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용품 사업 승부수 “적중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초일류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성공의 비결로 가장 흔히 내세우는 키워드는 ‘선택과 집중’이다. 동원할 수 있는 역량과 자원에는 한계가 있으니 기업이 처한 상황과 능력을 감안해 최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 전력투구한 것이 성공의 씨앗이 됐다는 논리다.여기에는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시장판도가 하루가 다르게 숨막히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실력과 분수를 무시한 채 허영과 환상만 좇다가는 간판을 내려야 할지 모른다는 경고메시지도 담겨 있다.‘선택과 집중’에 담긴 메시지는, 그러나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 때 새겨들어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하기 쉬운 일이라고 또는 잘 만들 수 있는 상품이라고 기업과 최고경영자가 세상변화를 외면한 채 한우물만 고집하다가는 어느새 경쟁자에게 덜미를 잡힐 수 있다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해 플레이하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적의 출현과 더 넓은 무대 진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기업과 경영자들의 숙명이다.이 같은 점에서 볼 때 스포츠용품전문점들 중 일본에서 매출 랭킹 2위를 달리는 ‘제비오’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본 틀을 바탕으로 시장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승리의 방정식을 엮어내 주목을 끄는 업체다.지난 73년 ‘선 수츠’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회사의 초기 주력상품은 신사복이었다. 하지만 시장의 환경변화에 맞춰 79년 캐주얼의류로 사업영역을 넓힌 데 이어 83년에는 교외형 스포츠용품 사업으로 승부수를 던지면서 이 회사는 비즈니스 컬러를 과감히 바꿔왔다.회사설립 후 10년째인 82년의 경우 전체매출에서 차지하는 신사복의 비중은 60%를 넘었으며 캐주얼의류는 30% 선에 그쳤다. 하지만 90년에는 캐주얼의류의 비중이 절반을 넘은 데 이어 나머지 50%를 신사복과 스포츠의류, 용품이 차지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93년 스포츠의류, 용품이 캐주얼의류를 앞지르고 주력품목으로 부상하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전체매출의 85% 이상을 올리는 최대 효자상품으로 자리를 굳혔다.신사복전문점으로 출발한 의류업체가 만 30년이 안된 기간에 캐주얼을 거쳐 스포츠용품으로 주력상품의 얼굴을 바꾸는 ‘카멜레온’식 경영으로 성장가도를 달려온 것이다.다른 기업들도 사정은 다를 바 없지만 일본 전역에 약 80개 점포를 열어 놓고 2002년 3월결산에서 847억엔의 매출과 58억엔의 경상이익을 올린 제비오의 변신에는 경영진의 끊임없는 노력과 결단이 밑거름이 됐다.“신사복이건 캐주얼이건 최근 10년 사이에 시장 포화상태가 돼버렸습니다. 기존 업태에 매달리면서 경쟁업체들과 싸워 보려 해도 소모전이 될 것은 분명한 이치지요. 이럴 바에는 경쟁이 덜 치열한 새로운 시장으로 발길을 옮겨 그곳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망시장을 한 발 앞서 캐내고 먼저 깃발을 꽂는 것이지요.”성장시장 버리고 미개척시장 진출이 회사의 모로하시 데이조 사장은 “제비오의 두 차례 변신에서 공통점을 찾자면 경쟁이 격화되는 성장시장을 버리고 미개척 시장으로 재빨리 차를 바꿔 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고객이 몰리고 상품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만족하기보다 위기의식을 갖고 싸움이 덜한 곳을 찾아 자기만의 시장을 새로 만들어나갔다는 주장이다.모로하시 사장은 제비오의 전신인 ‘선 수츠’를 차리기 전 28세(1962년) 때 소규모 양복점으로 사업에 첫 승부수를 던졌다. 양복지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밑천으로 던진 회심의 카드였다. 양복점이 잘돼 70년에는 빌딩도 마련하고 유명 해외브랜드 신사복도 제법 많이 갖다 팔았다. 그러나 장사방식이 문제였다. 월부 옷장사를 하다 보니 매출은 커졌어도 항상 돈에 쪼들렸다.연간매출은 3억엔에 달했지만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8,000만엔이나 됐다. 어느새 자금회전이 삐걱거리더니 도산 위기가 닥쳐왔다. 모로하시 사장은 할 수 없이 최고 95%를 깎아 파는 초대형 할인판매로 재고를 처분하고 위기를 탈출하려 했다. 2주 동안의 할인행사에서 무려 2억엔의 현금이 들어 왔다. 이때 그는 절실히 느끼고 또 느꼈다.“아무리 장사가 잘된다 해도 외상만 무턱대고 많이 깔리면 소용이 없다. 현금회전에 걱정이 없는 사업을 해야 한다.”모로하시 사장은 이와 함께 신사복 장사의 전망에 대해서도 깊은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일본의 전체인구가 1억명을 넘는다지만 이중 20~60세의 남성 중 화이트칼라 고객만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은 언제인가 한계를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그는 새로운 스타일의 장사에 도전하기로 하고 지상 7층, 지하 1층의 빌딩에 신사복과 캐주얼, 스키용품 매장을 갖춘 복합 대형점을 79년 개설했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연령과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두 가지 분야의 장사에 모든 힘을 쏟기로 하고, 캐주얼과 스포츠용품을 승부처로 삼았다.그당시 일본 신사복업계는 아오야마, 아오키 등으로 대표되는 교외형 염가할인점들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점포를 파죽지세로 늘리고 있었다. 일본 열도에 들어선 염가양복전문점 매장은 벌써 3,000점을 헤아리고 있었으며 이는 신사복시장의 적정 수준(약 2,000점)을 거의 절반이나 웃도는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캐주얼의류 시장은 성장궤도 진입을 눈앞에 둔 가운데 소규모 자영점과 대형 종합 슈퍼마켓의 의류코너가 고객을 양분하고 있었다.지난 87년 경쟁이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았던 캐주얼 시장으로 눈을 돌린 제비오는 신사복 사업의 비중을 계속 낮추는 한편 교외형 체인점 방식으로 영캐주얼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판단은 적중했다. 100~150평 안팎의 규모로 들어선 제비오의 영캐주얼 매장은 고객들의 폭발적 인기를 끌며 한창때는 연간매출이 2억5,000만엔을 넘는 점포도 속출했다.그러나 캐주얼 사업도 96년의 95개 점포를 피크로 또 한 번 방향을 선회했다. 모로하시 사장은 유니쿠로 등 대형 염가 캐주얼 전문 메이커들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질 것이라고 판단, 또 하나의 미개척시장인 스포츠용품쪽으로 빠져나가기로 했다.벼가 무르익은 황금 벌판이 가득 펼쳐져 있다고 해도 역풍이 몰려오기 전에 자신을 보호하는 카멜레온 경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제비오는 기존 스포츠용품전문점들의 허를 찌르는 파격적 스타일로 시장에 돌풍을 몰고 왔다. 소비자들이 접해보지 못했던 단일면적 1,000평 규모의 초대형점을 미야기현 센다이시 외곽에 개설한 데 이어 발군의 상품력과 가격경쟁력으로 단숨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일본 전역의 약 1만개에 달하는 스포츠용품점 중 약 90%가 구멍가게 수준을 면치 못한 상황에서 초현대식 매장과 완벽한 상품으로 무장한 제비오의 등장은 빅뱅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2002년 3월 결산에서 이 회사는 주주자본 비율이 약 70%를 기록했을 정도로 강인한 재무체질을 갖고 있다. 결산기 말 현재의 현금잔액은 연간매출의 30%를 넘을 정도다. 풍부한 캐시플로가 뒤를 받쳐주는 이상 점포확장과 정리작업에서 돈 걱정 없이 신속히 대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초일류 기업 못지않은 캐시플로의 두 가지 비결은 철저한 무차입경영과 속전속결의 재고관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사업을 처음 시작한 후 도산 위기에 몰렸다 간신히 벗어난 모로하시 사장이 자신의 체험으로 터득한 교훈에서 나온 것임은 물론이다.yangsd@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