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지 편집자 조언에 가격할인까지

엘리 마틴이라는 40대 주부는 최근 16살짜리 딸과 함께 한나절을 유명 남자모델과 함께 보냈다. 남자모델은 와 지의 ‘포스터 보이’ 격인 팀 듀란드였다. 커피를 마시고 패션업계에 대한 대화를 갖고…. 물론 꿈은 아니다. 엘리 마틴씨는 듀란드에게 120달러를 내고 그와 함께 3시간 동안 프라다, 루이비통 같은 유명 브랜드 상가에서 쇼핑을 했다. 듀란드는 함께한 쇼핑객들이 옷을 입어보면 그에 대해 평가해 주고 자신의 견해를 말해 준다. 게다가 이날 쇼핑은 모두 ‘50% 할인’이었다.최근 들어 이처럼 모델이나 패션잡지 편집자들과 함께 쇼핑을 하는 ‘신개념 투어’가 각광을 받고 있다. 관광업체들이 관광객들을 버스에 실어 쇼핑센터 앞에 내려주던 단순 쇼핑관광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다.모델이나 패션잡지 편집자들을 ‘리더’로 삼아 평소에는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쇼룸을 보여주고, 옷을 선택할 때 특별한 조언을 해주며, 일정금액의 할인을 보장해주는 ‘업그레이드’된 쇼핑관광상품인 것이다. 이 같은 신개념 쇼핑관광은 미국의 여행업계와 소매산업이 장기간 침체를 겪으면서 이를 탈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뉴욕의 패션업데이트(www.fashionupdate.com)는 패션잡지 편집장인 사라 가드너와 함께 2시간 30분가량 버버리, 도나카란 등의 쇼룸이나 웨어하우스를 방문하는 관광상품을 내놓고 1인당 175달러를 받는다. 물론 사라 가드너와 업체들의 개인적인 관계로 인해 물건을 사면 최고 75%까지 할인받는다. 사라 가드너와 함께 쇼핑을 하는 고객은 한 달에 평균 1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다.2시간 30분에 ‘1인당 175달러’는 적잖은 돈이다. 그러나 물건을 많이 사는 쇼핑객들에게는 오히려 싸게 비쳐지기도 한다. 지난 11월 ‘사라 가드너 투어’에 참여한 에릭과 힐러리 로담 부부는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도매업자들에게만 개방되는 패션업체의 쇼룸을 방문했다. 이 부부는 보석으로 장식된 모피코트를 345달러씩 주고 장만했는데 이는 일반 소매가격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가격이다. 투어비용을 지불하고도 일반 소매점에서 산 것보다 싸게 구입한 셈이다.‘쇼핑투어’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잡지 편집장이었던 주디 프라이스와 함께 4일간 파리를 방문하는 상품은 식사와 호텔비를 포함해 8,500달러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세계적인 디자이너들 옆에 앉아 유명 패션쇼를 관람하고 베르사체 디자인실을 방문하며 루이비통을 이끌고 있는 버나드 어널트의 여동생인 도미니크 와틴 어널트와 리츠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기도 한다.또 스페인 패션잡지에서 주최한 디오르 패션쇼에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참석해 찍은 사진을 기념품으로 받기도 한다. 지난여름 이 같은 ‘고품격’ 쇼핑관광에 참가했던 미릴 리바이씨(50)는 “파리 패션업계의 모든 문이 우리에게 열려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고가 상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원하는 고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개발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모델이자 영화배우인 다이애나 테네스와 함께하는 프로그램(www.imakefaces.com)은 관광객들에게 샌프란시스코 해안가의 값싼 가계들로 안내해서 3달러짜리 캐시미어 스웨터와 15달러짜리 루이비통 가방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그리고 부자촌인 월넛 크리스에서 세일을 많이 하는 상점들을 소개하며, 이들의 쇼핑을 도와준다. ‘쇼핑 투어에 참가한 고객들은 시간당 50달러를 내지만 많은 쇼핑정보에 고마워한다는 게 다이애나 테네스의 얘기다.로스앤젤레스의 VIP여행(www.viptoursandcharters.com)은 기존의 디즈니랜드 센추리시티 스튜디오 등 관광지를 여행하는 상품에 베버리힐스 등을 하루 방문하는 쇼핑투어를 포함한 상품을 내놓기도 하고 플로리다 탐파의 대형 쇼핑센터인 인터내셔널 플라자(www.shopinternationalplaza.com)는 하루 201달러짜리 ‘가이드 쇼핑투어’를 신청하면 무료 호텔숙박과 쇼핑 할인쿠폰은 물론 50달러짜리 저녁식사 티켓까지 제공하는 등 미국 전역에 걸쳐 가이드 쇼핑관광 붐이 일고 있다.쇼핑투어 붐 최대 수혜자는 관광버스산업가이드 쇼핑투어의 유행은 ‘현재를 위해 살고 소비하는’ 미국인들의 욕망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최근의 경기침체가 자리잡고 있다. 올 들어 의류매출이 9ㆍ11테러 등으로 인해 경기가 부진했던 지난해와 비교해도 5% 가량 줄어들었으며, 국내 여행소비도 6% 감소하는 등 소매업체나 관광업계 모두 경제적인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 때문에 단순 관광보다는 돈이 되는 쇼핑관광 상품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경기부진으로 ‘놀고 있는’ 모델들이 크게 늘어난 것도 한몫 하고 있다. 대부분 모델에 이전시들의 활동이 2000년보다 평균 15% 이상 줄어들었다. 톱에이전시인 윌헬미나는 모델 신규채용을 절반으로 줄였고, Q모델스는 올해 20명의 모델을 해고했을 정도다. 쇼핑투어 가이드로 나선 팀 브랜드는 “나는 지금 자유시간이 매우 많다”고 말할 정도다.이 때문에 전체 관광산업은 부진하지만 ‘쇼핑투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쇼핑을 위한 버스임대가 늘어나면서 관광버스산업도 좋아지고 있다는 게 미국버스조합의 설명이다. 지난해 9ㆍ11테러 이후 미국 주요 관광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지만 미네소타에 있는 미국 최대 쇼핑몰인 ‘몰 오브 아메리카’는 단체여행객수가 오히려 5~10% 가량 증가하기도 했다. ‘몰 오브 아메리카’의 방문자수는 통상 디즈니월드와 그랜드캐년 관광객을 합한 숫자보다 많을 정도다.소매업체들도 ‘쇼핑관광객’을 잡기에 혈안이다. 미국 전역에 30개의 대형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타우브만센터는 할인티켓은 물론 주변 관광지의 무료입장권까지 주면서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뉴욕 맨해튼의 남성의류 스토어인 알란 데이비드는 25%의 할인쿠폰은 물론 무료수선, 호텔까지 무료배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호텔과 여행사들도 쇼핑객 잡기에 나서고 있다. 버스회사인 그레이라인은 24개주에 38개의 디스카운트몰을 운영하는 프라임 아웃렛과 업무제휴를 맺었고, 뉴욕의 세인트리지스호텔은 고객들의 쇼핑편의를 위해 인근 쇼핑센터까지 무료로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전문가들은 이 같은 가이드 쇼핑투어가 경기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앞으로 경기가 회복세를 보인다 해도 ‘틈새 상품’으로 급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dong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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