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임원 평균연령도 크게 젊어져, SK그룹. LG전자 평균나이 44세 불과
‘세대교체’ 바람이 재계에도 거세다. 30대 초반의 재벌2·3세들이 속속 대기업 사령탑에 올랐다. 기업의 야전사령관인 신규임원 인사에서도 6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대거 ‘별’을 달았다. 아직은 바람의 강도가 ‘미풍’이라는 평이지만 향후 ‘강풍’으로 번질 기미도 엿보인다. 바람의 세기는 어느 정도일까. 유독 올해 세대교체 바람이 재계를 강타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정보통신·전자분야 세대교체 ‘강풍’요즘 현대백화점 고위관계자들은 안절부절 못한다. 지난해 말 정기인사가 워낙 ‘파격’이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물론 인사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는 ‘노코멘트’로 일관한다. 현대의 3세들의 파격적 승진인사는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킨 진원지가 됐다.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만해도 그렇다. 불과 31살의 나이에 자산 3조3,000억원, 계열사 10개를 거느린 재계서열 24위(공기업 제외) 대기업의 경영권을 한손에 거머쥐었다. 지난해 1월 부사장으로 파격 승진한 뒤 1년 만에 다시 2단계를 뛰어넘어 실질적으로 현대백화점그룹을 관장하게 됐다. 정부회장의 지분율은 겨우 1.25%. 현대백화점측은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라고 입을 맞췄다.뒤이은 현대자동차그룹 인사는 세대교체 바람을 부추겼다.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의선씨(33)를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지난해 그룹매출이 54조원을 넘어서 재계서열 3위를 주장했던 대기업이 회장의 장남이라는 이유 등으로 그룹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겸 기아차 기획실장에 임명한 것. 회사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세대교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이밖에 동아제약은 강신호 회장의 차남인 강문석 부사장(42)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 3세 경영을 본격화했다. 한일시멘트그룹도 허정섭 회장의 장남인 허기호 전무(37)를 한일시멘트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세대교체 바람에 합류했다.하지만 재계 2ㆍ3세들의 ‘세대교체’ 바람은 아직 ‘강풍’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중간’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관측된다.우선 2001년 삼성전자 상무보로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들어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 재용씨(35)의 이동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삼성은 그동안 상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자제 해 왔었다”며 이의 배경을 설명했다.여기에다 롯데, 신세계 등 백화점업계 2세들도 당분간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롯데의 경우 ‘영원한 현역’을 자처하는 신격호 회장이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신세계 정용진 부사장은 이번 정기인사에서 제자리를 지켰다. 무엇보다 재계 신진세력의 대표주자인 최태원 SK(주) 회장의 그룹회장 등극이 늦춰진 것도 세대교체 바람을 ‘강풍’으로 번지지 못하게 했다. SK에서 CEO까지 올랐던 한 인사는 “손길승-최태원 체제는 향후 2~3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렇지만 현장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할 올해 임원인사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신진세력이 대거 ‘별’을 달면서 ‘세대교체’ 바람을 이끌었다.SK그룹이 ‘태풍의 눈’ 역할을 했다. 49명에 이르는 신규임원의 평균나이가 44세에 불과한 것. SK텔레콤은 11명의 신규임원 모두 45세 이하였다. 이제 40대 초반의 임원 선임이 보편적인 추세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LG전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신규임원 40명의 평균나이가 44세에 불과했다. 한화도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경영진을 대거 물러나게 하고 40대 후반의 젊은 경영진을 계열사에 전진배치했다. 신세계도 5~6년 이상 역임한 4개 계열사의 CEO를 퇴진시키고 부사장을 승진시키는 등 상당한 폭의 세대교체를 단행했다.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직 보편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은 아니지만 미래경영을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발탁인사를 통한 신진세력의 대거 등장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미래역량 강화차원 젊은 인재 발탁올해 세대교체 바람에 가속도가 붙은 이유는 뭘까. 일부 재계 2·3세들의 전면등장은 재벌개혁 의지가 높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취임 이전에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를 굳히겠다는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우선 기술과 트렌드가 급변하고 있는 정보통신, 전자 분야에서 창의적인 젊은 인재가 더욱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정보통신과 전자 분야는 그 특성상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나오고 트렌드가 달라지고 있다.SK 관계자는 “기존 사업과 디지털 및 온라인 사업을 결합하는 신규사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글로벌마인드와 디지털감각을 갖춘 인재를 발탁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LG전자 관계자는 “성장사업 분야에 대한 미래역량 강화 차원에서 정보통신과 LCD, 승부시장인 중국사업의 추진력을 강화하기 위해 젊고 유능한 인재를 대거 등용했다”고 말했다. 실제 LG전자의 경우 신규임원의 25%(10명)가 R&D분야 출신이다.주요대기업들의 치열한 인재육성 및 인재유치 전략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탁월한 1명의 천재가 1,000명, 1만명은 먹여 살린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대기업들은 인재육성과 스카우트를 위해서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이러다 보니 기업의 미래를 책임질 30~40대 초반 임원들이 대거 탄생한 것이다.이와 함께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 대선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창의적이고 돌파력 있는 젊은 인재들이 새로운 사회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재계에도 그대로 전해졌다는 것이다.하지만 세대교체가 급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급속한 세대교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세대교체’ 바람이 강했던 SK의 경우 경험 많고 노련한 부회장과 젊은 디지털 CEO의 ‘파트너십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급속한 세대교체의 부작용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SK 관계자는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면 기업들의 세대교체는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일각에서는 세대교체론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험 없는 젊은 오너 자녀들의 전면 등장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보이고 있는 이들이 많다. 또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가는 데는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보는 기업들도 있다. 예를 들어 한진, 효성, 롯데 같은 전통 제조업체들이 그러하다. 한진 관계자는 “거대한 기업의 인사, 재무, 대외관계 등 복잡한 문제를 경험 없는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