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16대 대통령에 당선시킨 원동력은 무엇일까. 대선이 끝나고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면서 노무현 당선자의 당선에 얽힌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후보단일화가 가장 큰 고비였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노당선자의 개혁성과 일관된 정치인생이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노당선자 진영의 탁월한 홍보전략을 꼽는 이도 적지 않다. 새천년민주당도 대선이 끝난 후 이번 선거를 전체적으로 결산하면서 홍보 측면에서 상대후보를 압도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거론할 정도다. 당사자들 역시 겸손해하면서도 굳이 ‘홍보전의 승리가 노당선자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21세기는 누가 뭐래도 홍보시대다. 어떻게 알리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피선거권자뿐만 아니라 일반기업에서도 홍보는 중요한 경영수단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기업들이 기업이미지 통합(CI)에 열을 올리고 새로운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거액을 쏟아붓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다. 고재호 인터피트 부사장은 “마케팅에서는 제품의 질도 빼놓을 수 없지만 어떻게 포장해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느냐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정치에서도 홍보는 필수다. 지난 90년대부터 국내에 본격 도입된 정치광고는 이제 어엿한 시장을 형성할 정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선거용 벽보 하나 잘 만들어 당선됐다는 얘기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서도 홍보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부각됐다.시종일관 포지티브 전략 구사노당선자 진영은 대선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크게 두 가지 점을 걱정했다. 먼저 돈문제가 실무진을 괴롭혔다. 현실적으로 인지도를 높이려면 전문가를 동원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금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 점에서 상대후보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그렇다고 어디서 돈을 구해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적은 돈을 들여 효과적으로 알리는 아이디어를 찾아야 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자원봉사자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됐다.다른 하나는 노당선자의 이미지였다. 개혁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일각에서 ‘좌파가 아니냐’고 공격할 정도였다. 변호사시절 노동운동을 많이 한 까닭에 과격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선거에 나선 사람으로서 이런 이미지들은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선레이스에 접어들면서 당내 불협화음까지 겹쳤다. 노당선자의 지지율이 정체 상태를 보이자 상당수 당원들이 후보교체를 요구했고, 일부 국회의원들은 탈당도 불사했다. 좋은 이미지를 심어줘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악재들이 쏟아졌다. 노당선자 지지자들 사이에는 한숨만 흘러나왔다.하지만 이런 위기 순간에 홍보를 담당하는 실무진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밖에서는 후보의 자격을 둘러싸고 설왕설래했지만 묵묵히 자신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을 가다듬으며 대국민 홍보전략을 가동시키기 시작했다.대선기간에 노당선자의 홍보조직은 크게 세 곳으로 나뉘어 활동했다. 홍보위원회, 인터넷본부, 미디어본부 등이 그것이다. 홍보위원회에서는 전체적인 전략을 가다듬었고, 인터넷본부는 젊은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사이버상에서 후보의 면면을 알렸다. 또 미디어본부는 방송연설과 찬조연설을 기획하고 진행했다.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노당선자 진영이 홍보전에서 완승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은 비결은 뭘까.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컨셉을 잘 잡았다는 점이다. 홍보의 기본은 전체적인 컨셉이다. 기업들도 마케팅을 할 때면 가장 강조할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결정한다. 그다음 광고 및 판촉전략을 수립한다.노당선자의 기본 컨셉은 ‘새로운 대한민국’이었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희망으로 나라를 가득 채우자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미래지향적인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대목이다. 실무진에서는 일단 노당선자의 젊은 이미지를 잘 살리는 동시에 젊은층에게 크게 어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선거용 벽보뿐만 아니라 각종 광고 역시 새로움과 희망에 포커스를 맞춰 만들었다. 선거벽보의 카피를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정했고, 광고를 통해 미래를 희망을 집중적으로 얘기했다. 노당선자와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자고 호소했고, 이제 낡은 것은 버리자고 주장했다. 이런 일련의 컨셉은 ‘부정부패 심판론’을 들고 나온 상대후보에 비해 미래지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특히 개혁성향이 강한 젊은층에게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유세 때는 노란색 물결을 유도해 깨끗함을 강조했다. 노당선자 스스로 노란색 목도리를 하고 청중 앞에서 연설했고, 청중 역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나눠준 노란색 목도리를 두르고 자리를 지켰다. 대선기간 내내 노란색은 노당선자의 상징색이 되었고, 시각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노당선자가 선거기간 내내 네가티브전략 대신 포지티브전략을 구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보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행정수도 이전문제로 대선정국이 떠들썩하고, 노당선자의 지지율이 하락할 때도 이런 기조는 유지됐다. 맞서서 상대방을 공격할 경우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는데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수그러들 것으로 판단했던 것.방송연설 역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전략에 따라 상대방 공격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안정감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홍승태 미디어본부 기획단장은 “지난번 미국대선에서도 네가티브전략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중도개혁의 안정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노력했다”고 설명했다.노당선자 캠프가 선거기간 내내 유지했던 또 다른 전략은 ‘감성’이었다. 기업의 전략으로 치면 ‘감성마케팅’인 셈이다. 시종일관 따뜻한 인간미를 강조하며 ‘노무현은 감성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적극 알렸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 대선기간 내내 화제가 됐던 TV CF다. 특히 편과 편은 많은 이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며 노당선자의 과격한 이미지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서 노당선자는 청소부로 등장하고, 에서는 예전에 영화배우 문성근씨의 연설을 들으며 눈물짓던 장면이 별도의 연출 없이 그대로 나갔다.애니메이션 활용 대히트두 여중생이 미군병사가 모는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 추모열기가 달아올랐을 때는 신문에 일명 ‘촛불광고’를 내 이에 화답했다. 제작진은 광고지면 전체에 촛불 하나와 간단한 카피만 실었다. 특히 광고카피를 통해 ‘정치인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부끄러울 때가 없습니다’고 고백,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처럼 애니메이션을 적극 활용한 것도 감성에 호소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 자칫 딱딱하기 쉬운 정치광고에 애니메이션을 도입해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었다. 너무 튀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반대의견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광고기법의 하나로 활용했다.감성에 호소하는 한편 서민적인 정서도 한껏 내세웠다.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기보다 이웃과 함께하는 국민의 후보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법정 홍보물 3종 가운데 하나인 책자형 소형 인쇄물이다. 보통 ‘~하겠습니다’ 형태의 공약집으로 만들지만 노당선자측에서는 ‘우리 사는 얘기’를 주제로 평범하면서도 서민적인 컨셉으로 책자를 만들었다. 노당선자 사진은 단 1컷만을 사용했다.편 광고에서도 이런 점은 십분 발휘된다. 편안 옷차림으로 기타 줄을 퉁기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마치 삼촌이나 옆집 아저씨를 연상시켰다. 이 광고에서 노당선자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상록수’를 부르며 서민적인 풍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주부층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다.TV를 통한 찬조연설에서도 노당선자 진영은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연설원을 대거 활용했다. 그 가운데서도 대선기간에 많은 화제를 뿌렸던 부산 자갈치시장 아주머니는 노당선자의 서민적인 이미지를 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찬조연설원 가운데는 대학생과 에어로빅강사, 농부 등도 포함돼 있었다.유권자들 스스로 선거에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간 점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선대본부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은 유권자들이 직접 나서서 분위기를 띄우고 선거참여를 독려하도록 했다. 특히 인터넷 사이트 외에 인터넷라디오, 인터넷 토크쇼 등을 통해 젊은층의 참여를 적극 유도했다. 인터넷 게시판 역시 이용자들이 스스로 꾸밀 수 있도록 운영진의 직접적인 참여는 가급적 자제했다.천호선 인터넷본부 기획실장은 “네티즌이 직접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사이트를 운영했고, 매일 베스트 글을 선정해 이용자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고 말했다.30여편에 이르는 광고의 전체적인 타깃은 30~40대에 맞췄다. 얼핏 생각하기에 20대를 중점적인 공략대상으로 삼았을 법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너무 젊게 보이거나 너무 늙게 보일 경우 특정계층에 호소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어 선거의 중간 연령대라 할 수 있는 30~40대에 포커스를 맞췄다.노당선자 진영은 홍보의 내용적인 면 외에 시스템적인 측면에서도 상대방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한 후보는 대선기간에 홍보책임자를 교체하는 등 내홍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비해 노당선자 진영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일관되게 일을 처리했다. 여건상으로는 분명 불리했지만 팀워크 하나로 극복한 셈이다. 이동주 홍보위원회 부국장은 “실무진에게 모든 권한을 준 것이 팀워크를 유지하면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고 소개했다. 자연 실무진은 ‘내가 최후의 보루’라는 책임감을 갖고 일을 했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단단한 팀워크는 노당선자가 당내에서 후보로 흔들릴 때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노당선자가 단일후보로 확정되기 전까지 대내외적으로 사퇴압력이 들어오고 지지율이 낮아 당선확률이 낮았지만 실무진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기존의 홍보전략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히트상품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제품의 질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마케팅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노당선자가 대권을 움켜쥔 배경에도 이런 점은 분명히 작용했다. 대통령후보로서의 개인적인 자질 외에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극대화한 홍보전략이 주효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