 부랴부랴 동원해야 했다. 20대 후반부터 40대 주부들에게 특히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스니커는 일본언론으로부터 2002년 히트상품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그러나 고베에 본사를 둔 히라키는 180엔 스니커에 머무르지 않고 숙녀용 부츠시장에서 또 한 번 돌풍을 준비하고 있다. 역시 중국에서 만들어 수입한 후 켤레당 980엔에 팔고 있는 부츠는 겉 재질이 합성피혁으로 돼 있으며 디자인, 품질에서 수천엔짜리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겨울철 성수기의 시장반응이 주목되고 있다.히라키는 이와 함께 스니커에서도 90엔짜리 신제품을 조만간 내놓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어떤 품질의 제품이 나올지 벌써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