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배우는 ‘돈의 가치’가 최고

어려운 경제용어 . 단편적 지식전달은 '금물'...'밥상머리 경제교실' 유용

“경제도 조기교육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에게 경제를 가르치는 학원이 있나요? 학원에서 배워야 할 건 아닌 것 같기도 한데….”한 여성포털사이트 교육정보방에 올라있는 문의 글이다. 이처럼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경제교육 필요성에 공감하며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교재를 써야 할지, 교육기관은 어디 있는지, 집에서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답답해하는 부모가 대부분. 하지만 교육전문가들은 “경제교육 필요성에 동의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라고 말한다.생활 속에서 경제를 가르쳐라경제는 생활이다. 생활 대부분이 경제활동이며, 이는 어린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먹고 자고 놀고 학교 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경제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한국교육개발원 인적자원연구팀의 장수명 박사는 “경제생활이 갖는 의미를 이해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쌀의 경제학을 말해주는 식이다. 쌀의 생산과정과 식탁에 오르기까지 유통단계를 설명하면서 당면한 쌀 수입개방 문제까지 거론할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쌀을 매개로 국제교역의 장단점까지 이해시킬 수 있다면 훌륭한 ‘밥상머리 경제교실’이 된다. 단 어려운 경제용어를 쓰거나 주입식으로 가르친다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또 장박사는 아버지의 직업이 갖는 ‘생산의 의미’도 어릴 때 깨우쳐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공장 노동자라면 자녀가 아버지의 직업을 계층적 시각으로 보기 전에 생산활동의 한 축으로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생활 속에서 경제를 가르치는 것은 ‘합리적인 경제인’ ‘건전한 소비자’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경제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주식투자법, 은행 이용법 등을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이는 가정 경제교육의 부수적 수단으로 이용돼야 한다는 게 장박사의 의견이다. “기업운영의 전영역을 이해하지 못한 채 수익만 내면 바람직한 것인 양 주식투자법을 가르친다면 최악의 교육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어린이 경제교육은 백만장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경제사고를 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는 조언이다.실수에서 배우게 하라친구의 물건이나 동네 슈퍼마켓의 상품들을 그냥 가져오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반대로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려도 찾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모두 ‘소유’에 대한 개념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행동들이다.정윤선 한국소비자보호원 소비생활연구팀 선임연구원은 “부모가 화를 내면서 야단치기 전에 먼저 소유개념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소유, 남의 소유에 대해 일깨워주고 소유가 갖는 의미를 이해시키는 것이 먼저라는 것.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려 하지 않는 아이에게는 일정기간 동일한 물건을 사 주지 않음으로서 소중함을 알게 하고, 남의 물건을 갖고 오는 아이에게는 ‘역지사지’로 생각하게 만들어 물건을 잃어버린 이의 마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조언이다.또 정해진 기간보다 먼저 용돈을 써 버렸다면 ‘신용관리’ 측면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용도에 마이너스 포인트를 주고 다음 용돈을 줄 때 이를 적용하는 것. 부모와 아이가 용돈을 주고받는 일에서부터 신용관리를 하게 되면 용돈의 소중함을 더불어 깨우치게 된다는 논리다.부모의 생활을 모델로 제시하라요즘 아이들의 소비패턴은 어른들을 그대로 따라간다. 생일파티 문화를 예로 들어보자. 생일파티가 성대하냐, 초라하냐에 따라 아이의 경제계급이 매겨지는 게 요즘 현실이다. 어른 사회의 과시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지난 97년 라는 경제교육 서적을 출판한 바 있는 석혜원 메트로은행 서울지점 지배인은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자녀에게 성실한 경제생활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부모의 소비행태를 보고 자녀가 배우는 만큼 부모의 경제생활은 중요한 교재가 된다는 것. 예컨대 부모가 동전을 소중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면 자녀 역시 같은 가치관을 갖게 되며, 부모가 충동구매를 한다면 자녀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값비싼 가전제품을 구입했다고 가정하자. 부모는 가전제품을 산 이유와 구매과정을 자녀에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어떤 목적에서 물건을 샀고 물건을 사기 위해 얼마를 썼는지, 구매대금은 어떤 과정을 통해 벌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노동의 성과와 돈의 가치, 물건의 소중함을 함께 깨우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독립된 생활환경을 만들어줘라아이들이 경제생활의 기초인 ‘소비’를 하게 되는 것은 부모가 용돈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돈을 주고 “아껴서 써라”는 말로 가정에서 경제교육이 끝나는 게 아니다.지난 6월 를 펴낸 김정훈 원광대학교 생활과학대학 교수는 “용돈을 통한 경제교육은 아이에게 축구를 가르치기 위해 공을 사는 일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공 없이 축구를 할 수 없듯 용돈을 주지 않으면 돈 쓰는 법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김교수는 “스스로 돈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게 용돈을 통한 경제교육의 핵심”이라고 말한다.스스로 돈 쓰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경제생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용돈을 규모 있게 쓸 수 있도록 용돈기입장을 만들어주거나 자녀 명의의 은행통장을 만들어 직접 관리하게 하는 등 방법은 많다. 통장을 갖게 될 경우에는 저축의 기쁨과 이자가 늘어나는 원리 등 아이가 배울 게 많다.한국소비자보호원에서는 시범초등학교를 지정, 일기와 용돈 지출내역을 함께 기록할 수 있는 일기장을 만들어 배포 중이다. 주부클럽 등에서 만든 용돈기입장도 활용하면 좋다. 보통 일기장이라 하더라도 아랫부분에 칸을 만들어 용돈 지출내역을 기록하게 하면 아이 스스로 소비의 일관성을 갖게 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돈의 가치’를 일깨워라어린이 경제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의 가치를 일깨우는 것. 아이가 자라 합리적인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돈에 대한 가치관이 올바로 서야 한다.이미 10~20대 젊은층의 신용불량자 증가세가 위험수위를 넘은 것도 따지고 보면 돈에 대해 왜곡된 가치관 때문. YMCA가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신용불량자 가운데 10대는 0.3%인 8,000명에 달했다. 대부분 화장품이나 옷을 사거나 유흥비 조달을 위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은 게 화근이었다.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인 박명희 동국대 가정교육학과 교수는 지난 12월9일 ‘소비자신용시대의 경제윤리’ 세미나에서 “돈에 대한 가치교육이 입시 위주 교육에 밀려 소홀히 취급돼 10~20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정식 커리큘럼을 통해 돈에 대한 가치교육을 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더불어 가정에서의 교육도 도마에 올랐다. 박교수는 “부모들 역시 돈에 대한 가치교육에 소홀하면서 자녀 세대의 헤픈 씀씀이만 나무란다. 이는 결국 세대간 대화부족, 소비문화 차이를 가중시켜 갈등을 심화시킨다”고 밝혔다. 즉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라는 세대일수록 돈에 대한 가치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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