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CE제도’·소니 ‘장인정신’·히타치 ‘실패보고서’ 통해 품질경영 실천
남대일·LG경제연구원 연구원‘실패학 종주국’ 일본 1등 기업들은 실패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19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시작된 일본의 불황이 벌써 10년째다. 재정, 금융 등 경기 전반에 드리운 디플레이션의 위기에서 쉽게 벗어날 모양새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경제에 관해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실패를 통해 성공을 배운다’는 이른바 ‘실패학’ 예찬론자들이다. 이들은 일본이 전후에 한동안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서양의 성공을 모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스스로 도전하고 실패를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이룩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바꾸어 말하면 현재 일본의 불황을 극복하는 유일한 해법은 ‘실패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도요타, 소니, 히타치 등과 같은 일본 1등 기업들을 통해 실패학 종주국 일본 기업들의 실패 극복 사례를 알아본다.도요타 / 실패 극복은 인재양성이 최선도요타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잘나가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그러나 도요타가 탄탄대로만 달려온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성공은 과거의 뼈아픈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1957년 도요타가 처음 미국시장에 진출할 당시 상품전시회용 샘플로 수출된 2대의 자동차는 베벌리힐스의 언덕을 넘는데도 실패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도 낼 수 없었다고 한다.도요타가 이 같은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최우선 목표로 잡은 것이 바로 사람이다. 세계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차량 컨셉부터 전사적 품질관리를 담당할 인적자원을 성공의 핵심열쇠로 파악한 것이다. 이를 위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현장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갈 수 있는 인재양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도요타가 운영하고 있는 최고기술자(Chief EngineerㆍCE)제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CE는 ‘어떤 차를 만들 것인가’ 하는 컨셉에 기초해 설계자, 디자이너, 엔지니어 등의 부서 직원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도요타는 CE들이 차량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많은 권한을 이양했다. 또 혁신적인 도전을 시도하다 실패한 경우는 과감한 면책특권도 부여했다. 실패를 성장의 발판으로 여기고 이를 위해 인재양성에 주력한 도요타는 불황이 계속된 지난 2001회계연도에도 82억달러의 영업이익을 내 전년 대비 38.3%의 견실한 성장을 이룩했다.소니 / 실패 극복 원칙은 ‘비전’일본 제1의 기업 소니의 경우 베타멕스와 DVD 표준규격 싸움에서 이미 두 번이나 패배한 경험을 갖고 있지만 소니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로 승부해야 한다는 장인정신만은 결코 버리지 않았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지만 이와 같은 원칙이 있었기에 결국 트리니트론이나 컴팩디스크 같은 획기적인 성공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트리니트론의 실패와 성공은 소니의 장인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1960년대 초, 컬러TV에 대한 시장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소니는 독자적인 제품을 내놓겠다는 계획을 선언했다. 크로마트론이라는 기술을 활용해 2년에 걸쳐 온갖 실패를 거듭한 끝에 크로마트론 제품이 완성됐지만 소비자가격이 20만엔이라는 고가였다. 여기에다 실제로 TV의 생산원가는 무려 40만엔이 넘었다고 한다.회사가 거의 파산한 1966년 가을, 당시 회장이었던 이부카는 결국 크로마트론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소니는 이 방식을 버리는 대신 다른 신기술을 찾겠다고 선언해 장인정신에 대한 신념은 포기하지 않았다. 개발에 종사한 엔지니어들도 지난 5년간의 실패를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새롭게 신기술을 위한 연구에 몰두해 결국 1968년 하나로 3개의 빔을 쏘는 전자총과 틈새격자 방식이라는 신기술을 가진 12인치 트리니트론을 탄생시킨다. 기술자들이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소니의 장인정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히타치 / 실패보고서 제도로 최고품질 지향1910년에 창업한 히타치가 오늘날 1,000개가 넘는 자회사와 30만명이 넘는 종업원을 거느린 세계 굴지의 전기제조업체가 된 비법은 무엇일까. 히타치 사람들은 5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실패보고서’를 으뜸으로 든다.제조업 기반인 히타치가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최고의 품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잦은 사고와 높은 불량률로 처음에는 적잖은 고전을 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1950년 회사의 고문이었던 바바 구메오가 실패보고서 제도를 만들었다. 어느 조직이나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소한 실수나 징후를 미리 발견해 보고서로 남겨놓는 것이다.이 제도는 모든 직원들이 작업공정 가운데 사소한 실패(실수)가 일어나면 즉시 ‘검사표’라는 보고서에 실패가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작성해 제출하는 것이다. 제출된 보고서는 실패 유형별로 분류, 실패 경험 분석회의에 보고 된다. 이 회의에서는 실패 예방법을 개발, 유포하고 추후 사용도를 높이기 위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으로 최종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점은 첫 번째 실패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이나 불이익도 없다는 것이다.이는 해당 근로자들이 실패를 두려움 없이 성실하게 보고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같은 실패가 반복될 경우는 해당 사업부를 중점관리사업부로 지정해 엄하게 감독해 같은 실수의 재발을 막는 데 주력했다. 히타치가 현재까지 이 같은 회의를 통해 실패원인을 규명하고 예방법을 개발, 생산현장의 노하우 개선으로 연결한 실적은 5,500여건에 이른다고 한다.좋은실패 vs 나쁜실패‘도전성 실패’는 적극 장려해야실패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실패를 거울삼아 탁월한 창조와 성공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실패는 우리가 반드시 겪어야 할 ‘좋은 실패’다. 반면 배울 것이 없는 단순한 부주의나 오판 때문에 반복되는 실패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분명 ‘나쁜 실패’다.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실패다.올해 노벨화학상을 받아 일본 열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다나카 고이치 시마즈제작소 주임. 노벨상 수상 이후에 그가 보여준 겸손함과 장인으로서의 긍지는 많은 일본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놀라운 점은 자신의 발견 역시 그가 1985년 겪은 우연한 실패가 연구의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고 고백한 것이다.그러나 이와 같은 실패가 그냥 우연히 생긴 것이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실패학의 핵심은 놀랄 만한 기쁨이 있는 마지막 하나의 성공을 위해 존재했던 수많은 절망뿐인 실패에 있는 것이다.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실패는 분명 기업에서 장려해야 할 좋은 실패다.반면 일본의 대표적인 유제품 기업인 유키지루시는 ‘나쁜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 제품관리 소홀로 이 회사의 우유를 먹은 1만3,000여명이 집단 식중독에 걸리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문제는 그다음. 1년 6개월이 지난 2001년 또다시 일본 정부가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일본산 쇠고기를 제값에 사들이는 제도를 악용, 호주산 쇠고기를 일본산인 것처럼 속여 팔아 이익을 챙기다 들킨 것이다. 똑같은 실패라도 대충 넘겨 다음에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면 그 실패는 용서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