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조선소는 배를 건조한 다음 선주에게 인도하기 전 ‘명명식’이라는 이벤트를 갖는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로프 커팅이다. 명명자는 “나는 이 배를 ○○○호 명명하나니 이 배와 승무원 모두에게 신의 축복과 기호가 깃드소서” 하고 외친 뒤에 손도끼로 배와 연결된 로프를 힘껏 내리쳐 끊는다.로프 커팅을 한 명명자는 이어 삼페인병을 배에 던져 깨트린다. 이는 천주교의 세례식을 본뜬 것으로 고난의 상징인 ‘병’을 깨트림으로써 배의 안전을 기원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대목에서 수백 년 동안 내려온 불문율 하나를 소개해 본다. 로프 커팅과 삼페인병을 던지는 명명자는 반드시 여성이 맡는다는 것이다.선박명명식 로프 커팅 '남자는 안돼'원래 여성 중에서도 순결한 ‘처녀’가 선박명명을 담당했으나 최근에는 영부인이나 선주 부인 등 유명인사의 부인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처녀’에서 ‘유명인의 부인’으로 바뀌었지만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그럼 여성만이 로프를 커팅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바이킹족이 순결한 처녀를 바다의 신에게 바침으로써 그들의 향해가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또 19세기 영국 조지3세가 백성들에게 공주들의 이미지를 높이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공주들로 하여금 해군 함선의 이름을 붙이게 했다는 얘기도 내려온다.무엇보다 사나운 바다를 남성에 비유한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해운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사나운 바다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여성이 제격이라는 것이다.배를 여성으로 분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예전에는 ‘아카시아’ ‘뷰티’ 등 꽃이름이나 여성스러운 추상명사를 배이름으로 많이 사용했다. 권석훈 한진해운 홍보팀장은 “배를 여성명사인 ‘She’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으로 바다라는 거친 환경을 잠재우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유래를 설명했다.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 같은 금기는 조금씩 깨어지고 있는 추세다. 한진해운은 최근 ‘한진 런던호’ ‘한진 뻬이징호’ 등 주요 기항항구나 세계적인 물류거점 도시이름을 따 배이름을 짓고 있는 상황이다.또 ‘여자를 배에 태우면 탈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었지만 이 또한 추억 속으로 밀려났다. 해양 관련 대학에서 여성에게 항해학과와 기관학과의 문호를 개방한 96년부터 여성 해기사가 탄생한 뒤 자연스럽게 ‘금남의 벽’이 깨지기 시작한 것.여성과 관련한 징크스는 철강업계도 있다. 옛날부터 철은 남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런 금남의 공간에 여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용광로나 풍로 근처에 여성이 접근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고 한다. 용광로나 풍로의 생김새가 남성의 성기와 비슷해 접근하면 발기해 폭발한다는 어이없는 징크스 때문이었다. 이런 징크스는 90대 초반 여성 엔지니어들이 철강업계에 취업하면서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맥주업체 '남은 술을 모으지 마라'올 초 한 맥주업체에 신입사원으로 취업한 K씨(29)는 첫 회식자리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회식은 고깃집에서 있었지만 맥주업체답게 맥주로 술자리가 시작됐다. 막내사원인 K씨는 여러 맥주병에서 술이 조금씩 남아돌자 이를 한 병에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석에서 갑자기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니 그것도 모르고 맥주회사에 들어 왔단 말이야.”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하고 있는 그에게 옆자리 선배들이 웃으며 설명해줬다.맥주는 합쳐 놓으면 맛이 뚝 떨어진다는 것. 따라서 맥주업체 직원들은 술을 절대로 한 병에 모으지 못하도록 한다.그럼 남은 술은 어떻게 할까. 답은 간단하다. 두 병을 동시에 들고 한 번에 컵에 따른다는 것. 맛을 중요시하는 업계 직원들의 직업정신이 이런 징크스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주류업계 직업정신과 관련한 징크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맥주업체 직원들은 회식자리에서 맥주로 시작해서 맥주로 끝낸다. 이는 소주업체도 마찬가지다. 술자리가 3차까지 이어질 때도 주종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라는 것이 보편적 정서다.물론 다른 회사 제품은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 내부 직원이 마시지 않는데 누가 마시겠느냐는 것. 혹시 회사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자리가 있을 경우 주종도 자사 브랜드여야 한다. 혹시 타사 제품을 마시다가 직장상사에게 들키는 날은 그야말로 제삿날이다.주류업체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직업 중의 하나는 제품개발실 연구원이 아닐까 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술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통 혀로 맛을 보고 곧바로 뱉어내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하루에 반 병에서 한 병 정도의 술을 마신다고 한다.예사롭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답게 제품개발팀은 여러 징크스를 갖고 있다. 담배, 커피, 껌 등 자극성이 강한 음식을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여성 연구원의 경우 화장도 금물이다. 이런 금기사항을 어길 경우 혼나는 것을 둘째 문제다. 제대로 된 맛을 보지 못함에 따라 좋은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필연이기 때문이다.또 하나의 징크스를 소개하면 언제부터인가 주류업체의 광고에서 술병을 눕히면 술이 안 팔린다는 묘한 징크스가 있어 대부분 술광고에서는 세워놓은 술병만을 보여준다. 그러나 위스키업체 하이스코트는 이런 징크스를 과감하게 깼다. 지난 9월 출시한 신제품 ‘랜슬럿’ 광고에서 술병을 눕힌 것이다.하이스코트 관계자는 “원탁의 문장에 박혀 있는 상태로 누워 있는 제품은 기사의 도도함을 보여주는 한편 제품의 밑바닥까지 보여줌으로써 제품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도를 밝혔다. 하이스코트의 징크스 깨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사옥 있는 건설회사 줄줄이 도산(?)‘사옥을 갖고 있으면 망한다.’ 건설업계를 두려움에 떨게 한 ‘지독한’ 징크스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건설, 한보건설, 극동건설, 한신공영, 유원건설, 벽산건설, 동아건설 등 사옥을 갖고 있었던 건설업체들은 하나같이 부도의 칼날을 맞아야 했다.반면 경기도 분당 삼성플라자에 입주한 삼성물산 건설 부문, 아파트단지 내 상가에 자리를 잡은 롯데건설, LG 역전빌딩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LG건설 등은 승승장구하며 휘파람을 불고 있다.이들 업체는 앞으로도 ‘사옥을 갖겠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건설현장에서의 징크스도 유난스럽다. S건설 현장소장(동두천) K씨(40)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개고기를 먹으면 다음날 사고가 터진다는 징크스를 철저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K소장뿐만 아니라 40~50대의 현장소장들 중에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또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에는 건설현장에 여성이 출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이유도 그럴 듯하다. 고층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현장에 출입한 여성을 보고 정신이 혼미해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이밖에 현장에서 뛰어다니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뛰면 땅이 흔들려 건축 중인 건물이 흔들리게 되고 높은 데서 일하는 사람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부동산업계는 ‘짝수해=전세난’에 10여년간 시달려왔다.지난 89년 12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된 뒤 90년부터 짝수해마다 홀수해에 비해 전세 거래가 크게 늘면서 전세가가 크게 상승해왔다.실제로 지난 90년 서울지역의 전세가 상승률은 16.5%로 유례없는 전세난을 겪었다.그후 92년에는 그런대로 보냈지만 94년과 96년에는 다시 10%대를 넘는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홀수해의 전세가 상승률은 93년 2.5%, 95년 7.1% 등으로 대조적으로 낮게 나타났다.이는 전국 아파트 공급가구수가 상대적으로 짝수해에 감소함으로써 전세대란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94년, 96년, 98년 2000년 등 짝수해가 전년도에 비해 특히 아파트 공급물량이 더 많이 줄었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결국 짝수해에 주택수요는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주택공급은 오히려 더 줄어들었다는 것.그러나 98년 이후 부동산업계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던 ‘짝수해=전세난’이라는 양상이 바뀌었다. 97년 마이너스 2.1%였던 전세가 상승률이 다음해 98년 마이너스 21.3%로 폭락했기 때문. 전국을 뒤흔들었던 IMF 사태가 부동산업계의 최대 징크스마저 무너뜨린 것으로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풀이했다.‘10년마다 아파트값이 폭등한다’는 ‘10년 주기설’도 부동산업계에 널리 퍼져 있는 징크스 중의 하나다.부동산업계에 따르면 77~79년 1차폭등 이후 10년이 지난 88~91년 2차폭등이 있었다는 것. 1차폭등은 당시 중동특수로 인해 경기가 한껏 살아난 가운데 영동 시가지 조성 등 굵직굵직한 개발호재가 잇따르면서 일어났다.2차폭등은 정부의 분양가 규제 때문에 폭발했다. 당시 3저 호황 등으로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폭을 기록했던 시절 정부가 신규 아파트분양가를 동결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었다. 88년 4월부터 91년 4월까지 3년간 전국 아파트값은 160%가 올랐고, 서울 강남지역은 206%나 상승했다. 2차폭등 뒤 10년이 흐른 올해 매매가가 22%가 폭증하면서 이른바 ‘10년 주기설’이 재현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백화점계 '언덕에 들어서면 망한다'는 속설일부 백화점은 전통적으로 금기사항을 세 가지 정도 뒀던 적이 있다. 먼저 애써 창문을 만들지 않았다. 고객이 날씨와 시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없어야 좀더 오래 매장에 머무른다는 판단에서다.시계도 설치하지 않았다. 고객이 조바심내지 않고 천천히 쇼핑을 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1층에 화장실을 두지 않았다. 이는 1층에 화장실이 있으면 용무를 보러온 고객을 위층이나 아래층으로 이끌지 못하기 때문. 따라서 지하나 2층에 화장실을 설치해 한 번이라도 더 고객을 매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세 가지 금기는 거의 깨졌다. 얕은 수보다 소비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결국 매출증대로 이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아직도 깨어지지 않는 징크스가 있다. 그것은 백화점은 절대 언덕에 세우면 안된다는 것. 백화점업계는 오래전부터 ‘낮은 데로 향하라’는 성경구절을 누구보다 잘 실천하고 있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고객들도 낮은 곳으로 모인다는 것. 아울러 언덕은 바람 잘 날 없어 사람을 내쫓는다는 속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금기를 깬 ‘용감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동백화점과 삼풍백화점이 모험을 감행했다. 그러나 금기를 깬 백화점은 호된 시련을 겪어야 했다.증권업계나 광고업계도 징크스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증권가에서 ‘푸른색’은 ‘악마의 색’으로 통한다. 증권 시세판의 주가하락 표시등이 파란색이어서 투자자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종사자들이 파란색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물론 투자자들은 주가상승 표시등인 빨간색 넥타이를 맨 직원들을 선호한다.증권가에서 ‘떨어진다’는 말도 금기사항이다. 매일 아침 데일리에 시황코너를 쓰는 담당자들은 ‘떨어진다’는 표현 대신 ‘조정을 받을 전망이다’ 등 교묘한(?) 표현을 통해 전일 장세를 서술하고 오늘 장세를 전망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가령 ‘단기박스권 유지’ 표현은 이렇다할 반등세가 연출될 가망성이 없다는 의미이다. 소폭 하락이나 소폭 상승, 양방향에 가능성을 두고 있지만 ‘증권가식 용어’로는 떨어질 것 같을 때도 이 같은 표현을 즐겨 쓴다고 한다.광고업계에서는 음식광고에 식욕을 감퇴시키는 파란색을 쓰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또 아파트광고에 남성이 나오거나 이혼녀가 등장하면 ‘될 것도 안된다’는 징크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징크스의 늪’에서 빠져나온 상태다.돋보기“징크스 깨고 대박 터뜨렸다”금기를 깼다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대박을 터뜨린 경우도 적지 않다. 음료업계의 금기사항 중의 하나는 신제품을 겨울에 출시하면 안된다는 것. 이에 따라 대부분 3~4월에 신제품을 내놓는다. 이는 연간 음료소비량의 약 50% 정도가 여름철에 집중되기 때문.그러나 웅진식품은 금기사항을 과감히 깨고 대성공을 거뒀다. 지난 95년 조운호 웅진식품 사장은 ‘가을대추’를 개발해 놓고 출시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었다. 조사장은 광고비를 물 쓰듯 하는 대기업의 신제품 출시시기와 겹치면 무조건 실패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음료업계의 금기사항이었던 신제품의 겨울출시를 단행한 것.물론 제품개발팀과 영업사원들은 “음료는 3~4월에 출시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음료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조사장을 비난했다. 그러나 조사장이 고집을 꺾지 않은 덕택에 ‘가을대추’는 첫해 36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귀염을 토했다.광고업계는 인기그룹에서 솔로로 전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수를 쓰지 않는 것이 불문율.솔로로 전향해서 성공한 사례가 별로 없는데다 그룹시절의 이미지가 강하면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징크스로 내려온 것. 그러나 KTF는 2001년 7월 말 ‘매직n’라는 광고모델로 인기그룹 HOT의 전 멤버 강타를 기용하면서 당시 미발표곡이었던 ‘북극성’을 CF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솔로전향 가수의 징크스를 감안할 때 강타의 캐스팅은 모험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광고는 방영 일주일 만에 광고호감도 순위 상위에 랭크됐고, 음반도 출시 일주일 만에 50만장이 팔려나간 것.이처럼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마케팅 기법은 더욱 다양해기 마련이고, 이럴수록 철저한 기획이 뒷받침된다면 징크스는 훌륭한 마케팅기법으로 재조명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