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비용 미국보다 3배 높아 채산성 저하…기본원칙 준수가 투자관건 교훈
포스코 광양제철소에는 연산 200만t 규모의 제2기 미니밀 설비가 창고에서 5년째 잠자고 있다. 이 설비는 97~98년 약 5,200억원(공사비 2,000억원 포함)을 들여 설치한 것. 거액을 들여 도입한 설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가동한 적이 없는 골칫덩어리다. 2000년 중국 철강회사에 매각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따라서 철강업계는 물론 회사 내에서도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꼽힌다.미니밀은 연산 100만~200만t의 소규모 철강공장을 일컫는 것.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생산하는 용광로 공법과는 달리 전기로 고철을 녹여 열연코일을 생산하는 방식이다.포스코가 전기로 방식의 제2 미니밀 공장을 짓기 시작한 것은 97년 10월. 1995년 1월에 착공해 1996년 10월에 준공한 제1 미니밀 공장이 가동 중이었다. 포스코 관계자는 “당시 철강경기가 좋은데다 전기로 공법이 신기술로 인정받고 있었기에 서둘러 제2 미니밀 공장 설립에 착수했다”고 말했다.사실 포스코가 미니밀을 도입했을 당시만 해도 세계철강업계에 전기로 형태의 미니밀 붐이 유행처럼 일었다. 미니밀의 장점은 투자비용이 적게 들고 제품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아 납기를 단축할 수 있다는 것. 여기에다 전기를 주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수요에 따라 생산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때문에 공장문을 닫기 전에는 가동을 중단할 수 없는 용광로와 상호보완 효과가 있다는 것.포스코는 미니밀 공장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미니밀 공장을 설립하고 1997년 베네수엘라에 고철 대신 미니밀 원료로 사용하는 HBI(Hot Briquetted Iron)를 생산하는 포스벤이라는 합작회사를 세우는 등 투자에 박차를 가했다.왜 실패했나그러나 제2 미니밀 공장 착공 직후인 97년 12월. IMF라는 예상치 못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포스코의 예측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세계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당초 세계적으로 철강공급 부족을 걱정했던 상황과는 180도 달라져 철강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던 것이다.게다가 주요수출시장인 아시아지역의 극심한 불황으로 철강수출 또한 크게 악화됐다. 먼저 준공한 미니밀 1기마저 감산조업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한 것. 만약 제2 미니밀과 함께 진행되던 5고로(용광로)마저 준공되면 늘어난 철강제품을 소화할 시장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됐다.이런 와중에 미니밀에 필요한 원료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설립한 ‘포스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즉 미니밀의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HBI를 생산하는 포스벤도 과잉생산의 늪에 빠져들었고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아 생산성이 크게 악화된 것. 결국 지난 11월 청산과정을 밟았다.이와 함께 미니밀사업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도 실패의 주요원인 중의 하나다.미니밀은 생산량 조절이 용이한 대신 그만큼 경기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지녔다. 우선 주원료인 고철이 대부분 수입품으로 환율의 영향을 받았다. 또 전기로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비도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3배 가량 높아 채산성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 포스코 관계자의 귀띔이다.이밖에 용광로를 통해 생산되는 기존 제품에 비해 품질과 제품 사이즈 측면에서 제한을 받는 등 상업성과 상품경쟁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국내에서 얇은 슬래브는 대부분 자동차 강판이나 가전제품에 사용된다. 그러나 미니밀에서 생산하는 슬래브는 품질이 떨어져 국내 최대 수요처인 자동차회사나 가전회사를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이에 따라 가동 중이던 제1 미니밀 공장은 감산 조업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고, 직류전기로, 박슬래브 연속주조법 등 신기술에 대한 경험부족으로 가동률이 35% 수준으로 저조했다. 결국 포스코의 여건과 현실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진된 미니밀 공장은 출발부터가 순조롭지 않았던 것이다.철강전문 애널리스트는 “포스코는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준비됐다고 주장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어떻게 활용했나98년 3월 CEO로 취임한 유상부 회장은 과잉투자와 저수익 자산이 회사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는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기존 투자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제2 미니밀 사업을 도중에 중단한 것이다.제1 미니밀의 경우 포스코는 수입고철에 대한 원가부담 및 용광로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철을 사용하는 전기로 대신 제철소의 용광로-전로 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고품질의 쇳물을 끌어와 제품을 생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프로세스를 변경했다.이와 함께 시너지 효과가 작고 철강 본업과 관련이 적은 분야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정리했다. 이때 인도네시아 미니밀과 스테인리스 냉연공장 등을 청산하거나 철수했다. 또 중국시장의 석도강판 수요를 낙관해 중국 다롄에 설립키로 한 석도강판공장과 광둥성에 추진 중이던 전기아연도금강판공장 건설계획도 백지화했다.이렇게 하자 재무구조도 한결 견실해졌다. 97년 6조8,000억원에 달하던 차입금 규모가 2001년 말에는 5조2,0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 10월 현재 4조5,000억원 수준으로 떨어져 1997년 141%에 달하던 부채비율이 51.3%로 낮아졌다.철강전문가들은 이 같은 과잉 투자자산을 조기에 정리하거나 정상화시키지 못했다면 손실액이 엄청난 것은 물론 경쟁력까지 위협당하는 심각한 국면에 처했을 것이라고 전했다.실패에서 배우는 교훈1. 기본과 원칙을 준수하라.대부분 문제는 기초적이고 상식적인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 과잉투자 해소과정에서 투명, 책임경영만이 기업의 성공을 보장한다.2. 핵심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 투자하라.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3. 현지와 상호 윈윈하는 해외투자를 하라.기존에 확고한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발전 가능성이 뚜렷한 지역에만 전략적으로 투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