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근무하는 최보근씨는 얼마전 대학 동창들과 이색적인 망년회를 가졌다. 소주로 시작해 폭탄주로 끝을 보았던 예년 망년회와 달리 올해는 강남 삼성동의 한 와인바에 모인 것. 각자가 와인을 한 병씩 가져와 나눠 마시는 ‘BYO’(Bring Your Own Bottle)도 열었다.최씨는 “특별한 이야기도 없이 술에서 술로 끝나는 모임은 이제 피하자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며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친구들과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와인문화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98년 IMF 이후 위축됐던 와인시장은 매년 30% 정도의 성장가도를 달리면서 이미 예년 소비량을 회복했다. 관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까지 와인수입에 사용된 금액이 지난해 전체에 육박하고 있다. 11월 출시된 보졸레누보를 감안한다면 그 증가세는 더욱 클 전망이다. 보졸레누보는 전세계에서 동시에 출시되는 프랑스의 햇와인. 지난 11월 대한항공이 특별기 4대를 투입해 지난해 3배에 이르는 200t(13만병)의 보졸레누보를 국내에 수송해 화제가 됐다.와인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 대부분의 특급호텔들도 기존 나이트클럽이나 레스토랑을 와인바로 개조하고 있는 상태다. 롯데호텔의 경우 지난 4월 레스토랑으로 활용되던 공간에 와인전문바 ‘바인’(Vine)을 오픈했다. 서은경 바인 지배인은 “올 4분기 매출액이 지난 3분기에 비해 45% 가량 증가할 전망”이라며 “계절적인 요인들을 제외한 자연증가분만 20~25% 정도”라고 말했다. 또 “해외 현지 와인메이커들이 국내 와인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성을 보고 직접 방문해 시장조사를 하거나 국내 와인바를 상대로 직접 마케팅을 벌이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고 덧붙였다.시장을 잡기 위해 국내 대기업들도 뛰어들었다. 두산은 지난 9월 외국 포도주 110여종을 수입하던 대한주류를 흡수합병했다. 이어 같은달 15종의 포도주 신제품을 새로 내놓았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지난 3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국내에 포도주 3종을 선보였다. 이들 제품은 롯데그룹의 유통망에 우선 공급한 뒤 앞으로 전국의 호텔, 백화점, 할인점, 편의점, 주류전문점 등에 포도주를 공급할 예정이다.칵테일 전문바 무섭게 늘어나‘젓지 말고 흔들어 주세요’(Shaken Not Stirred). 영화 에서 제임스 본드가 내뱉은 대사로 마티니가 ‘칵테일의 황제’로 자리잡게 된 계기가 됐다. 이때 본드가 마신 칵테일은 ‘보드카 마티니’. 그해 이 영화에 등장한 ‘스미노프 보드카’는 매출이 수직상승하면서 세계적인 보드카 명가로 자리잡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후에도 마티니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미국에서는 퇴근 후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식전주로 자리잡았다.최근 미국 뉴욕의 경우 마티니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바들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추세. 신라호텔의 마티니전문바 ‘더 포인트’를 기획한 이정호 과장은 “미국 뉴욕으로 출장을 다녀오면서 현지에서 ‘마티니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데 착안했다”며 “국내에도 마티니 애호가들이 점점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이렇게 칵테일이 주류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요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와인으로 시작된 깔끔한 ‘술자리 문화’와 젊은층 사이에서 번지는 ‘바 문화’의 확산. 청담동의 칵테일바를 찾는 김모씨는 “바에 앉아 있으면 다른 손님들과 일종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술보다 이런 독특한 분위기에 빠져 계속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느낌을 밝혔다.고급호텔과 강남 일대에서 시작된 ‘바’의 인기는 이미 신촌, 대학로 일대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혼자서 위스키와 같은 독주를 즐길 수 있는 ‘클래식바’보다 여러 명이 함께 바텐더의 플레어(바텐더의 화려한 묘기)와 다양한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캐주얼바’가 유행이다. 칵테일바 프랜차이즈 ‘더플레어’의 경우 국내와 중국 등 20여곳에서 칵테일 전문바를 운영하고 있다.복분자, 지난해 비해 매출 20배 증가백세주, 산사춘, 천국 등 ‘전통주의 강호’들이 버티고 있는 약주시장에 혜성같이 등장한 술이 있다. 바로 산딸기로 만들어진 복분자. ‘넘어질 복(覆), 요강 분(盆) 아들 자(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먹고 나면 요강이 뒤집힐 만큼 정력에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복분자는 파죽의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원래 이 술은 조선시대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사대부가에서 즐겨먹던 술로 임금님 진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외국산 와인보다 더 진한 빛깔과 산딸기 고유의 향긋하고 부드러운 감칠맛이 일품이다.‘지리산복분자’를 생산하고 있는 연수당의 경우 올해 초 공급이 달려 얼마전 공장증축을 통해 이제는 한 해 400만병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 이 회사의 최홍민 부장은 “지난해 복분자 매출액은 3억원 정도였지만 올해는 60억원 정도를 예상한다”며 “대형할인점이나 백화점보다 음식점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밝혔다.현재 국내에 복분자를 생산하고 있는 곳은 대부분 지방 중소업체. 하지만 모두 합치면 시장규모가 200억원 시장에 이른다. 위스키 1조원, 와인 1,000억원 시장에 비하면 아직 미약하지만 이제 시장에 선보인 지 1년 된 신생주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이런 저도주 바람은 기존 막걸리에서도 서서히 일고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비영리 단체인 식생활안전시민운동본부에서 최근 발족한 ‘막사모’가 대표적인 예. ‘막걸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단체는 막걸리와 토속주를 널리 알리자는 취지. 결성돼 최근에는 30여명이 모여 조촐한 창립식도 가졌다.회원들 중에는 국내에 활동하고 있는 식품전문가들도 많다. 김용덕 식생활안전시민운동 대표를 비롯해 동국대 노완섭, 경희대 조재선 등 식품영양학과 교수들도 눈에 띈다. 김대표는 “막걸리의 생효모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린다는 대표적 건강기능주”라며 “막걸리의 우수성이 잊혀져가고 국민 건강을 좀먹고 퇴폐문화를 형성하는 외국산 독주에 대처하기 위해 형성됐다”고 의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