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카드·다이어리 연말특수 ‘뚝’

소수 대형업체만 예년과 수주량 비슷, 중소업체는 대폭 줄어 한숨

서울 중구 충무로, 을지로 일대의 인쇄골목. 명보극장 주변에 모여 있는 달력과 각종 카드, 다이어리 생산판매업체들에 찬바람이 감돌고 있다. 연중 최대 성수기여야 하는 12월, 기대와는 달리 선거특수는 물론 연말특수도 찾아볼 수 없다.스카라극장 건너편에 소재한 달력업체 세종문예사는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40%나 줄었다. 이 회사 정남규 대표는 “달력의 경우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인 대형회사들은 변동이 없지만 10억원 이하의 중소업체들은 고사직전”이라고 말했다.카드인쇄전문점인 청실홍실의 최병철 실장도 “온라인 크리스마스카드가 성황을 이뤄서인지 연하장이 안 팔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일대 카드업체 중 규모가 가장 큰 고은손카드방은 사정이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최실장의 말처럼 중구에서 20년간 카드를 생산ㆍ판매해 온 고은손카드방은 분주하기만 했다. 도소매 가릴 것 없이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카운터에 앉아 있는 윤경중 사장에게 말 붙일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인쇄물 운송물량 30% 이상 줄어박진욱 고은손카드 사업본부장은 “지난해와 별다른 매출변동이 없다”며 “500원에서 700원 사이의 연하장만 200만장 팔았다”고 말했다. 박본부장은 인쇄업계 전반이 겪고 있는 고전에 대해 “이제 인쇄업계는 선거 관련 업체가 아닌 듯싶다”고 체감경기를 토로했다. 그는 또 “경기의 변동과는 관계없이 인쇄 비즈니스는 다른 호황을 누리는 산업분야와 점점 더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예년 연말에는 인쇄물이 도로에까지 쌓여 있어 발 디딜 틈 없던 인쇄골목. 올해는 쌓인 인쇄물 대신 멈춰 있는 운송차량을 자주 볼 수 있었다.운송을 담당하는 운전자들도 달라진 연말특수를 실감하고 있다. 지난 8년간 제지와 인쇄물 운송을 맡았다는 한기수씨는 “운송물량이 30% 이상 줄었고, 인쇄골목에서 문닫은 업소도 많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씨는 “이 일대 인쇄업체 중 예인미술이 가장 크다”며 “예인미술은 여전히 호황일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예인미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93년부터 사업을 해 온 예인미술은 이맘때면 1만부씩 찍었던 달력을 올해 5,000부로 50%나 줄여 찍었다. 이 회사 박용성 관리부 대리는 “다이어리나 각종 카탈로그의 인쇄수주도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연말이면 주문이 폭주하는 다이어리 제조업체의 사정도 별다르지 않았다. 인쇄골목의 다이어리업체 중 가장 잘된다는 목랑다이어리 사장은 “장사가 안돼 매출이 줄었다”며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저가 대량에서 고급소량 달력 인기매서운 겨울바람은 중소업체가 몰려 있는 인쇄골목에만 부는 것일까. 대형 달력 생산기업인 홍일문화인쇄의 최창혁 전무는 “예년 수준인 1,000만부를 찍었다”며 “메이저 달력 생산업체는 경기변동에 민감하지 않은 반면, 중소업체는 올 연말 상황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고 말했다.최전무는 달력생산이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로 문화의 변화를 들었다. 그는 “예전과 달리 달력이 없어도 휴대전화나 시계로 날짜를 알 수 있다”며 “달력을 벽을 장식하는 도구로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문화수준이 높아져 벽 장식용품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이런 이유로 금융기관이나 기업들도 저가 달력을 대량 배포하기보다 고객의 기호와 특색에 맞는 고급 달력을 선호한다. 7장짜리 저가 달력이 주를 이루던 과거와는 달리 13장으로 이뤄진 고급 달력의 비율이 대폭 늘었다는 것.또 다른 달력 생산업체인 진흥문화는 지난해 600여만부의 달력을 인쇄했지만 올해는 100만부 줄어든 500만부를 제작할 전망이다. 월드컵 등의 이슈가 있었던 올해와 달리 내년에는 특별한 특수가 없기 때문에 달력 시장이 위축됐다는 것이 회사측의 분석이다.제지업계도 연말특수 기대와는 달리 매출증가폭이 크지 않아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국내 대규모 제지기업인 한솔제지는 올해 4분기에 타 분기 대비 8%의 매출증가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5% 미만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5대 제지회사에 드는 신호제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회사 김세홍 인쇄용지팀 과장은 “지난해에 비해 달력용지 수주물량을 10% 이상 줄였다”고 말했다.인쇄정보산업연합회 관계자는 “선거에 따른 매출 증가가 3~5%에 이르렀던 것이 과거 상황이라면 현재에는 1%도 못 미칠 정도”라고 말했다.연하장, e카드로 대체중증권가에서도 기대 이하의 제지업계 연말 특수를 절감하고 있다. 김기안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내수가 좋아 제지산업 자체는 호황이었으나 하반기 들면서 둔화됐다”며 “연초부터 대선에 따른 제지시장 확대를 전망했으나 4분기 들어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대선 TV토론 등이 활성화되면서 인쇄물을 통한 선거운동이 약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덧붙였다.인쇄업계의 고전은 우정사업본부의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크리스마스카드와 신년연하장을 구입해 이용하는 대신 e메일을 사용하는 사람이 급속히 증가했다.99년의 경우 연말 연초 특수기간(12월10일~새해 1월10일) 중 배달된 성탄 및 신년연하장 등은 4,400만통이었다. 그러나 2000년에는 4,300만통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약 4,000만통 수준이었다.반면 각종 e메일이나 인터넷카드 업체들의 e메일 발송횟수는 가속도를 내며 가파르게 늘고 있다. 원윤식 다음커뮤니케이션(www.daum.net) 실장은 “연말연시를 맞아 e카드 등을 보내는 가입자로 인해 지난해보다 e메일 발송이 3배 이상 발생하고 있다”며 “12월20일 이후에는 6~10배 정도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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