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게임·쇼핑몰’살기 위해 뭐든지 한다

‘나 수출역군 맞아?’ 극장, 베이커리, 하우스맥주, 핸즈프리 판매 등. 70~80년대 수출 첨병으로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현대종합상사, 삼성물산, LG상사, SK글로벌 등 4대그룹 종합상사들의 2000년대 자화상이다. 이제는 이런 사업들이라도 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다.종합상사들이 신사업에 목을 매는 것은 수출이 더 이상 돈벌이가 안되기 때문이다. 종합상사의 수출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올 상반기 국내 종합상사의 총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가 감소한 282억5,000만달러. 이는 전체수출의 37.9%에 불과한 수치다.지난 90년 38.1%를 기록한 이후 최저수준이다. 또 종합상사에 수출을 맡기는 일반업체도 95년 5,710개에서 2001년 4,025개로 29.5%가 줄었다. 게다가 수출마진율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종합상사 관계자들은 “대행수출의 경우 마진율이 0.1~0.3% 수준으로, 수출로는 도저히 먹고 살기 힘들다”고 비명을 지른다.이러다 보니 종합상사들은 그야말로‘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왕년의 수출역군 현대종합상사, SK글로벌, 삼성물산, LG상사 등 4대그룹 종합상사들의 생존전략을 알아본다.현대종합상사종합유통·외식업체 꿈꿔골프웨어, 패션브랜드, 외식체인점, 광촉매 프랜차이즈 등. 최근 현대종합상사가 시작한 사업이다. 마치 전문유통업체를 연상시킬 정도다. 이미 지난 8월 신설한 국내 사업부를 종합 유통 부서로 전환한다는 내부계획까지 마련한 상태다.대외적으로도 브랜드 로열티사업, 패션브랜드 수입판매사업, 홈쇼핑사업, 엔터테인먼트사업, 광촉매 시공사업 등 5개 부문에 걸쳐 신규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에는 국내 종합상사로는 최초로 하우스맥주전문점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든다고 밝혔다.수출상사의 위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현대 입장에서는 이제 독자생존의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현대 관계자는 “과거 현대 계열사 물량을 대행하던 단순 수출로는 이제 가능성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실제 이 회사의 총매출 중 수출비중은 85~90%. 그것도 대부분이 대행수출로 실제 수익은 매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편. 2001년 27조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2,36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따라서 향후 자사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양한 분야에서 직접 사업주체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2004년까지 내수비중을 3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현재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패션브랜드부문. 국내 패션회사인 아시아메리카와 A&H라는 합작회사를 설립, 내년 초 골프웨어로 유명한 바비존슨, 독일의 명품브랜드 욥(JOOP), 스트레네스(STRENESSE) 등 4개 명품 패션브랜드를 선보일 예정이다.자사의 탄탄한 해외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홈쇼핑사업. 해외 지사망을 이용, 세계 각국의 히트상품을 찾아서 국내 홈쇼핑업체에 납품한다는 것.이미 일부 제품들을 현대홈쇼핑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영화를 동남아와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영상사업팀 관계자는 “이미 운영하고 있는 씨네플렉스를 통하면 영화배급이나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며 “오히려 해외수출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광촉매 시공 프랜차이즈사업도 눈에 띈다. 광촉매는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실내외 장식재, 타일, 유리, 자동차, 정수기, 공기정화기 등 환경관련산업 전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친환경개선제로 인기를 끌고 있다. 빛을 받으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유해한 물질들을 무해한 물질로 변화시키는 친환경적인 소재로 오염된 실내외 공기정화, 항균, 냄새제거, 오염방지에 탁월한 기능을 발휘한다.바이오 벤처 내츄러바이오텍과 함께 지난 9월부터 프랜차이즈사업을 벌여 이미 50여개의 가맹점을 개설한 상태. 향후 이 체인점을 환경관련 상품을 모두 파는 종합환경대리점으로 전환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현대자동차 대리점망을 활용해 자동차관련 환경친화적인 제품들도 판매할 계획이다.이밖에도 ‘HYUNDAI’ ‘現代’ 등의 영어, 한자로 표기된 ‘현대’ 브랜드를 제3국에 판매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즉 중국과 국내 중소업체들이 해외에 진출할 경우 현대 브랜드를 다는 조건으로 커미션을 받는 것. 올해 중동, 동유럽에 진출하는 기업으로부터 약 4,000만달러의 매출실적을 올렸고, 내년에는 유럽, 미주쪽으로 사업을 확대해 7,000만달러의 실적을 예상하고 있다.삼성물산유망벤처 발굴 ‘내수ㆍ수출’ 일석이조 꾀해“담당자가 해외출장 중입니다.” “외근 중인데 휴대전화로 연락해 보세요.” 삼성물산의 신사업 담당부서인 애니존사업팀이나 바이오사업팀에 전화를 걸면 십중팔구는 이런 답변을 듣는다. 이들은 같은 부서원끼리도 서로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로 바쁘다.하지만 실제 업무를 들여다보면 과거 석유나 철강 같은 굵직굵직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세계를 누비던 수출역군의 모습을 찾기란 힘들다. 대신 이들은 국내외 기술력 있는 벤처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제품의 개발부터 마케팅, 유통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한다.이렇게 탄생한 대표적인 제품이 지난 10월 출시한 ‘애니존’이다. 이 제품은 이어폰 속에 마이크를 장착한 새로운 개념의 핸즈프리. 음성이 공기를 통해 외부 마이크에 전달되는 기존 핸즈프리와 달리 이어폰 속의 마이크로 직접 전달되므로 공사현장, 지하철 등 시끄러운 지역에서도 원활한 통화가 가능하다.삼성물산과 국내 벤처기업이 공동개발한 ‘애니존’은 앞으로 내수는 물론 수출까지 노린다는 점에서 종합상사의 정보력, 벤처의 기술력, 상사의 글로벌 네트워크 등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신규사업 모델인 셈.현재 삼성몰에서 월 1만대 가량 팔리고 있지만 가능성은 엄청나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 전 세계 핸즈프리 시장규모가 13억달러에 달하고 여기에다 텔레매틱스, 무전기, 보청기, 군사용 통신장비 등 응용기술 시장규모가 총 100억달러에 이르는 만큼 회사에서 거는 기대도 남다르다.‘애니존’ 사업에서 알 수 있듯이 삼성물산의 신사업 전략은 국내외 유망 벤처의 기술력을 미리 발굴해 전략적 제휴를 맺는 것. 기술력 있는 벤처의 경우 대부분 자금과 마케팅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리 판권을 가져와 전략적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삼성물산이 최근 주력하고 있는 바이오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물산은 현재 국내외 10여개 유망 바이오벤처에 대한 직접 투자는 물론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해외마케팅까지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의료기기메이커인 ADI사에서 개발한 유방암진단기기(AVERA)의 아시아 상권을 확보했다.이밖에 ‘브랜드’ 수출도 삼성물산이 기대하고 있는 신사업 중 하나다. CDR제조업체인 대만 라이텍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100만달러를 투자했다.라이텍사에서 생산된 CDR를 ‘삼성’ 브랜드로 유럽, 동구, 중동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미주지역에도 라이텍사와 공동으로 판매법인을 설립하고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삼성물산의 2001년 매출액은 33조원. 이중 88%가 상사부문에서 올렸지만 대행매출이 77%로 수익성이 약하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신사업진출을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LG상사네트워크·게임·항공사업에 승부수LG상사의 임직원은 1,000여명. 70~80년대 3,000여명의 상사맨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시절과 비교하면 LG상사의 위상변화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인원이 대폭 줄어든 것은 IMF 위기를 거치면서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활로 찾기에 적극 나섰기 때문. 무역부문의 산업용 원자재, 에너지, 플랜트 수출, 패션사업, 농축산물유통 등 5개 부문을 ‘집중육성사업’으로 정하고 구조조정에 나선 것.그러나 최근 국내 종합상사의 입지가 더욱 약해지면서 다양한 수익원 창출을 위해 디지털 영상사업, 항공사업, 네트워크, 로직스 등 4개의 신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이는 LG상사 전체매출액의 60%를 IT부문에서 올리고 있는 실정을 감안한 것으로 IT 비즈니스가 강화되는 21세기 트렌드를 신사업에 반영한 결과다.LG상사의 무역I부문과 무역Ⅱ부문, 패션부문, 경영지원부문 등 4개의 사업부 중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곳은 무역Ⅱ부문이 맡고 있다. 무역상사만의 차별화된 이점을 살려 신사업을 펼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LG상사는 세계 각지에 깔린 네트워크와 정보력을 앞세워 주로 해외 선발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신사업에 뛰어들고 있다.우선 2000년 7월부터 캐논카메라를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급격히 커지기 직전 캐논사와 제휴를 맺은 덕택에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LG상사는 앞으로 카메라와 캠코더를 비롯한 각종 영상기기를 국내에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상관련사업 참여도 검토 중이다.또 올 하반기부터 제주민항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체코 민간항공사 LZ 에어로노티컬사리사 L610G 민항기의 제주민항기 선정을 위해 뛰고 있다.LG상사는 이미 지난 93년부터 인명구조와 산불진압 등을 하는 러시아의 ‘카모프’라는 다목적 헬리콥터 40여대를 수입해 판매한 경험이 있다.지난 2000년 상반기부터 시작한 케이블모뎀과 스토리지 장비, 무선랜 장비 공급사업도 기대를 걸고 있는 신사업 중 하나다. 자이오텍, 인텔 등의 해외업체와 제휴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정보량의 빠른 증가로 인한 대용량 스토리지 시장의 성장성을 내다보고 뛰어들었다. 현재 스토리지 시장규모는 약 1조원으로 1조8,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서버시장에 비해 작지만 2003년 이후에는 2조원대 시장으로 커질 것이라는 게 회사 관계자의 전망이다.이밖에 최근 소니와 제휴를 맺고 ‘플레이스테이션2’를 판매하며 게임산업에도 진출했다. 오규식 경영기획팀 상무는 “과거 전산업분야 수출마케팅을 담당하는 종합상사로서의 사업구조에서 탈피해 수출은 제조업체와 차별화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플랜트 분야 등으로 집중하겠다”며 “산업용 원자재와 IT제품 등의 수입유통 및 서비스 제공과 패션사업의 내수유통 등 유통전문 기업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SK글로벌패션 중심 전용회선망ㆍ인터넷쇼핑몰 역점“종합상사가 아닌 마케팅컴퍼니로 불러주세요.”SK글로벌 관계자들은 ‘종합상사’라는 용어를 부담스러워한다. 지난 99년 SK유통, 2000년 SK에너지판매를 합병한 뒤 무역중심의 종합상사에서 2002년 매출 18조원(순손실 1,300억원)의 종합마케팅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실제로 회사 매출액 중 무역부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40% 정도로 줄어들었다. SK글로벌은 상사부문이 위축되면서 그간 신규사업 진출에 회사역량을 집중해 왔다.올해 경영방침도 ‘고수익 구조전환을 위한 신규사업의 빠른 전개 및 개발역량의 강화’에 두었을 정도.SK글로벌의 신사업 진출 원칙은 간단명료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통합네트워크사업과 더불어 종합상사로서 축적해 온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는 사업에 진출하는 것.현재 SK글로벌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신사업은 패션부문. 지난 10월 275억원을 들여 세계물산을 인수한 뒤 12월 초 미국 토털 패션브랜드 토미 힐피거사의 스포츠, 진, 아동복 등을 들여와 2003년 하반기부터 백화점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이미 (주)선경의 카스피 등의 브랜드로 직물 및 의류 수출사업을 해온데다 2000년 하반기 아이겐포스트라는 유통매장(현재 16개)을 여는 등 패션사업에 공을 쏟아왔다. 지난해 패션부문 매출액은 1,300억원.이와 함께 B2B사업 진출도 새로운 생존전략의 하나다. 그 일환으로 지난 11월 초 두루넷 전용회선망을 인수했다.SK글로벌은 2003년까지 2,000억원의 시설투자비를 들여 2003년 1,400억원에서 2007년까지 5년간 3,1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 두루넷 직원 140여명과 SK글로벌 직원 등 150여명으로 4개 팀, 8개 지사를 설립했다.또 무선인터넷 사용자가 단말기를 보면서 자기가 원하는 전화번호를 메뉴 또는 검색을 통해 알아내는 ‘스타스타 114서비스사업’(모바일 콘텐츠사업)과 종합쇼핑브랜드인 SK디투디와 자회사로 해외 쇼핑사업자인 위즈위드를 통합한 SK디투디(www.skdtod.com)도 생존을 위한 고육책 중의 하나다.물론 상사의 어려움이 계속되면서 시작했던 정보통신기기 전문 유통사업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휴대전화 단말기, 이동통신 주변기기, 무선 데이터통신 단말기 등 각종 통신기기 및 액서서리 등을 전국 유통망에 제공하고 있다.아울러 SK유통 시절부터 해왔던 단말기 AS 및 중고품 수출 등도 상사부문을 대체할 수익모델로 꼽고 있다.돋보기 / 대우·효성·쌍용대우·효성·쌍용 ‘전문무역회사’ 추진대우인터내셔널과 효성, 쌍용 등 소위 4대그룹 종합상사에 비해 규모가 작은 상사들은 신사업을 찾기보다 상사 본연의 업무인 수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자금과 조직력이 딸린다는 약점에 기인한 것도 있지만 IMF 직후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외형 불리기’라는 이전 관행을 탈피하고 철저한 수익위주의 ‘전문무역회사’로의 전환을 서둘렀기 때문.대우인터내셔널은 2001년 6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7대 종합상사 가운데 5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현재 워크아웃 상태이기 때문에 워크아웃 졸업을 통한 경영정상화를 급선무로 여기고 있는 상황. 현재 매출액의 95%가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당분간 경영상태가 불량한 해외법인과 투자법인의 정상화에 전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주)효성 무역부문(전 효성물산)은 IMF 이후 수입을 중단하고 100% 수출로 먹고사는 수출전문기업으로 거듭났다. 수출도 철강, 화학, 기계, 섬유 등 비교적 사고위험이 낮은 업종만 골라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000여명에 달했던 인원이 200여명으로 줄어들었고, 매출액도 연간 20억달러에서 6억5,000만달러로 줄었다. 그러나 대행수출이 전혀 없어 수익성은 좋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주)쌍용은 IMF 이후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900여명의 직원이 3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그룹사 대행물량이 약 50%에서 5%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또 수출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무역전문회사로의 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01년 1,000여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올해 5년 만에 흑자전환을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이들 3사도 향후 생존전략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출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다 메이저업체들처럼 과감하게 신사업에 진출할 힘도 없어 향후 수익모델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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