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경제특구로 중국 시장경제 선도

최근 국회에서 경제자유구역(경제특구)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경제특구가 곧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인천 등 관련 지방에서는 벌써부터 경제특구 바람이 일고 있다.경제특구는 외국기업들에 최적의 경영여건을 조성, 외국자본을 끌어들이자는 취지로 설정된 특정지역. 경제특구에 관한 한 중국은 우리나라의 선배라고 할 만하다. 중국은 지난 80년대 초 이미 경제특구를 설립,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중 광둥성 선전은 중국을 대표하는 특구이기도 하다.경제특구 지정 20여년이 지난 선전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최근 선전을 다녀왔다.선전의 대표적인 가전업체 콩카에서 기술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피터 왕씨(27). 그는 홍콩에서 태어나 홍콩중문대학을 졸업한 홍콩인이다. 그는 지난해 홍콩의 직장을 그만두고 선전으로 건너왔다. 취직을 위해서다.“홍콩보다 선전이 낫습니다. 급여수준은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전의 물가수준이 낮아 더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자녀교육 등 생활여건도 좋고요.”피터 왕의 사례는 요즘 선전과 홍콩 사이에 일고 있는 ‘역이민’의 실상을 보여준다.예전과 달리 홍콩인이 중국대륙 선전으로 이주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특구 1호 선전은 이제 홍콩의 인재를 끌어들일 만큼 급성장했다. 최근 수년간 홍콩경제가 위축되면서 더 많은 홍콩 젊은이들이 선전을 찾고 있다는 게 현지 주재원들의 설명이다.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선전은 홍콩 옆에 붙어 있는 초라한 작은 마을이었다. 1979년 어느날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은 선전을 중국 제1호 특구로 낙점했다. 선전에는 장벽이 둘러싸였고, 거대한 자본주의 경제 실험이 시작됐다. 덩샤오핑의 거대한 도박이었다. 지금도 선전시내 한복판에 걸린 덩샤오핑의 거대한 초상화가 그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홍콩에서 ‘역이민’오는 사람들 많아20년이 지난 현재 선전은 홍콩 부럽지 않는 중국 최고의 부자도시로 성장했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금융, 무역, 정보기술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도시로 급성장하고 있다. 선전이 성장하면서 일각에서는 “이제 홍콩과 선전을 통합할 때가 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선전은 광둥성 등 이웃도시의 발전을 재촉했다. 광저우, 동관, 순더 등 주장삼각주 주요도시가 선전에 자극받아 동반 발전하게 된 것이다.선전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쯤 달려 도착한 순더의 전자레인지 전문업체인 거란스. 공장에 들어가니 탁 트인 공간에 300~400명쯤 되는 직원들이 생산라인에 앉아 일하고 있었다. 라인에는 전자레인지가 악보의 음표가 흐르듯 이어지고 있었다.중국을 ‘세계공장’이라고 한다면 거란스야말로 세계공장을 대표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지난해 1,500만대의 전자레인지를 생산했다. 하루평균 약 4만대를 생산한 셈이다. 세계시장점유율 약 34%. 엄청난 수치다. 전세계 부엌의 전자레인지 3대 중 1대에 ‘거란스’ 상표가 붙어있는 것이다. 선전은 세계공장의 원동력인 셈이다.경제특구 선전은 이웃도시에 개혁개방체제의 모델을 제공하기도 했다. 외국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더 많은 외국자본 및 기술을 끌어들였다.동관에 자리잡은 삼성전기. 이 회사는 동관 시정부의 지원을 톡톡히 받고 있다. 시정부는 삼성전기를 유치하기 위해 10개동의 공장을 무상으로 지어줬다.파격적인 세금우대 조치도 받았다. 지난 92년 사업을 시작, 96년 누적 흑자를 기록한 삼성전기는 흑자실현 후 3년간 법인세를 내지 않았다. 2000년, 2001년에는 반세혜택을 받아 정상 법인세의 절반인 7.5%만 냈다. 올해는 수출기업이란 이유로 15%인 법인세를 10%로 깎아주었다.동관 시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유치정책이 동관을 전세계 컴퓨터 부품의 70%를 생산하는 ‘세계공단’으로 만들었다. 이것 역시 선전의 모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선전 특구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국내 기업의 기술발전으로 이어졌다. 외국기술을 베끼는 데서 벗어나 자체기술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는 선전의 기술발전을 대변하고 있다.지난 88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헤 약 31억달러의 네트워크장비를 해외에 수출했다.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국가는 물론 미국, 독일, 한국 등 IT선진국으로도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토종 중국 기업인 이 회사의 성공비결은 어디에 있을까.“20여년에 걸친 선전개발의 결실입니다.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기술 본지화(토착화)를 이뤘다는 얘기지요. 우리는 전체매출액의 10%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습니다.”(야오용방 외사업무 주임)20여년 동안 ‘자본주의 실험’을 거쳐오면서 선전 비즈니스 역시 자본주의식으로 바뀌었다. 특구가 경제인들의 심리를 바꾼 것이다.“선전 비즈니스맨들은 일단 계약을 했으면 손해를 보더라도 그 계약을 지킵니다. 오랫동안 홍콩과 거래를 하면서 서방국가의 비즈니스를 받아들인 것이지요.선전이 중국의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특징입니다.” 광둥성 대외무역경제합작청의 웨이지엔 총처장이 말하는 선전의 비즈니스 특징이다. 홍콩의 작은 이웃마을이었던 선전은 이제 중국의 대표경제특구로서 대륙의 시장경제를 선도하고 있다.wood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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